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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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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8)] 잠잠히 순종하는 믿음 (수6:8-21)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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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8)] 잠잠히 순종하는 믿음 (수6:8-21) 문병호 목사


(음향 수정 완료)


<녹취록>



1. 나를 부인하며 하나님이 행하심을 믿고 나아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40년이 흐르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불기둥의 은혜와 만나 메추라기, 반석의 물의 이사 가운데 이스라엘을 지키신 하나님이 여리고로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일이 된 것처럼 보이나 여리고라는 큰 성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합지졸이요 병기가 없는 자들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무능한 백성이되 그들의 담대함과 유산은 여호와와 법궤 뿐입니다. 여호와를 높이며 양각 나팔을 부는 그런 백성임에 반해 여리고는 당시 매우 큰 백성으로 무화가가 무성한 곳이요 산과 천연요새의 입지에 위치한 성입니다. 위로는 시리아, 아래로는 요압과 암몬이 있는데 서쪽으로는 예루살렘 가나안 본토로 들어가는 군사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여리고가 무너졌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6일 동안 돌다가 마지막 7일째 돌면서 함성소리와 함께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주셨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소리를 질러 성이 무너진 역사는 없습니다. 굴을 파서 화약을 넣어 폭파시켜 겨우 성문을 열기는 했지만, 여리고의 성문은 철옹성과 같은 불패의 성이었습니다. 그 여리고를 병기 하나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무너뜨린 것입니다. 본문 10절은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동일한 것을 세번이나 말하는 것은 완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조용하라는 것입니다. 조용하게 있으라고 하지만, 그저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한 가운데 돌라는 것입니다. 잠잠하라고 하시는 것은 눕고 자는 나태함이 아닌 움직이되 조용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순종은 분명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은 잠잠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소리를 죽이고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면서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이 친히 행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일한다고 내 말과 내 의, 주장, 공로 내세움은 순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주의 도구이므로 움직이면 움직이되 소리내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순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순종: 하나님의 뜻을 믿고 말씀을 중심이 두어 확신하여 잠잠함으로 행함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으므로 잠잠할 수 있습니다. 법궤의 말씀이 앞서가므로 잠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에 있으므로 잠잠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 “나는 안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하나님을 알지 않고는 아무도 잠잠할 수 없습니다. 바로 알아야 의지하고 믿고 말씀에 순종해야 잠잠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 전에 기다리다 못해 자기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사랑해서 겸손했을 때는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오해하고 자기 소견대로 행하면서, 왕이되 제사장이 아니면서도 사무엘이 늦게 오니 급하여 제사를 스스로 드립니다.(삼상 13:12) 인간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급한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그 때 사울은 잠잠히 기다렸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부득이함을 내세웁니다. 우리는 부득이하므로 떠들고 친구 따라 술집에도 가고 하나님의 일이 급하지만 장사를 지내러 가기도 합니다. 죄를 지을 때 부득이하여 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잠잠한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심중에 새기는 사람이 잠잠한 사람입니다. 듣기는 듣되 사울과 같이 잘못 듣지 않아야 합니다.  




3. 순종: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 앞에서 고요하게 움직이는 것

하나님이 잠잠하라 할 때가 있고 소리치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적의 칼날이 들어와도 잠잠하라고 하시면 잠잠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삼상 15:23)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는 순종보다 많은 경우 우리를 부인하고 잠잠히 기다리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모든 사물은 때가 되어야 꽃을 피웁니다. 조금 있으면 밤이 열립니다. 밤 향기와 꿀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먼저 떠들면 안됩니다. 계절을 앞서 움을 틔우면 죽습니다. 적당한 훈풍과 태양빛 가운데 가지를 뻗쳐야 삽니다. 여호와께는 부득이함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있지만 말입니다. 어떤 때는 정말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장사하는 것은 죽은자에게 맡기고 산 자는 산 일을 하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부득이함을 여호와 하나님은 넘어서 계십니다. 우리가 부득이하고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내 이성으로 판단하지 말고 잠잠히 끝까지 마지막까지 기다려서 가장 그 가을 서리 직전의 과일처럼 인내로 기다려 실과를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잠잠한 것입니다. 잠잠한 것은 고요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움직이라고 하시되 잠잠하게 움직이라고 하십니다. 순종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곱에게 잠시도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할 수 없냐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함께 깨어 기도할 수 없냐고 묻으시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꾼을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없는 것 같은데 움직이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내 입을 여는 순간 상급이 떨어집니다. 내 입을 여는 순간 상급이 없어집니다. 잠잠히 봐야지 후 부는 순간 사라집니다. 

순종은 하나님 앞에 고요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섯 바퀴, 열두 바퀴를 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둘이라는 것에 숫자적 의미를 둘 필요는 없지만, 일년 열두달 잠잠히 기다리다 마지막 바퀴 째는 소리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된 줄 알고 감사의 찬송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소리를 내서 진동하여 무너뜨렸다고 하는데 가당치 않은 소리입니다. 열두바퀴는 순종하고 한바퀴는 감사하는 것, 우리의 순종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으므로 움직이면서 잠잠히 기다리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시므로 우리는 함성을 지르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감사의 찬송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까지 들어가는 여정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이끄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점차적으로 신앙이 자라게 하십니다. 제일 먼저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널 때는 물을 멈춰놓고 이스라엘 백성을 들어가게 하십니다. 애굽 쪽으로는 구름기둥으로 막아 놓고 애굽 쪽으로는 불기둥을 밝혀 땅으로 걸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처음 애굽을 나와 믿음이 없을 때는 물이 완전히 멈춘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40년이 지나 요단강을 건널 때는 발을 들여 넣을 때 물이 서게 하셨습니다. 물이 흐르는 가운데 발을 너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운 물에 발을 넣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이제는 물이 흐르지만 믿음으로 발을 담그면 그 믿음으로 물이 설 것이라고 합니다.  




4. 영광 받으시기 원하는 하나님

이제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으로 갈 때는 한단계 더 높은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이제는 적군 앞에서 성을 잠잠히 돌리는 것입니다. 언제 화살이 날아올지 병사가 나올지 모르는데 돌라고 하신 것입니다. 점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40년 동안 믿음의 훈련을 시키시되 공통점은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법궤를 앞세웁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만을 바라보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병기를 들고 손에 돌이라도 들라고 했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영광 받기 원하시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쇠하여야 합니다. 세례요한의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받기 원하시므로, 하나님과 우리가 공로를 나눠갖기 원치 않으시므로, 여호와게서 이 큰 일을 다하셨다고 선포되기 원하시므로 그 가운데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일입니다. 나아만이 요단강에 들어가 몸을 일곱번 씻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쉽지 않습니다.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요단의 흙탕물보다 아람의 물이 더 깨끗한데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자질로 소유로 인해 낙망된다면 그것조차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의 훈련은 일차적으로 그릇을 닦고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빈 그릇에 여호와의 긍휼과 은혜를 채우는 것입니다. 잠잠하라는 여호와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행하게 하십니다. 여리고를 들어가기 전에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게 하시는 것은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그칩니다. 전쟁을 하면 오히려 먹고 힘을 내야 할텐데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무교병은 먹어도 힘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거꾸로 명하십니다. 할례로 절뚝거리게 하시고 무교병으로 배고프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리고로 갈 때 여호수아에게 군대 장관이 나타납니다. 군대장관이 눈을 들어 칼을 빼고 나타납니다. 야곱에게도 나타난 그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그 선 곳이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신도 벗게 한 것입니다. 살도 베고 신도 벗고 먹을 것도 안주고 전쟁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쟁 방식은 이렇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전쟁을 치렀을 때는 이겼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공을 헤아리고 군사 삼천이면 아이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자신할 때는 패배했습니다.  




5. 나를 부인하고 잠잠할 때 여호와께서 행하심

우리의 영적 전쟁 방식은 어떤 것입니까? 육체의 근육을 기르고 기름진 것을 먹고 군장을 잘 갖추는 것이 영적 전쟁에 승리하는 길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은 잠잠한 것입니다. 움직이되 없는 듯이 조용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육체의 살을 베어내고 영의 음식으로 육을 죽이는 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아무리 내가 근육이 많고 힘이 넘치고 빨리 달려도 영적 전쟁에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적 전쟁에서는 흐물흐물함과 눈물이 마르지 않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목을 곧추세우지 않고 부드럽게 녹아야 여호와의 말씀이 우리 식도를 흘러 안으로 들어갑니다. 

내 자아가 살아서는 영적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아무 것이 없이 만들어놓고 철옹성 여리고를 돌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복음의 예비한 신발,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구원의 투구, 성령의 말씀의 검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의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육체의 재화가 아닌 복음의 신발입니다. 내 의지와 기분으로 내 결심이 아닌 진리로 허리때를 매야 합니다. 나를 방어하는 것은 가식이나 변명이 아닌 의의 흉배로 입니다. 투구는 구원의 투구입니다. 머리가 명령하는 곳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구원의 투구를 쓰고 말씀과 성령의 검을 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자는 잠잠히 바라고 순종하는 자입니다. 칼빈 목사님은 믿음을 설명하면서 믿음에는 말씀이 있어야 하고 진리로 믿는 인정이 있어야 하며 내 마음 속에 말씀을 받아들이는 확신이 있어야 된다고 하며, 믿음의 열매가 있는데 그 중에 중요한 열매가 잠잠함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열매는 잠잠함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이루어가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잠잠함이 없으면 외침의 능력이 없습니다. 평소에 말 많으면 아무리 말해도 능력이 없습니다. 열두번 참고 마지막에 외칠 때 능력이 있습니다. 잠잠함을 가져야 합니다. 잠잠함 가운데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잠잠하면 여호와께서 행하십니다. 채우려고 하지 말고 먼저 꺼놓고 벗으려고 합시다. 먼저 나를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영의 세계가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