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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8]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5)]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 (창45:1-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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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8]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5)]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 (창45:1-8) 문병호 목사 


<녹취록>



1.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질서: 섭리

본문 말씀은 요셉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으로는 부르지만 요셉의 하나님이라고는 거의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야곱이 축복했듯 무성한 가지가 담은 넘은 것처럼 복을 많이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록됩니다. 본문 8절은 하나님이 요셉을 어떻게 형통하게 했느냐 하니, 바로의 아버지라 불리고 온 집의 주라고 불리고 애굽의 통치자로 불렸다고 표현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성군, 대통령이고 왕이라도 이런 호칭을 받을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오늘은 요셉에 대해 보기보다 언제든지 그러하듯, 요셉의 하나님이 누구신지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시고 모든 곳에 계시고 자존, 영존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누구를 믿느냐를 바로 알아야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역사가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모든 일을 뜻하고 작정하고 이루시는데 영원히 현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계시는 하나님이 어제의 하나님이고 앞으로 오실 미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현재를 사시되 과거와 미래가 없이 모든 것을 아시고 주장하시는 분으로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한학기 내내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하고 많은 질문을 받지만 궁극적인 답은 하나님을 영접하며 동행하며 사는 것, 그 가운데 날마다 우리가 고백하면서 정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정의는 고백되며 내 삶에서 체험되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여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으로 인해 만물을 바라보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정의하는 것이 살아가며 그의 섭리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섭리를 믿음'입니다. 섭리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도 섭리라는 말을 적잖이 쓰는데 성경에서는 특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질서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세 전에 정해진 것입니다. 지금 봄날 꽃이 피고 황사니 뭐니 하는 것도 하나님이 창세 전에 정하신 것입니다. 새가 떨어지고 죽는 것, 빗방울이 내리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이 섭리입니다. 영원 전에 정하신 하나님의 뜻이 역사적으로 지금 이루어지는 질서를 섭리라고 합니다. 살아계신, 영원하신, 움직이는, 특히 우리를 돌보시고 감찰하고 지키시는 처음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세포와 호흡도 헤아리시며 우리의 눈물을 병에 담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섭리의 하나님, 섭리주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구속주 하나님은 날마다 살아 역사하시는 섭리의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다 아십니다. 우리 인간은 그 때 가 봐야 알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1초 후와 전도 잘 모르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마는, 하나님은 이전과 이후를 동일하게 바라보시고 모든 것을 헤아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2. 섭리를 통한 구원역사

요셉의 삶은 파란만장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은 소년기와 유년기는 다복했습니다. 그러나 청년기, 장년기는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은 하나님이 형통케 하셔서 유사 이래 듣지 못한 호칭을 받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계획하고 준비합니다. 자녀 양육, 내 삶의 계획, 가정을 꾸리는 모든 것을 계획합니다. 아주 넉넉하지 않은 이상 대체로 아끼지 않고 규모있게 살지 않으면 빈곤이 우리 문 옆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해도 우리가 다 막을 수도 누릴 수도 없습니다. 내가 집에서 1초라도 먼저 나가면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학교 다닌다고 일주일에 세번 차를 운전하다 보면 영동선, 경부선에서 비일비재하게 사고가 납니다. 한 번은 양지 들어가려고 하는데 트럭이 제 범퍼 앞에까지 와서 급브레이크를 밟아 섰습니다. 0.5초라도 더 빨리 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방비하고 준비해도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인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수학의 방정식을 공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정식은 몇차일지 생각해봅니다. 미지수가 있는만큼 방정식이 있고 그 해가 있는데, 하나님의 미지수는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에 대한 해는 누가 가지고 계신지, 하늘 방정식은 우리가 쉽게 풀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푸실 수 있는 그 고차, 무한차의 방정식을 우리의 삶을 통해 날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삶의 예배, 기도하는 모습, 나를 통해 움직이는 고차 방정식의 해를 우리는 스스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삶의 일거수 일투족의 답을 알고 계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그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아 신실하게 끝까지 이끌어 하늘 곳간에 열매를 삼으심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을 하시되 어려운 일은 아주 쉽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홍해를 누가 가르겠습니까? 여리고를 누가 무너뜨리겠습니까? 풍랑이 일고 잠잠하게 하는 것을 쉽게 하십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가 보기 쉬운 길도 어떨 때는 어렵게 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해서 두 주면 넉넉히 갈 길을 40년 동안 가게 하십니다. 이 방정식을 우리가 풀 수 없습니다. 1차 방정식이 고차방정식이 되고 고차방정식을 단칼에 풀어버리기도 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맺히고 얽힌 문제를 단숨에 풀어버리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다 이루십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오게 하시려고 인구조사가 있게 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그에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동네는 지리적으로 작지만 유다지파가 흥왕했으므로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드니 갈 곳이 없고 잘 곳이 없어 말 구유에서 아기를 낳는 해법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하여 하나님이 말씀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잘 살던 부부가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낳은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로마 황제도 헤롯왕도 움직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는 로마 군병 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무리들 이방인들이 죽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들이 그를 찔렀고 찌른 그들을 주님이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인을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이방 구원의 큰 뜻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으로 뛰어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모두 내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창조기사, 요셉이야기가 모두 내 이야기가 됩니다. 성경 속으로 뛰어들라는 것입니다. 그 역사와 기적으로 들어가서 약속과 성취의 장으로 뛰어들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저 간단한 안내서 읽듯 하지말고 내 삶과 생명의 이야기로 읽어야 합니다. 

3. 시련을 통한 인도

요셉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꿈과 삶을 통해서 그러셨습니다. 요셉은 꿈꾸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뜻을 그 꿈을 통해 알려주셨지만 그것으로 고난을 겪습니다. 이 꿈을 들은 형제들은 시기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마음이 약해져 구덩이에 넣었습니다. 사실상 구덩이에 물이 없게 하셨기에 살은 것이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요셉은 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만나고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이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전이라고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꿈을 꾸었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꿈이었습니다. 분명히 이 꿈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것이나 현실은 그와 반대로 갔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기는 커녕 은 20에 팔아 버렸습니다. 형제들의 범죄가 지능적으로 이루어지고 시련이 더해졌습니다. 꿈꾸는 자는 그 꿈이 아름답고 커질수록 그에 따르는 고난을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꿈을 싫어하고 거룩한 꿈은 대적합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의 거룩한 꿈은 무엇입니까? 요셉은 불과 서른 살에 당대 세계 최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총리가 된 것은 고난의 에스컬레이터를 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사람에게만 올라가게 하십니다. 단계별로 고난의 에스컬레이터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첫번째는 구덩이에 넣임 당하는 것입니다. 황량한 들판의 구덩이에 던져짐을 당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 치솟아 오르게 하십니다.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는데 비어 물이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니 구해 내시는데 당장 흥왕케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 애굽 사람의 집에 팔려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가정 총무가 되어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더 높은 곳으로 올리시기 위해 더 큰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음해로 말미암아 또 다시 깊은 곳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왕의 죄수를 수용하는 감옥이니 가장 중죄인들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창 39:23) 

4. 여호와께서 함께하사 형통하게 하심

우리는 요셉의 삶 가운데 두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것과 그리하여 형통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셉이 아니라 요셉의 하나님입니다. 주어가 여호와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것이요 요셉이 여호와와 함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꿈으로 함께하고 삶으로 함께하고 어느 상황에서든 그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범사에 형통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제 1 기도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약의 축복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내게 향해 그 빛을 비추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주어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빌 4:13) 요셉도 동일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주의 종들은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의 에스컬레이터가 있습니다. 그 삶의 원리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저 아무 일이 없으면 우리는 연약하여 내가 잘난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 알게 하실 때 다시금 치솟아 오르게 됩니다. 요셉이 꿈을 해몽하지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런 것입니다. 미래를 미리 아시고 술 맡은 관원에게 꿈꾸게 하시고 그 해석을 요셉이 하게 하시고 끝내 국무총리를 하게 하시는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 앞에서도 스스로 잘한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말했습니다. 

5.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본문에서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본문 4절, 5절에서 요셉은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요셉을 애굽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고대의 기근은 많은 사람들은 죽입니다. 그리고 7절, 8절에서 형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였다고 생각할지 모라도 하나님이 형들과 아버지와 당신들의 후손을 살리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으로 말합니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그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시리라는 언약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어진 약속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들은 달리 생각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는 언약을 이루는 데 있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비밀입니다.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려고 당신들보다 나를 먼저 보냈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시고 그것을 친히 이루시기 위해 애굽의 종살이 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입니다. 가장 안전하게 인구가 늘어나는 방법이 종살이인데 그것을 취한 것입니다. 배우지는 못하고 기술은 없어도 율법으로 채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땅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인구를 애굽에서 늘려서 가나안에 넣으십니다. 가나안은 전쟁이 많은 곳이라 바로 갔다면 모두 멸절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려가는 듯 할 때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는 자는 기뻐할 것이요 지금 기뻐하는 자는 슬퍼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시지 않습니다. 모르드개가 장대에 걸릴 줄 알았으나 하만과 일당이 달렸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죽을 줄 알았으나 그 대적이 전부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말씀의 귀한 것은, 요셉을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로 부르는 것과 ‘당신들을 구원하려고 큰 구원으로’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요셉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구약에서 그저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은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의 구원을 드러내는 것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야산이 시온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삭 못지 않게 요셉도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팔려서 큰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본문 8절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입니다. 

가정의 어려움과 간혹 힘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신앙과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끝내 높이시므로 나를 해코지하는 자를 용서해야 합니다. ‘나를 이곳에 보낸 이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요셉의 고백을 우리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하게 했습니다. 가지가 담을 넘는 형통함, 무엇보다 구원을 누리는 형통함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꿈에도 삶에도 함께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성도님들과 교회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