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1]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74)]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 (롬13:1-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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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74)]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 (롬13:1-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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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3: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 13:3)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롬 13:4)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롬 13:5)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롬 13:6)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 13:7)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녹취록>



1. 하나님의 나라만이 최선이요, 지상에서 이상 국가는 존재하지 않음

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통해 아담에게서 인격적인 순종을 보고자 하셨습니다. 마음과 생명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보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순종의 명령을 어기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동산 중앙의 실과를 따먹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어긴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타락하여서 생명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사망에 속하는 그런 자리에 설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을 영 없애지 아니하시고 그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그 인간에게 가죽 옷을 입혀주시고 비록 에덴 동산에서 생명나무에게서는 멀어지게 했지만, 이 지상에서 자녀를 낳고 국가도 이루고 살게 했습니다. 

요새만큼 국가만큼 강한 화두, 주제가 되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옛 중국의 은나라, 주나라 등 가장 국가가 흥왕했는데 이 때 성왕은 '왕이 없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자'라고 여겨졌습니다. 국가는 그 존재가 없다고 느끼게끔 할 때 가장 잘하는 때입니다. 국가는 최선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류가 죽지 않고 약육강식의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두신 임시적인 기관입니다. 대통령, 장관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홍길동 전에 보면 율도국, 이상나라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태평할 때, 대통령이 좋은 자로 있을 때 화평하지만, 인류의 역사에는 폭군이 더 많습니다. 인간이 국가를 만들어 왕이 백성을 위한다기보다 백성의 공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탈린은 러시아인 2천만 명을 죽였습니다. 히틀러는 또 어떻습니까? 새벽에 게슈타포가 지식인들을 잡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본문 로마서 13장 1절에서 7절은 권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특히 정치, 국가 권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늦게 국가를 허락하셨습니다. 주변 모든 국가가 왕이 있고 국가를 형성했을 때도 끝까지 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전쟁도 잘할 것 같고, 일사 분란하게 움직일 것 같으니 그리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사울 왕을 세워주시되, 왕이 그들의 것을 노략질하고 그 권세에 눌려 신음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합니다. 국가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최선이지 국가는 최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실 때 그 나라가 이상적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국가를 소망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국가는 어느 정도 선에서만 지혜로운 것입니다. 아파트에 관리인이 있습니다. 정해진 목적이 있어 그를 뽑을 뿐이지 그 자체가 뛰어나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도 그런 것 뿐입니다. 성인이, 완벽한 사람이 되어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영구 집권을 시키지 않고 단임제, 중임제를 쓰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말씀을 보는 기본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이상국가는 없다는 것입니다. 

2. 세속 권세의 의미: 하나님의 통치의 도구

본문은 세상의 권세가 다 위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이 그것을 정하셨다고 말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헛되고 헛되니 세상 것이 다 헛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잘 아실 것은 세상 것이 다 헛되다는 말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염세주의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도 이 땅에서 의미를 찾아 살아야 합니다. 이 땅의 어떤 것도 하늘나라에 가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한 가져갈 수 없다는 점에서 헛됩니다. 그러나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두시고 국가와 권세를 세우신 것은 그것 자체로는 헛되지만, 의미가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말합니다.  

다니엘서서 4장 17절을 보면 당대 가장 잔인한 왕으로 느부갓네살이 나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었습니다. —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단 4:17)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든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지 않고 천한 사람을 세워서 그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단 4:26) 느부갓네살은 아주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다니엘에 말하는 것입니다. 바빌론이 하나님의 나라를 멸망시켰어도 그 바빌론조차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것을 알아야 당신이 온전해진다고 느부갓네살에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패역한 때가 사사시대입니다. 왕이 없으니 각자가 소견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이 없습니까? 정말 이스라엘에게 왕이 없었습니까? 그들은 진정한, 왕 유일한 주권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계시는데도 인간의 왕이 없으니 왕이 없다고 하여 소견대로 행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삼손도 입다도 세우시면서도 왕을 세우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왕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미디안에게 그들을 붙이셨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니 사사를 세우고 나라가 멸망하고 하는 일을 반복하신 것입니다. 

3. 만왕의 왕, 이기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성도도 세상을 이김 

이 가을에 오곡백과를 주시는 진정한 왕은 하나님입니다. 대통령이 선정을 해서 풍년이 오지 않고 악정을 해서 흉년이 오지 않습니다. 하늘의 비, 해, 수분, 양분을 주장하시고 먹이셔서 말과 양이 살찌고 만물에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왕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진정한 왕입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17:14)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인간 왕을 세워주면 전쟁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심을, 그가 이기실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새 이단들은 자신이 이긴 자라고 하면서 스스로 나서는데, 보좌의 어린 양, 일찍이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왕이십니다. 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이기실 것이오, 그와 함께 있는 자 그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자들도 그와 함께 이기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이기는지를 사사시대 때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의 그늘 안에 거할 때 이기시는 그로 인해 우리도 이기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이김이 이것입니다. 그의 은혜의 그늘에서, 어린 양 그리스도의 보좌에 인생의 면류관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거룩한 나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4. 권세(엑소시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

본문은 위에 있는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세우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권세는 헬라어로 엑소시아입니다. 이것은 웃시야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웃시야는 스스로 계시는 존재,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을 말합니다. 이 단어를 분석해 보면 스스로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권세고 그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위의 물은 아랫물보다 맑습니다. 그것도 권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세는 근원에서 더 가까운 것입니다. 더 근원에서 가까우니 권위가 있습니다. 그것이 권세입니다. 권세라고 해서 더 짓밟고 주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미국과 영국이 그렇게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 가지 배울 것이라고 느낀 것은 잘못하면 즉시 물러나는 것입니다. 끝까지 잘못해도 잘했다고 당을 지어 버팁니다. 깨끗하게 인정하는 그런 부분이 없는 것입니다. 권세라는 것이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성도의 권세는 근본적인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다 저급하고 다 헛되고 누추합니다. 우리가 의복을 깨끗하게 입어서 먹는 것이 비싸서가 아닙니다. 근본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가 우리의 순결함, 권세를 정합니다. 악한 것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는 하나님께 얼마나 더 가까이 있느냐, 그것이 권세입니다. 직장에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붙어 계십시오. 그러면 끝내 높임을 받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은 권세는 몇 년 가지 못합니다.

5. 세속 국가가 최선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로 복종함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은 그 아래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스르지 말라는 말은 그것을 뛰어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권세는 본질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 타쏘가 권세입니다. 그런데 그 정하신 것에 복종하는 것을 히포타스라고 합니다. 정하신 것 아래 있는 것입니다. 헬라어 원어로 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질서 아래 있는 것이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 안티타쏘가 불복종입니다. 

그렇다면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이 정한 질서, 권세, 그것에 복종하라는 것은 그 아래에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질서대로 그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고 영원 불변하시고 만홀히 여김을 당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것을 주장하십니다. 아담의 죄는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파괴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부인한 것입니다. 믿고 의뢰하고 경외하는 자리에 있어야 할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불복했으니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평강, 샬롬이 깨지고 죽음, 수고, 시기, 질투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은 인간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넘보거나 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예배를 불경하게 드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를 높이십시오. 우리의 옷 매무새, 경건한 마음의 자세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열린 예배니 어쩌니 해서 하나님을 무슨 공 치듯 다니면서 하는 것은 예배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임을 받으십니다.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않습니다. 내 필요에 따라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여 영광을 받으시고 나를 주장하소서라는 고백과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첫째 질서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두 번째 질서는, 인생 안에 주신 질서입니다. 그것에 두 가지 질서가 있는데 첫 번째는 부모와 자식의 질서입니다. 제 5계명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약속 있는 첫째 계명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부모는 믿어서 부모가 아니라 부모니까 부모입니다. 부모에게 공경하는 것이 없이 어찌 권세에 복종함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에베소서 6장 5절은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칼빈은 부모 공경에 대한 것을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웃, 상전에 대한 것까지 다 포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 3절, '다스리는 자’를 보아야 합니다. 다스리는 자는 정치 권력자까지 포괄합니다. 그에게 배치되지 말라고 합니다. 가이사는 가이사의 것,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국가가 최선은 아닙니다. 대통령을 보면서 최선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다 못해 반장이라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최선이 아니니 불복한다고 하면 국가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바라봐야 권세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전부 내가 옳다고 하면 무정부주의가 됩니다. 플라톤도 칼빈도 독재보다 무서운 것이 무정부주의라고 했습니다. '위에 있는 다스리는 자’들을 본문 4절은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합니다. 사역자는 디아코노스인데, 집사라는 말과 같은 개념, 곧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이나 이 말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간혹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나옵니다. 느부갓네살은 인류사에서 폭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방 왕은 전부 인류 역사상 최고 권세를 가진 자들 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왕국에 이스라엘 백성을 붙여 놓은 것입니다. 이집트도, 바빌론도 페르시아도 헤롯대왕도 그렇습니다. 헤롯대왕의 폭정의 극치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장 강하고 악한 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침략해 왔을 때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맞서 싸우지 말고 잡혀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통해 느부갓네살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애굽의 바로 왕 때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서 70명이 내려가서 400년 만에 200만명이 되도록 하셨듯이,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합니다. 아하수에로 왕 때 에스더가 있었고 아닥사스다 왕 때 느혜미야가 있었고 고레스 왕 때 에스라가 있었습니다. 가장 폭군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붙이심으로 그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잘 알 것은 무조건 거역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입니다. 

6. 일반은총 영역으로서의 정치

그렇다면, 시민의 저항은 하면 안됩니까? 그러면 데모는 하면 안됩니까?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바라봐야 합니다. 

첫째는, 국가는 최선은 아닙니다. 왕도 최선이 아닙니다. 차선으로 둔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목적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찾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왕에 정치적으로 쫓아다니다가 실망해서 반대하는 것은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대전제 하에 정치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차선으로 세운 권위에 일차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매번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이방의 왕이라도 변화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다리오 이후로 가장 강했던 왕,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크세르세스 왕입니다. 그 왕이 에스라를 보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백성 중 유다 사람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에 1:3) 이것은 이미 예레미야 예언에 나옵니다. 포로로 잡혀간지 70년 만에 귀환해서 성전을 건축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두 번째 원칙은 세상의 권위를 무조건 불순종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도 말입니다. 불교 신자인 대통령이 집권을 해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정치인만 인정하는 것은 이미 정치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왕이면 기도하는 가운데 그가 기독교적 가치로 정치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이니 특정하게 정치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정치 개입 입니다. 종교, 인종, 지역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세운 권세는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안 믿는다고 거역하고 믿는다고 더 복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믿는 대통령이 두 명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시원하게 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잘 알아야 할 것은 은근히 기독교인에게 믿는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너머에 계십니다. 인간의 왕이 최선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가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7. 양심에 따라 존경할 것을 존경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겼을 때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소위 시민의 저항, 시민불복종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6절과 7절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정자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헬라어로 레이트루고스라고 하는데 라오스 에르곤이라고 하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7절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바칠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칠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5절 마지막 부분은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치욕스러운 신사참배 역사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일본 치하에 있었으므로 일제 역시 권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 양심에 따라 존경할 것을 존경해야 합니다. 여기에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시민의 저항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인 혁명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독일 나치 정권에서 다른 자들처럼 도망치지 않고 다시 독일로 들어갑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미국에 있으면서 서방 국가를 움직여서 독일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디트리히 본회퍼는 독일로 죽을 것이 뻔한 것을 알면서 들어갑니다. 그에게 이유를 물으니, ‘술에 취한 사람이 핸들을 잡고 있는데 어찌 보고 있겠냐, 핸들을 내가 잡아야지’라고 말하고 독일로 들어가서 끝내 옥중 생활로 사망합니다. —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와 사귀는 자는 재물을 잃느니라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잠 29:2-4; 14) 

오늘 말씀이 구체적인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 가지 원칙을 정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만이 완전하시고 그의 왕국만이 온전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타락했으니 그들 가운데 서로 죽여 멸망하지 않도록 국가를 두셨습니다. 일반은총인 것입니다. 구원과 상관없는, 특별은총이 아닌 일반은총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차선으로 둔 국가의 지도자는 그 선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하나님처럼 여기고 그것을 이유로 거부하거나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당대의 유명한 왕 느부갓네살 왕을 비천한 자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국가에서 이룬다는 꿈도 꾸지 마십시오. 신학적이지 않습니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국가에서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정치는 그런 측면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일 뿐 신학이나 교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되 영광을 거스를 때 양심에 따라 거스를 수 있습니다. 데모할 수 있습니다. 심하게 그릇된 것을 그저 보고 맹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본문은 각론적으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 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답을 알려 주십니다. 추석입니다. 집안에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도 있습니다. 연장자를 존경하고 가르치는 자는 배나 존경하라고 성경이 이야기 했습니다. 기독교는 질서의 기독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