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1]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91)] 영광이 세세토록 하나님께 (롬16:21-2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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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1]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91)] 영광이 세세토록 하나님께 (롬16:21-2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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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6:21)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롬 16:22)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롬 16:23)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롬 16:24)(없음)
(롬 16:25)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롬 16:26)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롬 16:27)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녹취록>

1. 동역자

그 동안 저희들은 절기를 빼고는 로마서를 계속해서 한 절 한 절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지만 함께 묶어서 마지막 강해로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24절은 말씀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고 그 앞부분은 주의 종들에게 문안하라는 내용입니다. 이후 후반부는 '내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 비밀의 계시를 나타냄으로 이제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아멘 하는 것으로 로마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아멘으로 끝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며 그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또한 합당합니다.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께 있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로마서가 오직 믿음으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이신칭의의 복음을 담고 있는 것으로 잘 알고 있지만, 로마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11장 36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래서 12장 1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영적 산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루터의 이신칭의의 복음으로 종교개혁을 시작했다면, 칼빈은 로마서 11장 36절, "오직 하나님께 영광으로”의 말씀으로 결론을 지었다고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특히 동역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21절은 '나의 동역자 디모데'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물론 문자 그대로 디모데만 지칭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모든 주의 일꾼에게 쓸 수 있습니다. 동역자를 헬라어 언어로 보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저도 그것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울고 기도하고 바라고 협력하는 주의 일꾼이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저희 교회도 저기 뒤에 마련한 식탁에 음식이 벽으로 튀지 않게 아크릴판을 설치하는데 남목사님이 계셔서 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일은 결코 한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함께 하게 하십니다. 그럼으로 부족함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큰 뜻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면 동역이 아닙니다.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라고 잘못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함께 모여 일하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 완벽해서 맡겨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협력하고 부족한대로 채우고 그 가운데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사를 소망하면서 그 조화 가운데 주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주의 동역자가 서로 될 때 교회가 한 몸이라는 것과 손과 발의 지체임을 알게 됩니다. 관념적으로만 지체인 것이 아니라 주의 일을 해보면 알게 됩니다. 가만히 서 있는 수레는 한 바퀴만 보이지만 움직일 때 네 바퀴, 끄는 핸들이 모두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교회는 한 몸이라고 했습니다.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 서로 문안하고 축복하고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한 쪽만 자라면 기형입니다. 우는 주의 성도가 있으면 함께 기도해야지 나만 기뻐하면 안됩니다. 함께 듣기에, 함께 전하기에 힘쓰는 것이 올바른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크게 되기 전에 함께 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드리고 주의 터를 마련했으니 모이기에 힘쓰고 떡을 떼기에 힘쓰고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먼저 하나가 되어야 흩어집니다. 하나님은 하나가 될 때 흩어져서 전도하게 하십니다.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이 하나로 묶어주고 그것이 우리 가운데 아멘이 될 때 흩어져도 한 진리 가운데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한 하나님께 한 영광을 돌리는데 그것을 특히 하나님의 일을 통해 행하십니다. 

21절은 나의 동역자 디모데가 나오고 알 수 없지만 '나의 친척에 대해 문안'한다고 나옵니다. 아마 바울의 친척에 복음 전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2절은 사도 바울의 글을 대서해주는 드디오도 문안한다고 합니다. 말 하는 사람이 있고 글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글을 쓴다는 것이 아주 큰 일입니다. 당시에는 타자기가 없으므로 정서로 대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24절은 온 교회를 돌보아주는 가이오도 문안한다고 합니다. 장로 가이오라고도 나오지만,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하튼 온 교회를 돌보아주는 가이오라는 칭호를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요. 저도 교회 일이 참 많음을 요새 느낍니다. 치울 것도 주울 것도 많습니다. 온 교회를 돌보는 것은 그러므로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일차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연약한 사람을 돕는 재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로 마음 씀으로 교회를 돌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 성의 재무관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이미 이 지역의 관리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무관이니 높은 곳에서 한 시의 금고를 맡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초대교회에 개종이 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러한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친척, 대서자, 교회 돌보는 자, 재무관, 형태를 불문하고 말입니다. 이번 주에 대화를 하면서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황금 어장이라고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다니고 길도 반듯하고 깨끗하니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이 있다면 생각나는대로 혹은 혼자 십자가지기교회에 모여서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 앞에 우리소라는 곳을 보면 마당에서 음식을 팔고 있습니다. 우리도 봄이 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은 뵈뵈와 브리스길라 두 여인의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인종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름이 거론됨은 복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

25절은 나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나의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교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도 나의 복음입니다. 내가 믿고 고백하고 체험하고 소망하는 나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그들의 복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느 신학자 목사의 복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피의 복음 삶의 복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역사해야 합니다. 굳은 터를 기경하여 새싹을 틔우는 운동력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폐부를 찔러 다시 기경해야 합니다. 각자 각자가 내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나의 복음이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하나로 살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이방인의 사도요, 그리스도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분토로 여기고 복음이야말로 생명을 바쳐 그 은혜 가운데 기뻐할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다윗, 솔로몬, 엘리야의 하나님이고 나의 하나님입니다. 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청준 소설가의 ;당신들의 천국;이 아닙니다. 나의 천국입니다. 주님이 나의 하나님을 외치며 십자가에서 외치시고 버림 당하신 것은 그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부르며 버림 받는 자리에 서신 것은 우리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처음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가 예수를 통해 모든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그 복음은 나의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우리의 유일한 구주로 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을 고백하고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다스리심을 고백하는 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의 하나님, 그것은 아직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을 구렁텅이와 감옥에서 건지신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때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재미있는 이야기 듣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남의 이야기로 받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나의 말씀으로, 주관적 확신을 가지고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

이 복음이 이제 25절,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 나타나신 바 되었다고 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드러내시면 두렵다는 것과 두번째로 그래도 하나님이 드러내셔야 은혜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일차적으로는 제 모습이 부끄럽고 연약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드러내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6절 마지막, 신비와 비밀의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비밀이 계시되는데 누구에게 되느냐 하니, 나에게 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계시되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계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영원하시고 자존하시고 전능하신 조물주입니다. 처음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계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독생자를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한 것입니다. 알게 하시는 진리와 아는대로 누리게 하시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말로 따뜻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편을 가르고 혼을 내지만, 하나님의 지식은 정확하게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지만 동시에 항상 은혜가 넘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천지만물 창조의 비밀을 알고 싶습니다. 욥이 그것을 알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그 비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그 비밀을 나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련하니 알려주신 것입니다. 연약하니 알려주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으니 알려주신 것입니다. 내 자신이 비밀의 통로요 내 자신이 비밀을 드러내는 거울이요, 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없는데 하나님의 전능하심,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이 뭐가 있을까요? 세상의 철학, 과학 지식을 담고 있으면 세상은 인정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다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내 안에서 역사합니다. 능력과 자질은 이방인들에게 역사할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약한 것을 들어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고 미련한 것을 들어 지혜로운 것을 부끄럽게 하고 없는 것을 들어 있는 것을 폐하는,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건의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건의 비밀은 윤리주의가 아닙니다. 내가 잘 지켜서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릎 꿇을 때 폭포수와 같이 위로해주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시라고 기도할 때 나를 보듬으시고 전능하신 아버지되심을 나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비밀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성도 안에 역사함

골로새서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영광의 광채를 우리에게 드러내주셨다고 합니다. 그 비밀이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너무 많아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경험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편에 서면 어떤 세상 유혹과 권세도 틈타지 못합니다. 이 신비와 비밀이 우리에게 계시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저 먼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은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보다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 더 크게 드러나시는 하나님입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삶으로 행실로, 정서적으로 그 비밀이 드러납니다. 

여러분, 빨리 우리 교회에 기도처를 찾으십시오. 나는 어느 자리에 앉아서 기도해야겠다고 정하십시오. 저는 이 비밀, 신비라는 단어, 신비의 계시가 복음이요 로마서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일생을 걸었습니다. 다메섹에 갈 때는 예수 믿는 자를 죽이려 갔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크게 사용된 자들이 없을 정도로 사울이 바울이 되었습니다. 파울루스는 작은 자라는 의미입니만, 작은 자가 되엇을 때 하나님이 그를 가장 큰 자로 사용하신 것인데, 그는 그 자신이 복음의 비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경건, 믿음, 교회, 구원, 섭리의 비밀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우리 안의 비밀이 역사합니다. 복음의 비밀이 역사합니다. 산 너머, 저 높은 곳 하늘에서 찾지 않습니다. 신명기 30장, 로마서 10장은 '말씀이 내 입, 내 심령에 있다'고 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역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기쁨을 맛본 자는 세상의 지혜와 기쁨이 비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의 깊고 오묘함(롬11:3)이 있습니다. 지난 주 배운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교훈(디다케)와 전파(캐리그마)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들고 우리가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롭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계획을 가지십시오. 최고의 계획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27절, 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그것이 택함 받은 백성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5. 믿음과 긍휼의 역사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 위로와 평강과 희락이 있기를 바랍니다. 잘 누리기를 바랍니다. 잘 누리면 필히 열매를 맺습니다. 가장 양분과 수분을 제대로 누린 나무가 가을에 가장 맛있는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성도의 삶은 누리는 것입니다. 먹고 자고 입는 것은 다 하부적입니다. 성경에 상부적인 것이 있다면 영원한 생명에 속한 것, 주 안에서 기뻐하고 신령한 꼴을 먹고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저 밑에 있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를 누리면 더불어 다 됩니다. 영적인 말씀의 비밀의 계시가 내 안에서 역사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이성과 판단이 역사한다면 우리에게는 믿음과 긍휼이 역사합니다. 판단으로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습니다. 긍휼의 그릇, 접붙임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마치면서 27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저는 아무리 작은 글을 쓰더라도 마지막에 오직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을 올립니다라고 씁니다. 그래서 그것이 있으면 제 글인 줄 압니다. 영국에서 지도 교수님이 쓰는 것을 보고 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 아름다운 전을 주신 하나님,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하시고 기도와 예배의 처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초대교회 성도와 같이 마음껏 모이고 기도하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크게 보면 크게 기쁩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역사합니다. 로마서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다 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로마서 강해가 끝나면 기독교의 진리 책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기도 할 것입니다. 강해설교를 하면 신약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마치면서 다음에는 기독교의 진리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를 무조건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입니다.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아무도 끊을 수 없습니다. 아직, 여전히, 언제나 곤고함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담대함이 있습니다. 곤고함이 있더라도 담대함으로 넘어서기 바랍니다. 곤고함이 담대함을 지배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내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말입니다. 곤고함이 넘어섯 담대함이 되는 것이 나, 가정, 직장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곤고함으로 꽉 찬 가운데서도 이 담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 비밀의 계시, 신비의 계시, 내가 하나님의 비밀덩어리임을 아시고 내 안에서 기적과 권능의 역사가 일어남을 아시고 믿음과 기쁨 가운데 희락과 화평이 있기를 축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