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1]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86)] 내가 자랑하는 것 (롬15:17-21)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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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86)] 내가 자랑하는 것 (롬15:17-21)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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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5: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롬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롬 15: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는 채웠노라
(롬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롬 15: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녹취록>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라
2017년이 오늘 하루를 마지막으로 지나갑니다. 삶의 여정이 그리 짧지만은 않은데 언제인가 하늘의 구름이 지나가듯 한해 한해 지나갑니다. 숫자 365일을 놓고 하나씩 짚어보면 꽤 오래걸리 것 같은데 24시간 살아온 시간이 이를 헤아리는 시간보다 짧지 않은가 생각을 해봅니다. 또 한편 한해 동안 아무 일이 없던 것 같아도 여러 일이 우리 교회, 가정에 있었습니다. 한해를 보내는 시점에 이 지상에 사는 우리 존재의 의미와 이유와 지향점은 어디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흘러가는 것은 개울의 물만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간다고 하지만 사실 가장 빨리 흘러가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연륜입니다. 생애입니다. 이 땅에 주어진 인생의 연한이 화살과 같이 흘러갑니다. 우리는 기쁠 때는 하루가 짧지만 몸이 아플 때는 10초도 견디기 힘듭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다분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시간이 있는 것 같아도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헤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상대적으로 시간을 삽니다. 아이들이 자라 훌륭한 일을 하러 출가하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양재천에 가니 큰 오리가 하나 있고 작은 오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큰 오리가 어미인 것 같았는데 자녀가 부모를 따라다닐 때가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좋고 나쁨을 헤아릴 자격이 없습니다.
본문의 성경은 우리에게 자랑하라고 합니다. 자랑하라고 하니 자신의 좋고 뛰어난 것을 그리하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부족하고 못난 것을 자랑하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그것과 다릅니다. 성경에서 자랑하라는 것은 본질적인 이야기입니다. 나의 나된 것을 자랑하는 것이고 내가 살아가는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자랑하기 앞서 내가 어떻게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지와 나를 움직이는 절대자를 자랑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자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가 자랑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빚어가고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라고 합니다. 이 일은 무엇인가요?
2.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것
일차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일입니다. 그의 공로로 나를 자녀 삼아주시고 상속자 삼아 주시는 그 일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나를 자랑하면서 그리스도를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나 자신을 구원한 인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자랑하지 않음으로 전도하는 것이 없습니다. 구원은 바로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나를 사신 것이요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 안에서 자랑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가장 큰 표는 바로 이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물동이를 던지고 자랑하러 마을로 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만난 표입니다. 38년된 병자가 예수님이 삼가하라고 해도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하면 병이 나아서 걸어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심령이 즐거워지는 것이 증거입니다. 다시 걷게 된 것이 병 나음의 증거라면, 우리도 그 이상의 표가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으로 되고 근원을 알 수 없는 괜히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로 표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그런 것입니다. 결국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예수를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초대 교회 극심한 핍박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자가 되었느냐 하니 그것은 그들이 예수를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제일 자랑거리는 나 자신인데 그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나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이 자랑거리가 되어 구원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있어도 없어도 살지만, 생명이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생명이 있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생명 있음을 자랑합니다. 밤에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 때 생명이 있음을 자랑합니다.
어제 밤에 기도하면서 방금 찬송한 찬송의 가사를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반석을 깨서 그 안에 저를 넣고 보호해 주시는 것을 말입니다. 유대 광야에 숨을 곳이 없습니다. 간혹 바위가 있을 뿐 모래밭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다윗이 쫓기는데 반석이 열립니다. 바위가 깨져서 그곳에 집어 넣고 하나님이 손을 덮어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큰 일 작은 일이 지나가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매번 겪을 때는 힘이 듭니다. 바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3.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 중요
사도 바울도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연약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연약함을 자랑하는 것은 절대적인 은혜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강함을 자랑하는 자는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없음을 자랑한다고 함은 나의 모든 것은 받은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만유의 만유가 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자랑법은 아주 특이합니다.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방식입니다. 내가 죄인 중의 괴수로서 죽어 마땅하나 지금 다시 살아난 것은 나를 살려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부족한 종도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게서 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평생 소원이 있다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의 간증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이 주님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전적으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나의 없는 어떤 것이 걱정되지 않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조금 못하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은혜 없는 것이 걱정이지 내 자질, 재물 없는 것이 걱정이 아닙니다. 살아보면서 느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은혜만 있으면 삽니다. 그러나 자질 많다고 교만하면 다 넘어집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자랑거리가 많았습니까? 문벌, 학실이 모두 뛰어난 엘리트입니다. 로마 시민권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자랑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교만하다 어떻다고 하니 사도 바울이 자신의 자랑할 것은 연약한 것, 미련한 것, 없는 것을 자랑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나는 쇠하여야 하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흥해지는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할 때 우리는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만인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준마가 아닌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타는가가 아니라 타는 그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누가 우리 위에 계시느냐입니다. 성령이 올라타면 푸른 초장으로 갈 것이요 악령이 올라타면 날뛰다가 절벽으로 떨어집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메시야가 준마를 타고 홀을 들고 오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자는 구례네 시몬입니다. 촌 중의 촌 사람입니다. 십자가 자체도 저주의 죽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예수님, 영광의 주라는 것입니다. 영광의 주가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 한 해를 마치고 내년을 살아갑니다. 우리 가문과 학식, 재물 없어도 됩니다. 진짜 한탄할 것은 은혜가 떠나는 것입니다. 내가 새끼 나귀라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올라타시기만 하면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 달려봤자 내 위에 올라간 자가 악하다면 다 쓸데 없다는 것입니다. 비실비실해도 좋습니다. 자녀들도 조금 못해도 괜찮습니다. 말씀 잘 듣고 예배 잘 드리고 마음이 맑으면 됩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표는 자랑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이스라엘 백성에게 집이라는 것은 안에 속한 본래의 계통을 의미합니다. 내 자랑 하는데 예수 자랑 하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자랑하십시오.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자랑하고 싶습니다. 어머니를 어떻게 자랑합니까? 어릴 때 놀다가 온수가 없으니 씻지도 않고 그러다 보면 손이 터지고 얼굴도 얼어서 엉망이 됩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해질녘 되면 우물물을 끓여서 가져나와 손과 얼굴을 씻겨 줍니다. 그리고 크림을 발라줍니다. 그러면 내 얼굴이 깨끗해 집니다. 그래 어머니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얼굴이 깨끗하고 손이 깨끗하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튼 손 더러운 얼굴을 씻겨준 것으로 어머니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가 맑고 착하고 성격이 좋다고 그래서 예수님과 통해서 만나서 잘산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자랑: 아들 삼으시고 상속자 삼으시고 하나님 일을 감당하게 하신 것을 자랑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자랑합니다. 이것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아들 삼아주신 것과 둘째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 삼아 주신 것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롬 8:17)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가 채울 것을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갈 길을 아시고 밝히 보여주십니다. 결코 스스로 길 나서지 마십시오. 내가 조금 안다고 스스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십시오. 어떤 일도 그 자리에서 결정하지 말고 밤에 여호와께 아뢰십시오. 그가 최선의 길을 알고 우리는 못하는 미래를 아시고 조망하시므로 그렇습니다. 주님은 영원히 붙들어 주십니다. 세상의 아버지도 좋은 것으로 주실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의 아버지가 성령에 속한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주님이 산상보훈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증거를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무엇이든 구하면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90% 이상 우리가 가진 것은 기도입니다. 다 계산하고 3% 부족한 것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90% 이상이 기도이고 나머지 가지고 어떻게 해보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은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고 그러려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내 머리, 내 열심을 자랑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맡기면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게끔 만들려고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이 없으면 하나님 자랑을 우리가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나님의 일을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성도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조금만 갖춰져 있으면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 우리의 큰 자랑거리가 됩니다. 우리가 어찌 감히 하나님의 일에 동참합니까?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의 부족하고 모난 점을 고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본문 18절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뛰어났으나 그의 일이 그릇된 것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만나 빛으로 임하셨습니다. 그 빛이 강해 눈을 멀게 했습니다. 다시금 새로운 눈을 뜨게 해서 그를 주의 종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했습니다. 18절, 이방인들의 빛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상속자 자녀가 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자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내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을 자랑하게 하기 위해 쓰시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오히려 일을 통하여서 우리를 부요하게 하고 일을 통하여서 우리의 지경을 넓혀 주시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와 같이 우리가 지경을 넓혀 달라고 할 때 여호와의 행사를 통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가계가 흥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되 여호와의 행사를 보는 가운데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내가 여호와의 일을 위하여 사용되는 가운데 그렇게 되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 상급을 얻는 삶, 지상의 삶, 나그네의 삶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일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자는 30배, 60배 결실의 법칙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1더하기 1은 2라는 것만 압니다. 여호와의 일에 동참할 때 하나님의 일과 결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사용됩니다. 지식조차도 여호와의 일을 위하여 사용될 때 확 바뀝니다. 법학을 그만두고 신학을 하니 저 역시 하나님이 열매 맺게 하셨습니다. 배우는 것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할 때 내 가계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될 때 흥왕해 집니다. 그것이 바로 자랑거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종이 되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말입니다. 그 때는 최의 교회 예루살렘 교회 하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흩어져서 안디옥 교회인데 거기서 파송한 선교사가 바울입니다. 그 선교의 보고를 예루살렘 교회에게 했는데 마지막 선교여행 때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옥에 갇히는 것을 환상으로 봤는데도 다시 들어갑니다. 그것은 그가 교회의 종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신이 잡힐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갑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본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일을 할 때 교회를 위한 섬김의 일, 봉사의 일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본문 19절은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 까지 복음 전하는 일을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일루리곤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소아시아와 유럽까지 포함되는 지역입니다.
5. 주의 일을 하면서 성도가 온전해짐
우리 교회가 새해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기를 원합니다. 저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새로 옮겨가는 곳은 청년이 많습니다. 광장 같은 곳이 우리 교회의 터입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기독교의 진리나 여러 것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랑하는 것은 도를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것이 자랑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를 자녀와 상속자 삼으신 하나님 그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되냐 하니 성령의 능력으로 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분별하게 하십니다. 어느 길로 가고 옳고 그름을 알게 하십니다. 내 발걸음 가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지시해 줍니다. 세상의 일은 악한 영이 감당하지만 교회의 일은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하면서 내가 더불어 온전해집니다. 내가 온전해 지는 것은 말씀을 전하면서 말씀을 따름입니다.골로새서에 온전해진다는 말이 한번 나옵니다. 복음을 전할 때 거짓을 말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전할 때 온전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친히 역사하고 간구합니다.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지만 무엇을 구할지 알게 하십니다. 영의 소욕을 좇아 가십시오.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됩니다. 기도 제목이 없다거나 있다거나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성령이 역사하시고 친히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탄식이 앉아 있는 성도에게 나오는 것입니다. 주여 하면 성령이 친히 탄식하시고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친히 탄식함으로 마땅히 빌 바를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기도하는 것이 그 때 성령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제목 주신 것도 자랑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자랑하게끔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부요함이 없습니다. 세상의 부요함은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제물과 옷 같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내 가정과 사업터가 부요합니다. 어색하지 않고 꽉 차는 것 같습니다. 이전해 가는 교회도 성령의 부요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채울 것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많이 신경을 쓰지만,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하나라도 데려다가 살리는 것입니다. 큰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주시면 전국 교회에서 우리 교회에 모이기도 하고 여력이 되면 개척교회 하는 목사님 초청해서 강해도 하고 말입니다. 우면산에서 같이 위로도 하고 말입니다.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버릇처럼 잘 말합니다. 교회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굳이 양이 아니더라도 우리 교회가 사랑의 교회처럼 커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6년 동안 이만큼 했으니 하면서 산술적으로 계산되는 분이 아닙니다. 저는 기도하면 서울의 관문처럼 느껴집니다. 서울의 관문에 우리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우면산 밑에 제 1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 마음 속에 그런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 큰 일으 소망하는데 작은 시험이 없겠습니까? 본문 18절은 그 일은 말씀과 행위로 한다고 합니다. 바울과 베드로의 입술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말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말을 넣어 주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사도 바울의 말을 입에 넣어 주십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는 베드로의 입에 말을 넣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 말을 넣어 주십니다. 그 말로 하나님을 자랑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달리다굼 일어나라, 에바다 열려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새해에 영적으로 일어나고 영적으로 열리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말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혀는 거듭나지 않으면 사르는 혀요 죽이는 불이지만 거듭난 혀는 새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새해에는 예쁜 말을 하십시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마귀 사탄은 부정적인 말을 하면 친구 부르는 줄 알고 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말을 주시면서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를 온전하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행위도 변하게 하십니다. 행동을 통해서 열매 맺게 하십니다. 새해에는 행실의 습관을 새롭게 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주의 종으로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 보는 것은 온전한지, 맑은 것을 마음의 창인 눈으로 보고 있는지 말입니다. 나쁜 뉴스도 가급적 대충 보고 자세히 보지는 마십시오. 나쁜 뉴스는 내가 도울 만한 것만 자세히 보십시오. 생각하기도 싫은 뉴스는 보지 마십시오. 새해에는 보는 것을 바꾸고 붙드는 것을 잘 붙들어야 합니다. 손에 잡으면 입에 들어가고 몸에 걸칩니다. 아예 나쁜 것은 손에 잡지 마십시오. 길도 잘 가십시오. 멀어도 돌아가십시오. 우리는 이기지 못합니다. 이를 세 가지로 설교문에 써봤습니다. 첫번째로 좋은 것을 보십시오. 두번째로 좋은 것을 잡으십시오. 세번째로 좋은 곳을 가십시오. 우리는 못이깁니다. 안가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의 이름의 터가 있는 곳에는 전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의 빛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오해하면 안됩니다. 이 당시는 모두 선교상황으로 전도되지 않은 이방으로 가겠다는 의미이지 교회가 있는 곳에 다른 교회가 들어가면 안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랑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가진 것을 자랑하는 자는 소유를 자랑하는 자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자신을 자랑하고 그것이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나의 것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자랑해서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171231]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86)] 내가 자랑하는 것 (롬15:17-21)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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