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2]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80)] 하나님의 나라 (롬14:13-1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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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80)] 하나님의 나라 (롬14:13-1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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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롬 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롬 14: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롬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녹취록>
1. 만물의 창조와 불순종으로 인한 죄의 도입
이제 시골에 가을걷이를 하면, 또 겨울이 오면 잡초를 태우는 불도 놓고 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시골 집이라고 가보면 재도 있고 어수선하고 그렇습니다.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면 집의 형태도 그렇고 모든 것이 반듯하고 깨끗해보입니다. 반면 시골은 둥글고 흐트러진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파트는 아무리 파봐도 생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골은 논, 밭에 가면 발에 흙도 묻고 지푸라기도 많지만 벌레가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다 선하다고 본문 14절은 말합니다. 스스로 속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스스로'라는 말은 자연으로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보기 좋다고 하셨습니다. 자연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잘 돌아보면 선하고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음 받은 것이 다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無)로부터 세상을 지으시고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조성하셨습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셨으니 모든 것이 모남이나 그릇됨이 없고 완전했습니다.
여기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낸 것,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것입니다. 몸에 온갖 죄덩어리가 우리 안에 들어왔고 그래서 수고와 고통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있지 않습니다. 종기는 몸의 일부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 말씀은 태초로부터 말씀이 계시고 그 말씀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생명과 빛이 말씀에 불순종하니 빛과 생명이 없어지고 사망과 어두움의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말씀을 어기면 죽음이고 어둠입니다. 밤이 어둡다고 해서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불순종하면 그것이 죽음이요 어둠인 것입니다. 죄는 유혹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불을 놓은 사람이 불을 끌 수 없습니다. 산불을 놓은 사람이 그 불을 끌 수 없습니다. 죄도 그렇습니다. 이전에 태안에 기름이 유출되었습니다. 저도 그 때 봉사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기름을 흘린 사람은 그것을 닦아 낼 수 없습니다. 죄도 그렇습니다. 내가 만들어 냈지만 다스릴 수 없습니다. 선은 다스릴 수 있지만 죄는 그렇지 않습니다. 유혹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책임지지 않을 것을 뿌리는 것입니다. 한 번 발을 들이면 빼낼 수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질러놓은 불과 같이 어떻게 거두어 들일 수 없습니다.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도 스스로 자기 안에 있는 귀신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 진리를 알게 되어 자기 속에 있는 군대 마귀를 돼지 떼에 옮겨달라고 합니다. 죄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복음 말씀(막 5:15)은 '귀신을 지폈다'고 표현합니다. 죄는 내 안에 들어와서 완전히 나를 살라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작은 불씨로 들어오지만 이후에는 그 불을 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의 종이요 죽기를 두려워하여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한다고 했습니다. (롬 6:16; 히 2:15) 우리는 스스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는 많은 경우 착한 모습으로 옵니다. 착한 친구, 향기로운 꽃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 친구를 사귀고 돌이켜 가까이 해보고 싶다고 하지만, 독을 품고 있습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간혹 혹은 많은 경우 선이 악과 함께 할 때 우리 인생은 악에 기울어 갑니다. 세상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2. 악을 이기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악을 이기는 선, 어둠을 이기는 빛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지하지 않으면 판판이 선은 악과 죄에게 집니다. 죄에게 의가 굴복합니다. 의가 불의를 이기고 선이 악을 이긴다고 세상에서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영이 악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이 파고드는 죄성이 세상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섣불리 우리가 악을 이기고 죄에 대적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죄의 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망에 매여 평생 종노릇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은 것은 다 온전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지어서 이제 죄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사탄이 마귀가 우리 안에 죄를 지펴서 우리가 불법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망과 죄의 종이 되어 종노릇하게 되니 모든 것이 그 인간의 눈에 속됩니다. 본문 14절은 스스로 속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죄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속됩니다. 속되게 원하고 즐기고 판단합니다. 좋은 것을 나쁜 것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도 아주 비속하며 비행기를 타고 가서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먼 곳 까지 가서 도박을 하고 차를 몰고 몇시간을 걸려 카지노에 갑니다. 나무는 얼마나 좋습니까? 그늘, 향기를 주고 목재가 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류는 활을 만들어 사람을 죽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니므롯, 가인의 후손입니다. 인간이 타락하니 선한 것이 악한 것이 됩니다. 철은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으로 그릇과 농기구를 만듭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기로 만듭니다. 온갖 흉기를 만듭니다. 그 사람이 바로 두발가인입니다. 가인의 후손입니다. 사람이 타락하고 속되게 되니 무엇이든 그것이 선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악하니 어쨌든 악하게 쓰려고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몸에 좋은 약과 극약은 바로 옆에 있습니다. 비상이라는 물질은 온도를 낮추면 좋은 약이지만 높이면 사약이 됩니다. 어릴 때 보건소에 가보면 극약이라고 쓰인 것이 있습니다. 왜 그것이 병원에 있나요? 적당하게 용도에 맞게 쓰면 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용하면 독약이 됩니다. 어제 뉴스에 독일의 간호사가 주사제로 수백명을 죽인 것을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물이 아닙니다. 스스로 그릇된 것은 없습니다. 기어다니는 거미가 지렁이가 속된 것이 아닙니다. 속된 것은 타락한 우리입니다. 우리 손에 들리면 속되게 됩니다. 우리 손에 잠기면 속되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면 속되게 바뀝니다. 다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식은 선하고 모든 것이 온전한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사용될 때 술에 취하는 것과 음식에 지배당하는 것이 있습니다. 죄가 들어오니 사물에 지배당합니다. 그러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음식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만물을 다스리고 온전하게 바라보려면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사람이 변하면 모든 것이 온전하게 보입니다. 저는 신학교 가서 가장 감사한 것이 만물을 보는 눈이 바뀐 것입니다. 따뜻한게 좋고 밝은 것이 좋습니다. 내가 바뀌면 다 바뀝니다. 내가 즐거우면 내가 감사하고 선하면 다 바뀝니다.
3. 날과 음식이 아닌 사람으로 중심을 삼아야
사물이 아닌 사람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집이, 동네가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경우 내가 불평하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음식과 날을 지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구하고 돼지 떼를 몰살시켰습니다. 돼지 떼가 안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쌉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돼지 떼를 구하려고 하지 않고 사람을 구해 낸 것입니다. 날과 음식이 아닌,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중심에 놓지 않고 음식을 이야기하고 날을 이야기하면 합당치 않습니다. 본문 15절은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신 형제를 음식으로 망하지 말게 하라고 합니다. 옷 때문에 교회에 못오게 해서 됩니까? 옷에서 냄새가 나니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하면 안됩니다. 옷이나 음식이나 그것이 속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속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생선 냄새 풍기고 남루한 옷을 입으면 어떻습니까? 열심히 살다가 그런 냄새 배인 옷을 입고 교회에 오는 것을 왜 탓합니까? 음식과 옷을 주제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산, 명예를 주제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딪힐 것을 두지 말라고 본문 13절은 이야기합니다. 돼지 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중요한데 음식과 옷을 주제로 삼고 부딪히는 것들을 교회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생명, 영생, 하나님의 자녀의 빛의 공동체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해서 죽으신 형제를, 자기 자신을 주고 생명을 사신 그 존재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생명을 살렸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이 더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어부는 속되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부를 제자 삼으셨습니다. 말이 잘 달리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뒤뚱 뒤뚱 걸어가는 나귀를 사용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과 나귀가 아니라 주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누가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누군가가 중요합니다. 저도 나이가 들수록 옷을 고급스럽게 입는 것보다 사람이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인격이 백만원짜리가되면 천원짜리 옷을 입어도 향기가 있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타시면 그 나귀도 사용됩니다. 주님이 지면 저주의 십자가도 생명의 십자가가 됩니다. 누가 지는지가 중요합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달리시니 생명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물건이나 옷이 아닙니다. 십자가지기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교회 올 때는 다 세상 것 내려놓고 와야 합니다. 생명으로 오는 것입니다. 헬라인도 귀부인도 유대인도 오는 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지위 고하가 없습니다. 빌립보서 마지막을 보면 가이사의 집에서 문안하는 것이 나옵니다. 가이사는 바로 황제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황제의 가족을 전도한 것입니다. 벌써 교회가 강남이니 강북이니 하면서 지역과 계층을 따지면 안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가꾸어야 합니다. 돈이 생기면 옷을 사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을 가꾸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울 곳 없는지 찾는 것이 내 자신을 더 가꾸는 일입니다. 내가 품위가 있고 향기가 있습니다. 남루한 것 좀 걸치면 어떻습니까? 보이는 것만 다듬고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내 자신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생명이 중요한 것입니다.
4. 우리 자신을 구원하시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유가 아닌) 자신의 존재를 주심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류를 지으시고 말씀으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거역했을 때 인간은 처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만물을 지키고 다스리는 영장권을 상실했습니다. 여름 내내 밭을 매도 엉컹퀴가 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가꾸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죽으심은 바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소유보다 우리 자신을 구하러 오셨습니다. (엡 5:2; 갈 1:4) 주님은 소유가 아닌 존재를 우리에게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신앙은 존재적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가 만나는 것입니다. 소유와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방 신들도 합니다. 성부 성자는 동일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주시는 방법이 아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존재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소유나 명예 등, 자꾸 부딪히는 것으로 세우면 안됩니다. 신앙의 연조도 아닙니다. 거칠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다 존재 안에 들어가서 용광로에 녹듯 녹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사탄의 가시 같이 튀어나와 당을 짓게 만들면 안됩니다. —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3)
우리가 음식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식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고 몸은 주를 위하여 있습니다. 이 질서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음식에 매이는 것이 우상에 매이는 것이요 옷에 매이는 것이 우상에 매이는 것입니다. 외국에 가보니 배울만한 것이 있습니다. 외국 학생들 보니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더란 말입니다. 엉덩이에 구멍난 옷도 입고 다닙니다. 정말 낡아서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것이 생활이니 말입니다. 열심히 사는 모양입니다. 후진국이 뭡니까? 자기 자신을 안가꾸고 아직까지 집자랑 차자랑 하는 것입니다. 선진국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자기의 인격, 인품을 가꾸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왜요?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져갈 것이니 말입니다. —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고전 8:8) 이것이 고급스러운 수준입니다. 우리가 아주 가난할 때는 먹지 않으면 죽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그 미개한 수준에 머물면 안됩니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생명이요 그렇지 않은 것이 사망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다시금 교회가 음식으로, 의복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전 8:11)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느 사람은 고기,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람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에 음식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니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은 먹을 수 없습니다. 왜요, 그 사람은 음식과 하나님을 아직 혼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은 여전히 형제를 음식과 옷으로 따지는 사람은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십자가지기교회도 다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낫게 여기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반듯한 아파트보다 시골스러운, 거뭇거뭇하고 지저분해보이지만 땅을 파보면 생명이 있는 그런 모습이 우리 교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더러운 곳이 어딥니까? 모처럼 시골 부모님 집에 갈 때, 어수선한 그것이 아닙니다. 진짜 더러운 곳은 아파트 안에 있지 않습니까? 도시 안에 있지 않습니까? 두발 가인과 니므롯, 가인의 후예들이 도시를 만듭니다. 도시가 바로 악의 소굴이 아닙니까? 겉으로는 반듯하고 깨끗해 보이지만 회칠한 무덤이 도시가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고전 8:1-3)
5.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아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을수록 사랑을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기도에도 나옵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을 살아있는 지식으로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총명할수록 더욱 사랑하고 알수록 더욱 용납합니다. 왜요? 알면 내가 보이고 나의 죄와 연약함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알수록 남이 아닌 나를 보며 회개합니다. 나도 연약하듯 저 사람도 연약함을 알아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그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지식을 익히면 도시의 지식, 가인의 후손의 지식이 됩니다. 열심히 책 읽어서 흉기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이 늘어날수록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알면 알수록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그러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죄를 다 아시고 더러운 것을 다 아시지만, 그의 사랑으로 용서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옷, 절기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교회의 주제는 공간도 건물도 프로그램도 아닌 사람입니다. 생명입니다. 존재입니다. 바로 성령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상속자 삼으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즐거움, 소망이 있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성도입니다. 나의 나된 것으로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아무 일 없어도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일정이 있어서 한 계절이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나의 나된 것으로 말미암아 그저 기쁜 것입니다.
6.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의라는 말은 하나님이 옳다 하시는 것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옳다 하시는 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세상이 옳다 하는 것을 붙들면 세상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가 되시고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평강, 샬롬은 자리매김을 잘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질서가 보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하나님께 대듭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는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조물주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심령, 행사를 헤아리시고 권고하시고 이끄십니다. 평강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우리는 우리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는 것이 죄입니다. 마귀 사탄의 유혹입니다. 세번째는 희락입니다. 희락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와서 아버지가 잔치를 벌이듯 말입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것은 우리가 행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보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평강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일 일은 우리가 모릅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장정이라도 거꾸러집니다. 골리앗이라도 다윗을 만나 죽고 하만도 자기 장대에 자기가 걸립니다. 어떻게 잠시 후를 알 수 있나요?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내 자리를 잘 잡아두면 아무 일 없습니다. 평강입니다. 예배드리고 하나님 자리, 내 자리에 있으면 즐겁습니다. 평강입니다. 그리고 희락입니다. 저는 엄마도 아빠도 없지만 하나님이 품에 저를 안으십니다. 50대가 되고 나이가 들어도 찬 바람이 불면 어머니 품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희락입니다. 하나님의 품 속에 아이가 어미 품에 안기듯 안기는 것입니다.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주가 아닙니다. 나귀를 타든 무엇을 타든 누가 쓰시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 자신이 중요합니다. 본문 18절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라고 합니다. 바로 우리의 주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은인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가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도 칭찬합니다. 이것을 붙들고 사업하십시오. 그리스도를 붙드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도 기쁘게 합니다. 주님을 잘 섬기는 자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끝내 세상에서도 칭찬 받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 세상에서도 머리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말씀대로 안하니 세상에서도 머리가 안되는 것입니다. 주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도 칭찬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 기독교의 대헌장, 대강령입니다. 우리 자신으로 즐거워하고 성령 안에서 주께서 사신 자를 음식과 옷으로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본질에 충실한 것이 교회인데 본질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기쁘게 하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세상을 기쁘게하고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성도님께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20171112]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80)] 하나님의 나라 (롬14:13-1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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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