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8]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89)] 서로 문안하라 (롬16:1-16) 문병호 목사

조회수 97


[20180128]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89)] 서로 문안하라 (롬16:1-16) 문병호 목사



(*음성파일: 클릭하여 다운로드 하시면 됩니다.)

(롬 16:1)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롬 16:2)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롬 16:3)○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롬 16:4)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롬 16:5)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롬 16:6)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롬 16:7)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롬 16:8)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롬 16:9)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롬 16:10)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롬 16:11)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롬 16:12)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롬 16: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롬 16:14)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롬 16:15)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롬 16:16)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녹취록>
 



1. 구원의 은혜를 입고 주를 위해 산 자들

로마서 설교를 하면서 오늘 본문이 가장 길 것입니다. 여러 인물들이 나오는데 한 인물씩 우리가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습니다마는, 전체적으로 주를 위해 도우고 헌신한 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서 길지만 한 본문으로 삼아 주의 일을 하는 것의 의미와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시는지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혹은 부류라기보다 두 특징을 가졌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들입니다. 먼저 그 자신들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저 감사하지 않고 모른체 하며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홉명의 나병 환자같은 자들이 아니라 다시 찾아와 감사하는 한 사람의 나병환자와 같은 자들 입니다. 감사하면서 주를 위해 애쓴 사람들인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유두고도 있지만 그 이름은 여기 없습니다.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칭찬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급은 아닙니다.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큰 간증의 경험이 없더라도, 물론 날마다 사는 것 자체가 큰 은혜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놀랄 만한 일이 없더라도 주를 위해 애쓰고 사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상급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상급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일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애쓰고 근심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큰 일을 친히 이루시되 사람을 이용해서 하십니다. 물론 구원의 역사도 창조의 역사도 성령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일방적인 뜻 가운데 내려주십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성경의 많은 일들, 사실상 대다수의 일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셔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용하셔서 주의 일과 교회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를 위하여 교회를 통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할 때 세상은 사람입니다. 독생자를 보내시되 사람으로 보내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사 아들을 사람으로 보내셔서 사람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온전하지 못하고 타락했으므로 영원하신 자기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보내셔서 사람을 위한 사람의 일을 이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자신의 남은 일을 사람이 하기를 원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요 나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천사는 항상 사용되지만 심부름꾼입니다. 사람을 사용하셔서 일을 이루십니다. 천사는 사람이 일을 할 때 수종드는 것입니다. 

2. 일꾼에게 허락하시는 동역자

신앙의 일꾼들에게 항상 훌륭한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일을 하시되 여럿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서로 동역자들이 도와서 하나가 되게 하시고 교회도 은사를 주시는데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다양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 교회도 이번에 건축을 할 때 어떤 분은 이일을 또 어떤 분은 저 일을 잘합니다. 그래서 도무지 답이 안나오다가 누가 한 말씀 하시면 답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데코타일 공사를 할 때 문제가 있었는데 여러 의견이 있었습니다. 남상수 목사님은 천막을 지어서 깎자고 하시고 저는 오공본드를 발라서 붙입니다. 그러자 본드가 시커멓게 남아 있는데 유리창 닦는걸로 뿌리니 없어졌습니다. 여러 의견이 많습니다. 김집사님은 순간접착제를 붙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결론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 일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데 다양한 은사가 있습니다. 저도 멀대같지만 키가 있어서 높은 곳을 쓸고 하는 것을 잘합니다. 각각의 은사가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 11절을 보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라고 주의 일꾼을 표현합니다. 오늘 그 인물들의 면면이 나와 있습니다. 

3. 교회의 일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

먼저 1절은 뵈뵈를 추천한다고 합니다. 뵈뵈는 아마 과부였을 것입니다. 자매라고 부르지만 말입니다. 남편이 없으면 당연히 과부가 아니냐고 하지만 교회적으로 과부는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디모데전서 5장 9-10절은 과부의 명부에 오른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과부의 명부에 오른 사람은 특별히 교회가 보호를 했다고 여겨집니다. 그 명단은 같은 장 10절에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고 자녀를 잘 양육하고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고 환란당한 자들을 잘 구제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들이 그 명부에 오른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질병으로 많이 사람이 죽지만 당시에는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가 한 세대의 남자들이 다 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특히 다스려야 했는데 교회도 이것을 다스린 것입니다. 그런 과부 중에 뵈뵈가 있는데, 그녀는 사도 바울을 잘 도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 뵈뵈는 교회의 일꾼입니다. 오늘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영어로 minister입니다. 라틴어로 여성형인데 보통 사역자라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의 종들을 자주 minister라고 합니다. 이는 종 중의 종을 의미합니다. 교회 사역자라고 하니 상당히 고상해 보이지만 상종입니다. 종 주의 종입니다. 이런 교회의 일꾼인데 헬라어로 하면 바로 디아코노스입니다. deacon은 집사입니다. 집사라는 말이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이 뵈뵈는 교회의 디아코노스, 일꾼으로 섬기는 종으로 많은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뭔가요? 그는 자기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해 봤습니다. 황혼이 질 때 농부는 땅을 기경하고 수확철에는 수확의 양을 계수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감당했는지를 놓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일꾼입니다. 우리 자매라고 했으니 뵈뵈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새야 홀로서기가 어렵지 않지만 옛날에는 고아와 과부가 정말 어렵습니다.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를 악물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 다스리기도 어려운데 나그네를 대접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고 환란당한 사람을 구제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했다고 합니다. 과부 됐다고 돌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애쓰고 교회를 붙들고 기도하고 모든 선한 일을 감당한 그 사람이니 돌보는데 뵈뵈 가 바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4.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일꾼을 돌보는 것

2절은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잘 돌보라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는 그저 하나님이 돕는다, 열심히 일하면 하나님이 상급 주실거라는 영역도 있지만, 사람이 잘 기억하고 돕는 영역도 있습니다. 저도 혹시라도 그것에 무관심했다면 회개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평생 개척교회에 애쓰고 고생한 사람들을 후임 목사가 무시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애쓴 사람들을 합당한 예절로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돌보실 것이라고 하고 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도우라고 합니다. 뵈뵈는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뵈뵈에게 두 이름을 붙이자면 교회의 일꾼과 사도 바울의 보호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일은 높낮이가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그런 서열관계를 따지지만 말입니다. 사도 중의 사울인 사도 바울이 뵈뵈를 자신의 보호자라고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얻기를 구했지만, 역으로 말하면 엘리사는 엘리야를 수종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많이 배우고 감동을 받았지만 역시 모세를 수종드는 자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회막에는 아무도 갈 수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 그곳에 갈 수 있었고 그가 모세였는데, 바로 모세를 수종드는 여호수아는 모세와 함께 회막의 영광을 봤습니다. 이 원리를 봐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달리 말하면 모세의 종입니다. 모세 신발들고 다닌다고 보면 됩니다. 신학교 가서 고급스럽게 공부해서 어떤 신학이나 율법의 교리로 모세를 잇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세의 종입니다. 그가 한 시대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몸종이었습니다. 신발을 품에 넣어 따뜻하게 한 종이었는데 그가 일본의 막부시대를 통일한 자가 됩니다. 세상 역사도 이러한데 주의 일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는 질서가 그렇습니다. 

누가는 성경말씀을 참 아름답게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누가행전이라고도 합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말입니다. 신학교에 누가행전이라는 과목도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누가가 모두 기록했는데 예수님과 사도들의 역사를 가장 잘 기록한 책입니다. 이 누가는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있느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말입니다. (딤후 4:11) 디모데도 참 귀합니다. 겉옷을 가지고 오게 하고 가죽에 쓴 책을 가져오게 하라고 사도 바울이 부탁합니다. 교회 일을 위하여 애쓰고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만 그 가운데 우리는 합당한 예절로 일꾼을 서로 돌봐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이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 한국교회에 선조들이 이룬 일이 많습니다. 

5. 하나님이 일꾼에게 사람들을 붙이심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나옵니다. 브리스가는 브리스길라입니다. 이 많은 이름 중에 처음 두 이름이 여자라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브리스가가 아내고 아굴라가 남편입니다. 즉 여성인 뵈뵈와 브리스길라가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많은 일들이 여자들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브라스가와 아굴라는 로마의 환란을 피해 에베소에 와서 바울을 만나서 큰 목회를 한 분들입니다. 이들은 4절, 바울을 위하여 자기 목이라도 내어놓았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누군지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맞고 찢기고 상하고 매이고 빠지고 갇히고 하는 것들을 읽고 눈에 가시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가지가 그려집니다. 전기에는 대머리에 볼품이 없다, 키가 작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도 바울의 가장 큰 일의 원동력은 사도 바울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붙이신 많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칼빈도 어릴 때부터 석학에게 라틴, 헬라, 히브리어를 배우고 루터파들의 중요한 인물을 붙여줍니다. 사도 바울도 보면 그런 것이 보입니다. 얼마나 사도 바울이 성품이 좋았을까요, 통솔력이 있었을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게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사도 바울의 통솔력에 초점을 맞추는 학자들도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어떻게 그런 지도자가 됩니까? 하나님이 주관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배하신 칼빈, 하나님이 지배하신 바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잘난 것이 아닙니다. 저도 보면 리더십이 많이 사람들이 들끓고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만,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부부로서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습니다. 이 당시 놀랍게도 아내 이름이 먼저 나옴을 볼 때 교회가 얼마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일찍 남녀 간 교회 안에서 계급제가 아닌 평등하게 섬기도록 했는지 볼 수도 있습니다. 구분은 되지만 계급적으로 나누지는 않은 것입니다. 

6. 주를 위해 수고하고 힘쓰는 것

또 5절은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6절은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이 마리아는 누군지 모릅니다. 최소한 성경에 마리아가 일곱번 나옵니다. 복음서에는 다섯번 나오고 말입니다. 다 다른 마리아입니다. 같은 마리아도 있을 수 있지만, 어떤 마리아인지 모르지만 주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7절은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문안하라는 것은 샬롬입니다. 저도 이메일을 쓸 때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하라는 의미로 샬롬을 자주 씁니다. 어제 이태원에서 쓰던 서류를 정리하다가 김원진 전도사가 몇년도인지는 모르지만 일년 계획을 잡은 문서를 보았습니다. 제가 그거 들고 많이 울었습니다. 일년 계획을 잡아 놓았는데 군대간 원욱이 생일 3만원으로 예산을 잡아 놓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원진아 잘있느냐 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것을 추스려 사무실에 넣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16장에 이름이 올라야 할텐데, 그것이 주님의 일꾼일텐데 말입니다. 

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옥에 갇히고 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거치는 돌을 보고 피해가면 짐승이고 치우면 인간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내 눈앞에 뭐가 있으면 수고스럽더라도 옮기면 성도입니다. 그저 피해가면 뒷사람도 피하고 계속 피해다닙니다. 주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큰일이겠습니까? 일을 놓고 저도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 들어가기 전에 말입니다. 가평에 두밀리에서 기도원에 있다가 등록금 벌려고 춘천에 가기도 했는데요, 가평에 있는 동안 보일러가 터졌는데 그것을 놓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쪽같이 보일러 물이 통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1학년 때 낙도 선교 갔을 때 문닫은 교회가 있어서 수도를 쓰려고 하는데 물이 안나와서 그걸 붙들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신비주의 아닙니다마는, 그때도 기도하니 물이 나왔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저도 이런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아침에 제 손을 보니 망치와 칼에 베인 자국이 많았습니다. 상처가 다섯 군데 있습니다. 핸드폰이 지문 인식이 안돼서 보니 데코타일 접착제 바르느라 손에 지문이 일시적으로 없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해주시니 말입니다. 사실 그게 큰 일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사용해주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16장에 우리의 이름이 올라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많이 수고하고 힘쓴 자들입니다. 오늘 아침에 교회 오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조금 더 수고해서 교회 앞의 쓰레기를 치우지 못한 것이 말입니다. 

본문 12절은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자라고 합니다. 주를 위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기도만 그리 할 것이 아니라 수고하자는 말입니다.13절에도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라고 합니다. 루포는 구례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자의 아들입니다. 루포와 알렉산더의 아버지가 구례네 시몬으로 나옵니다. 주석에 따라 다양한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시골에서 올라온 구례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 루포와 알렉산더라고 성경에 나옵니다. 그렇게 볼 때 사실 구례네 시몬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시골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흑인이라고도 합니다. 어떻게 주의 일을 감당합니까? 제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비아 돌로레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과정의 다섯번째 장소인 그곳에 방문했습니다. 거기에 ‘십자가를 짐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십자가가 사실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날 하도 가혹한 심문을 받아 못했지만 두 강도는 모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구례네 시몬은 정말 큰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귀하지만, 주를 위해 산다는 계보를 이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7. 동역의 질서

본문 마지막 절은 너희가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초대교회에 저스틴의 글에 보면 이 거룩한 입맞춤은 먼저 기도를 하고 성도들이 서로 입맞춤을 교제로서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찬에 참여한 후 구제하고 전도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입맞춤입니다. 이것을 흉내내서 교황이 땅에 입맞추기도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함께 일하는 것, 동역하는 것의 시작이 거룩한 입맞춤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0절도, 데살로니가전서 20장 6절도 또 5장 25절도 말합니다. 특히 5장 25절은 기도를 부탁하고 20장 6절은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즉, 입맞추기 전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먼저 위하여 기도하고 교제의 포옹, 현재로 하면 악수 하라는 것입니다. 교제의 포옹을 하기 전에 기도하는 순서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서로 형편을 아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춥고 하면 집의 자식같습니다. 어디서 일하는 모습이 선히 떠오르고 구로구로 가고 소공동으로 가고 집에서 일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기도하고 만났을 때 '오셨습니까' 하며 입맞춤이 있고 그리고 떡을 떼고, 그리고 주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순교자 저스틴의 글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이 거룩한 입맞춤이 있는 것입니다. 

16절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가룟 유다와 같이 예수님을 파는 외식의 입맞춤이 아닌, 진정 기도하는 가운데 입을 맞추고 그 가운데 떡을 떼고 나누고 그 가운데 죽기까지 주를 위해 전도하고 헌신하고 구제하는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마음이 편합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습니다만, 교회가 더 아름답고 의자 수가 많아질수록 부담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십니다. 분명히 이 지하에 기계의 훈풍 뿐 아니라 영적 역사가 불어 한국 교회의 큰 구령의 역사가 이 터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개미들만 줄서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줄서서 영적인 양식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작은 일이라도 주님 앞에서 기도하다가 사용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주를 위해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 이상 지상에서 가치가 없습니다. 만대에 주를 위한 백성들이 이곳에서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숫자적인 시간적인 공간적인 부흥보다 영적인 부흥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 저도 모두 약합니다. 제가 제일 부족합니다. 그러나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면 아름답게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예배당을 지어내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우리 교회 저력 아닙니까? 하나님이 300 용사에게 전쟁을 맡겼는데 우리는 이 적은 숫자로 일을 했습니다. 이런 로마서 16장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