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포하는 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2

선포하는 교회  |  주일예배 설교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2


           

[20180603]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10)]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믿음 (왕하23:24-26) 문병호 목사

관리자
조회수 65


[20180603]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10)]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믿음 (왕하23:24-26) 문병호 목사



(음향 수정 완료)


(*음성파일: 클릭하여 다운로드 하시면 됩니다.)



(왕하 23:24)○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왕하 23:25)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왕하 23:26)○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녹취록>



1.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능력

유다 왕 요시야는 제 16대 왕입니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의 아들입니다. 본문 25절은 요시야가 그의 돌이킴을 전무후무한 사람으로 칭찬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고 모세의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 돌이킨 왕으로 평가하고 계십니다. 그의 당시는 이미 국운이 기울어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당대의 강대국인 바벨론과 메대 등이 나타났고 내부적으로도 각자 소견대로 행하고 분열하고 우상이 가득차 여호와의 도가 땅에 떨어진 시대입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 그가 돌이킴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함을 칭찬 받는 말씀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재능을 주셔서 이 땅에서 노력하여 얻게 하시는 것도 있으나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 가져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거듭난 것이요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것만이므로 우리는 돌이킨 것, 거듭난 것 외에는 하나님께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최고 품위는 노력하여 성취한 것이 아닌 돌이켜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낮아 보여도 돌이키는 순간이 가장 고급스럽고 인간답습니다. 그 신분이 비천하다고 여겨진 기생과 세리와 죄인들도 예수님을 만나 돌이킨 순간 품위를 갖게 되고 귀하게 여기심을 받아 성경에 기록됩니다. 자기가 많은 것을 했고 착하게 살았고 한 부자 청년은 쓸쓸히 거룩한 무대에서 퇴장하나, '화로다 내 입술이 부정하나이다'라고 한 이사야와 '나를 떠나라'고 한 베드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사용됩니다.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선하고 능력이고 상급입니다. 머물러 있으면 높은 듯 해도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작아 보여도 지금 돌이킬 때 폭발적인 능력이 나타나고 그것을 헤아려 하나님이 상급을 주십니다. 우리는 좌절해서는 안되며 절망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니 하나님은 돌이키는 자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와 같이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무지하다 인정하는 가운데서도 자책하고 절망하여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많은 죄를 지었어도 그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을 때 돌이키고 금식하여 회개한 것처럼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모든 사람이 다 안된다고 할 때 마음과 뜻을 돌이켜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2. 다윗의 길로 행한 요시야

본문에서 요시야는 이런 돌이킴으로 하나님께 큰 칭찬을 받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몬은 그의 심복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요시야는 떠밀리다시피 8살 때 왕이 되어 31년간 다스렸습니다. 이 시대는 이미 국운이 기울었고 사방의 외침으로 인해 풍전등화와 같은 때입니다. 왕위에 오르는 것도 급조해서 올렸으므로 신하들이 좌지우지했으니 하나님이 세운 왕이었습니다. 그는 그 생애에 두번 종교개혁을 합니다. 20살 때, 그리고 26살때 종교개혁을 합니다. 유다의 불길을 마지막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대 왕의 죄가 너무 크고 끝내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요시야 왕이 죽은 후 20년 후 유다가 망하고 성전이 훼파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낮에 온갖 잔인하고 음란한 일이 벌어지는 유다왕국의 멸망을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불과 20년 전의 사람이 요시야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2:2) 성경에서 이렇게 소개되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노아에 대해서는 의인이고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하며 욥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났다고 합니다. 요시야도 이처럼 소개되는 것입니다. 그는 첫째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안전에서, 코람데오의 삶을 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면 다 정직합니다. 사람 앞에서도 정직할 수 밖에 없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심과 모든 것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다윗의 모든 길로 행했습니다. 특히 그의 생애는 다윗의 영향이 아주 큽니다. 솔로몬은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따르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바로 중심이 하나님에 합한 것, 그리고 성전 중심의 법궤 중심의 말씀 중심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다우시을 하나님이 통일 왕국을 이루시고 가장 크게 사용하셨는데 그래서 어린 요시야는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다시금 유다를 회복하고 이스라엘까지 회복하자는 것 말입니다. 셋째로 그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을 동일하게 쫓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같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게에 주문한 그 내용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말씀을 쫓으면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시리라고 한 약속,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한 그 약속을 쫓은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 사후 그 민족을 이끌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시야도 이런 성정을 가지고 온전히 앞으로만 나아가니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3. 모두, 전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요시야의 종교개혁 2회 중 1차는 열왕기하에는 잘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역대하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요시야 왕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16세 때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요시야는 다윗을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다윗과 같이 해 보고자 20살 때 종교개혁을 합니다. 요시야의 1차 종교개혁은 우상의 제단과 상을 그리고 그 제사장들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은 손가락질하고 판단하고 부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것을 세워가서 세움으로 무너뜨림을 대신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정신도 그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와 성경을 세우는 것이 종교개혁이지 로마카톨릭을 그저 부정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것을 가지고 엘리야와 같이 소수라도 만들어 가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한사람, 두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세우는 것이 종교개혁이지 여럿이 기존의 것을 부수는 것은 개혁의 핵심이 아닙니다. 

1차 종교개혁은 그 가운데 큰 일이 생기는데 그것이 바로 2차 종교개혁입니다. 2차 종교개혁은 요시야가 26세, 왕위에 오른지 18년차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마음을 주셨는데 그것은 성전을 보수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에게는 짓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준비만 하게 하고 실제 짓는 것은 솔로몬에게 시키셨습니다. 즉 다윗에게 주신 마음과 같이 성전을 보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그에게 지혜를 주셨는데,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라의 멸망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내려왔는데, 성전세를 받는데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니 요시야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그 성전세를 가지고 성전을 보수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왕이 호의호식한 것이 아니라 성전을 보수하니 북쪽의 유민들과 남쪽의 거주민들이 연합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성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님이 역사를 일으키시니, 바로 그 성전궤 옆에서 공사를 하기 위해 성전의 은전을 붓는 곳에서 율법이 발견됩니다. 언약궤 옆에 모세오경을 두라고 한 성경말씀을 볼 때 아마 모세오경을 발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발견한 율법을 왕에게 읽히게 하고 왕에게 주니 바로 요시야가 옷을 찢고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명기의 말씀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대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해서 서기관 사반에게 주니 그가 왕에게 읽히는데 아마 신명기의 다음 말씀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신 28:2; 20) 바로 말씀을 청종하면 복이 임하고 악을 행하고 여호와를 잊으면 속히 파멸할 것이라는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을 듣고는 요시야가 옷을 찢고 가슴을 치면서 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22장13절은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내린 진노가 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여선지자 훌다를 보내어 알아보게 하자, 그 선지자가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왕하 22:19)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모든 것을 행하지 않았으므로 심판이 임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말씀으로 전국의 모든 사람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전국의 모든 사람을 모아서 본문 장 3절 언약의 말씀을 따르게 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코올이라고 하는데 전부라는 의미입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특징은 전부 다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전부 다를 움직여 모든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완전히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무후무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제외되면 안된다, 다 모으고 모든 말씀을 지키기로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4. 말씀을 발견하게 하심

요시야는 이런 모습 가운데 우상들을 타파하고 거짓 선지자를 죽입니다. 그 당시 성전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바알과 앗세라를 섬기는 자가 가득했고 온갖 곳에 잡신의 우상이 즐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이 창녀의 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앗세라 신을 섬기는 자들은 여자입니다. 앗세라 신은 풍요를 뜻하므로 남자들과 음란한 짓을 하고 그 이후에야 섬기러 갑니다. 그리고 그 이방신을 섬기는 여자들이 자녀를 낳고 계속 그런 습속이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때 들어온 암몬의 신들은 자식들을 태워죽이니 기드온 시냇가에 사람 타는 냄새가 나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인데, 이것을 요시야가 훼파한 것입니다. 1차 종교개혁은 무너뜨리기만 했다면 2차 종교개혁은 말씀을 순종하는 가운데 성전 수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전적인 개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리에 기초하지 않고 그저 주관에 따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신학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본문 장 12절은 선조의 것이라도 잘못된 것은 다 훼파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솔로몬 왕이 세운 것조차도 무너뜨린 것입니다. 선왕들이 세운 것을 손댈 수 없다는 금기조차도 무너뜨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하지 왕이라도 인간의 잘못된 것은 훼파한 것입니다. 여로보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세운 제단도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열왕기상은 유월절을 이처럼 지킨 왕이 없다고 기록합니다. 왜 그렇게 기록했을까요? 이것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 전부의 사상입니다. 전체 사람들을 다 모아서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없었던 일입니다. 역대하에 이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어떤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면 진리가 발견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성경 들고 말씀을 들고 선포하지만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에 종교개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발견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을 발견하게 하실까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모두, 전부, 요시야와 같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히브리 말로 코올 입니다. 마음을 다하는 것은 레바브라고 합니다. 뜻은 네페시인데 생명입니다. 그리고 힘은 모오드입니다. 그렇게 하니 전무후무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율법을 지켰다고 할 때 코올이 또 나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 요시야의 26세 종교개혁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등불같은 것이었습니다. 본문 24절은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했다고 합니다. 모든과 다가 역시 여기에도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어중간하게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의 역사

이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 돌이킨 것입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수브입니다. 회개를 뜻합니다. 신약에서는 메타노에어, 돌이킨다는 말입니다. 수브라는 단어는 아주 중요합니다. 회개하고 회심하고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모든 율법을 지키고 모든 이방 신상을 훼파하여 돌이키는 전무후무한 왕이 되었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이키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 이제 숨 넘어가는 그 사람도 그대로 두지 않고 돌이키게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땅에 와서 먼저 선포한 것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가장 처음 하신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나라” 입니다. 성도는 돌이킴의 달콤함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여전히 곤고한 가운데 있으나 하나님은 돌이키는 그 달콤함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