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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2]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7)] 전심으로 섬기는 믿음 (신10:12-22)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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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2]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7)] 전심으로 섬기는 믿음 (신10:12-22) 문병호 목사


(음향 수정 완료)
 

<녹취록>



1. 요구하시는 하나님

본문 신명기 말씀 12절은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아심으로 우리가 감당할 만한 것을 요구하십니다. 과부의 두 렙돈, 오병이어의 작은 것,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나귀 새끼를, 구례네 시몬에게는 십자가를 지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본문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네 행복을 위해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다고 하니 제일 먼저 드는 마음은 두려운 것입니다. 친구가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냐에 따라 정도가 달라집니다. 친구가 요구하는 것은 부담이 없지만 부모님이 요구하면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더 공적인 요구를 받으면 더욱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두렵지만, 우리가 아무 것도 없음을 하나님이 아시므로 우리 마음에 기쁜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에게 요구하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채워주시면서 이루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데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본문 14절은 말합니다. —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가지신 분이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입니다. 요구하실 필요가 없는 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 17절은 신 가운데 신이요 주 가운데 주라고 합니다. 여기에 신은 구약의 '엘로힘'으로 창조주를 의미합니다. 주는 ‘아도나이’, 구속주 하나님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구속주시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고 허물과 죄를 사해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17절 후반부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크고 능한 가운데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명하실 때 우리는 아멘 하면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옷을 깨끗하게 입으라고 하면 옷을 사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얼굴이 안좋다고 하면 음식을 해주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크고 능하신 가운데 요구하시고 친히 이루십니다. 또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십니다. 외모는 얼굴,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되 인생의 높낮이를 세상과 같이 헤아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중심과 애통, 간절함을 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신 것처럼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모가 아닌 중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은헤 베풀 자에게 은혜를, 긍휼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자, 긍휼을 자를 가지고 계십니다. 저 사람을 얼마나 불쌍히 여길지 하는 그 긍휼의 자만 가지고 계십니다. 더 불쌍히 여길 자는 더 은혜를 베푸십니다. 또한 본문 15절은 만민 중에 우리를 택하신 자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신 분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이 그저 기뻐하고 사랑하셨습니다.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7-8) 

2. 경외: 갈 수 없는 가운데 가게 되는 것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조목을 살피기 전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시요 구속주시요, 크고 능하신 가운데 두려운 분입니다. 친히 명령하시면 이루시는 분이요 긍휼의 잣대를 가지고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신 첫째가 본문 12절, 경외입니다. 경외는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경건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경외는 자주 나누었듯, 갈 수 없는 가운데 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갈 수 없는 가운데 나가는 것입니다. 과연 여호와 앞에 우리가 설 수 없고 허물과 죄로 인해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나가는 것이 경외입니다. 구약 히브리어로 ‘야레'인데, 이것이 신약에 오면 ‘유세베이야', 경건이 됩니다. 그래서 칼빈은 경건을 정의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받고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가 가지는 두려움으로 말했습니다. 세상적인 두려움이 아닙니다.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크고 강한 손으로 우리를 지키시는데 그 가운데 우리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나는 부인해야 하고 애통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왠지 하나님께 우리가 이끌려 갑니다. 하나님이 끌고 가십니다. 그리 마옵소서 하면서도 죄를 안고 회개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경외입니다. 좋은 것만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경외가 아닙니다. 내 죄를 헤아리며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 어두운 데 가서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이 경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이요 하나님이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시 147:10);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렘 2:19)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입니다. 내 죄를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고 외치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여호와를 멀리하고 경외함이 없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저는 언젠가 설교단에서 그렇게 전했습니다. 생명이 가장 왕성히 활동하는 것은 봄이 아닌 겨울이라고 말입니다. 겨울에 껍질을 두껍게 하면서 생명의 응집력이 강해지고 봄은 그것을 터뜨릴 뿐이라고 말입니다. 이 경외를 계절로 말한다면 겨울일 것 같습니다. 아주 추운데 껍질을 두껍게 하면서 그 속에 내 생명의 순수한 것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경외라는 말은 겨울나무에 가까운 것입니다. 

3. 모든 도를 행하며 그를 사랑하는 것

두 번째 요구하시는 것은 본문 12절 모든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도 '그의 길을 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경외하는 것과 모든 도를 행하라는 것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경외는 나갈 수 없는 가운데 나가는 것이요, 그러면서 여호와의 길에 서는 것입니다. 무슨 세속적인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 그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성전으로 가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탕자와 요나와 같이 그릇된 길로 가다가 하나님의 길로 다시금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빗나가고 힘들고 어려워도 다시금 돌이켜 여호와의 길에 서는 자가 복된 것이요, 그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열두해 혈루병자와 같이 부정하고 돈이 없고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그 몸을 이끌고 예수에게 나아가듯, 나갈 수 없는 가운데 나아가는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를 사랑하며라고 합니다. 사랑을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스스로 사랑이신 것은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성부가 성자 안에 성자가 성자 안에 사니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 사랑이요, 그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 속에 안기는 것입니다. 뛰어드십시오. 우리 십자가지기 성도님들 십자가지기교회에 뛰어들고 그 머리가 되는 예수님께 뛰어드십시오. 저는 이 봄이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나가 되어그 작용, 함께 하나가 되어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작용, 그것이 바로 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한몸이 되어 놀라운 일을 이루어내니 그 비밀이 크다고 합니다. 1+1=2가 아니라 천가지 만가지 일도 할 수 있음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주신 것이요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게 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주신 것은 아들을 삼기 위하심입니다. 우리가 아들의 자리에서 아버지와 하나되게 하시기 위해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 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한 분이신 그 아들을 주셔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4. 여호와를 섬기고 그의 말씀과 규례를 지키는 것

그리고 네 번째, 마음과 뜻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라고 합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김은 중심을 하나님께 두리라는 것입니다. 중심에 불붙듯 하나님을 향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에 불붙듯 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느 것을 향하여 있습니까? 중심을 드려 정확한 목적지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마음은 바로 믿음입니다. 누구를 바라고 의지하고 의뢰하는지 입니다. 또한, 뜻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을 잡고 죽기까지 그것을 향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은 순교의 신앙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없습니다. 있거나 없거나 둘중 하나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신 6:5) 그런 것입니다. ‘뜻'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네펫'인데 생명이라는 의미입니다. 뜻에 생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뜻을 세운다는 것은 생명을 바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한냄을 섬기라고 합니다. 섬기는 것은 종이 되는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활동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섬기는 것을 여름이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여름에는 같이 땀을 흘리면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움직이면 나도 움직이고 서라면 서고 가라면 가는 동행하는 삶,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섬김은 우리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종이 됨은 하나님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교회에 알려주십니다. 그대로 움직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번 째로 본문 13절은 '네 행복을 위하여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합니다. 말씀과 규례를 지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가을의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행실은 결실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행실이 좋다고 해도 준비되지 않은 행실은 없습니다. 경외하고 그의 길로 나서고 사랑하고 섬기라고 했는데, 이제 율례와 규례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이 요구를 저는 사시사철로 생각해 봤습니다. 일년 내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겨울에는 우리가 깊은 생명의 응집을 헤아리는 요구입니다. 내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지만, 여호와에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경외입니다. 여호와는 내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봄은 이제 생명의 역사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 안에 여호와가 내 안에 사니 함께 움직이는데 그것이 섬김입니다. 우리 교회는 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이 문병호 목사가 부족하더라도 함께 움직여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됩니다. 이것이 섬기는 것입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그릇됨으로 판단하는 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움직이면 내가 움직이고 하나님이 서면 내가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섬김이요 여름입니다. 그리고 가을에 결실이 있습니다. 율례와 규례를 쫓고 순종하는 것은 가을입니다. 내 공로와 땀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 만큼 같이 움직이면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 순종하고 행할 수 없습니다. 열매로 주셔야 가능합니다. 제가 여름날 땀흘리듯 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선행, 성화는 열매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신명기를 그릇되게 해석하면 안됩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이 율법을 지키게 했고 신약에는 은혜로 살게 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다 은혜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5.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

이런 여호와의 다섯가지 요구, 이것을 사시사철로 묵상해 본 것은 현대인들이 요구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에 있습니다. 요새는 요구가 적은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시사철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는 것은, 전심으로 믿는 믿음이라는 제목과 같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은 우리를 택하여 주셨다고 합니다. 먼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16절은 마음에 할례를 받고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전심으로 섬기는 첫 출발입니다. 육체가 아닌 마음의 할례입니다. 내 마음을 베어내고 없애라는 것입니다. 내 성격과 성질을 베어내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고 목을 곧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을 곧게 하면 머리에만 머물지 마음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머리에만 말씀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이 왜 힘듭니까? 왜 사람이 힘듭니까? 마음을 베어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그래야 합니다. 마음을 못 베어내니 힘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값주고 택하셨으니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의 절정은 20절입니다.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내 찬송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답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친히 행하십니다.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핵심은 그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전심으로 섬기는 믿음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말은 내 능력이 아닌 여호와께서 행하신다고 앞서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바로 서원입니다. 미리 된줄 알고 앞서 감사하는 것이 맹세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 일을 두고 맹세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가지 경우에는 맹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이루신 줄을 믿고 지금 감사하는 서원의 맹세와 헌금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21절이 있습니다. 12절은 요구가 무엇인지 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21절은 친히 행하신 것에 대한 찬송으로 끝납니다.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김은 전심으로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찬송하고 마음의 할례를 받아 그에게 나아가고, 그 가운데 다섯가지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요구하심은 나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먹여줄테니 하라는대로 하라는 것, 그것이 섬김입니다. 맛있는 것 해주면 먹는 것, 그것이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 그곳에 우리 인생의 가장 고상한 길, 인생의 상급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상급도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여호와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저 같이 부족한 자도 하나님 일 한다고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드려진 것은 무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여호와께 드려졌습니다. 여호와의 포도원은 들어가는 문만 있습니다. 잠시 힘들더라도 여호와의 포도원에 거하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왜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베푸실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간혹 모순도 눈에 보이고 몸부림이 있어도 그 가운데 우리가 할 일은 큰 일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마음의 할례를 하는 것입니다. 모난 것, 혈기, 내 판단 잘라내야 합니다. 그리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내 힘이시니 그가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고 찬송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