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30]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65)] 접붙이실 능력 (롬11:22-2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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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65)] 접붙이실 능력 (롬11:22-2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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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22)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롬 11:23)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롬 11:24)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롬 11: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롬 11:26)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롬 11:27)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녹취록>



1. 접붙임: 고유한 가운데 새롭게 하심

성경을 보면 '하나가 된다' 그리고 ‘연합되어'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본문 역시 접붙임이라는 개념으로 연합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하나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성경은 양의 목자가 되시고 울타리가 되시는 우리 주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역시 울타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이 개념의 전제는 여럿입니다. 여럿이 있어야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를 말살시키면서 하나가 되는 것은 획일화입니다. 인위적인 융합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됨은 그리스도와 함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성을 말살시키고 공동체에 흡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유하게 그것을 살려 그 가운데 새롭게 되게 해 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접붙임입니다. 

접붙임은 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지 이전의 것을 말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99마리가 있어도 끝까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그것마저도 더욱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맥락에서 다섯 드라크마를 잃어버리고 하나를 찾았을 때 주인이 얼마나 기뻐하겠느냐는 비유를 또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접붙임의 절정은 성찬입니다. 주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나에게 나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서 영생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접붙임의 절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로 더불어 먹고 마십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 예수님께서 마지막 기도에서 아버지와 우리도 하나가 되게 하도록 구하신 것입니다. 세상 어느 종교에도 이런 하나됨은 없습니다. 존재를 말살시키고 단체에 가입시키거나 하나됨이 아닌 불교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스스로 신이 되는 것을 목적합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됨이 아닙니다. 

2. 인자하심과 준엄하심

참된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되 각각의 인격으로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접붙임의 계획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잘려나간 가지입니다. 농부가 이것을 주워다가 나무에 접을 붙이는데 농부는 아버지요 나무는 예수님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5장의 비유입니다.  그래서 접붙임을 하려면 접붙이시는 분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농부가 인자하심을 가지고 접붙임을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특별히 교회나 하나님의 일에서는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거저 베푸시는 인자하심이 있지만, 진리, 진실, 하나님의 공의의 엄위로움이 있습니다. 접붙이는 것은 인자하심으로 접붙이지만 그 인자하심에는 준엄하심이 전제됨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나 접붙이지 않습니다. 대속의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그 준엄하심 가운데 인자하심을 보이십니다. 

그 준엄하심이 무엇인가요? 포도나무가 먼저 상처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잘린 가지, 죽은 가지입니다만, 본 나무가 그 일부의 잘림을 먼저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잘려 주시고 그 곳에 접붙임을 받은 것입니다. 잘려나간 가지가 그냥 접붙임을 받는 것 같아도 원 나무의 가지가 잘려나가는 일이 먼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입니다. 사랑과 공의, 인자와 진리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음으로 말미암아 접붙임을 받는 것입니다. 접붙임은 아무나 받지 않습니다. 농부가 어느 누구에게 나무를 가져와서 접붙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여러 접붙임을 봤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과일이 모두 접붙여서 먹을만한 것으로 열매 맺은 것입니다. 야생 상태 그대로는 먹지 못합니다. 포도나무 주인이 이처럼 허용을 해야 접을 붙이고 새 품종이 나오면 그것으로 묘목을 삼아 심는 것입니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포도나무의 농부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 집에 나무는 성자이시고, 그 성자를 잘라서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쫓겨 나간 우리를 접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요 15:7) 이사야서에도 포도원지기는 아버지시며 그가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도 상해하지 않게 지키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아들의 찢겨진 살, 흘리신 피에 우리가 접붙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 살은 우리의 양식이요 피는 우리의 음료입니다. 우리는 다 죽었고 잘려나간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유일한 길은 접붙임뿐입니다. 죽은 가지가 살아날 유일한 길이 접붙임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3. 접붙임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음

이 접붙이는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능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 닿아 관이 연결되기만 하면 물과 양분이 흐릅니다. 우리에게 접붙일 능력이, 소망이 없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접붙일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다 접붙임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도 갈대아 우르의 이방 족속 가운데 불러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접붙여 주셨습니다. 그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믿기만 하면 자녀 삼아 주신 것입니다. 룻이 이방 여인이라도 접붙임을 받아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도 같은 일입니다. 심지어 음란했던 다말도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버림받은 돌 감람나무와 같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5장의 말씀처럼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서 참 포도나무, 극상품 포도나무가 된 것입니다. 지금은 그 열매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므로 그 열매가 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 접붙임을 받아 맺는 열매는 너무나 풍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4.접붙임을 받는 대상이 중요함

흐르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인생의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우리가 어디에 가 닿아 있는지 아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포도나무에 가지인 우리가 접붙어 있어 하나님과 아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와 하나가 되게 되는, 그 접붙임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을 얻으려면 재벌 가문에 접붙임을 해야 합니다. 명예를 얻으려면 정치 명가에 접붙임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덧없습니다. 우리의 접붙임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상에 발을 딛고 삽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우리가 접붙임을 받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셔서 아들에 접붙여 주셨습니다. 이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접붙임의 비밀이 본문 25절에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신비, 비밀인 것입니다. 

5. 접붙임으로 자녀됨: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것을 모두 누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접만 하면 그가 이루신 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나님의 이 구원 역사의 비밀이므로 주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으므로 그를 믿고 영접하여 우리가 접붙임을 받기만 하면, 내가 누구든 죄인이든 병자든 상관없이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들어가고 싶은 집, 가문의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여 이를 가는 것도 서글픈 일입니다. 그러나 진짜 우리가 부러워할 것은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는 것입니다. 천국의 문이 열리는 그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이 지상의 삶은 70, 80이요 굴곡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의 영생입니다. 그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아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자녀 됨을 누리는 것입니다. 신분을 새로이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생의 자녀에 그치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시민권이 천국의 시민권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는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아 그와 함께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심(롬 8:32)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것 좋은 것을 다 누립니다. 절대적으로 선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접붙임을 받아 이것을 누립니다. 영적인 음료를 마시고 마음의 기쁨을 누립니다. 그때 그 때 슬프지만 갈하지 않는 생수가 있고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주 예수님과 함께 자녀가 되고 그의 모든 것을 누리는 기업이 되고 상속자가 됩니다. 접붙임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6. 영적 접붙임과 참 이스라엘, 예루살렘, 지성소

세 번째, 접붙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을 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소통합니다. 돌 포도나무였던 우리가 예수님과 교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호흡하고 더불어 먹고 마시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 그의 양분을 우리의 것으로 삼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교통입니다. 접붙임을 받으면 그리하여 이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그것을 들어 주십니다.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자리에 우리를 세우시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선물로 믿음을 주셔서 누구라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기만 하면 구하는 것을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접붙임을 받았기에 가능합니다. 영적 접붙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것으로 인해 육신의 이스라엘이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예수를 믿으면 그가 이스라엘입니다. 이것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지성소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교회가 예루살렘 성전이요 지성소입니다. 우리 육체를 성전으로 삼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된 주의 백성이 모여 교회를 이루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깨어 계십니다. 주무시지도 조시지도 않습니다. 아버지의 인자하심으로 접붙임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말씀처럼 그가 우리를 계속 공급, 보호, 인도해 주십니다. 이제는 두 몸이 아닌 한 몸으로 그렇게 하여 주십니다. 이 비밀이 큽니다. 신랑 신부가 하나되듯 교회와 그리스도가 하나되는 이 비밀이 큽니다. 이 비밀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성도 각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안에서 접붙임의 비밀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교회 가운데서 신랑과 신부가 하나되듯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어 주님이 특별히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5)  

이제 새로운 비밀이 역사합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역사합니다. 우리나라에 횡행하는 이단들은 대부분 문선명에서 발원하는데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피갈음입니다. 그래서 교주가 시켜주면 묻지 않고 결혼하는 그런 행태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거듭나는 것이지 니고데모와 같이 모태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피갈음이란 것이 바로 그처럼 육적인 생각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에 참여하는 비밀이 큰데, 그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진 비밀인데 이제 그것이 나타났으니 그리스도입니다. (골 1:26)

7. 접붙임 받음 성도의 기도의 능력

우리 교회에 기도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하되 그 결과의 어떠함이 우리에게 좌절과 절망을 가져오면 안됩니다. 어떤 일이든 접붙임을 받은 자녀이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오늘 새벽 말씀에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헌금을 가지고 로마에 가서 옥중의 사도 바울을 섬긴 자입니다. 그를 사도 바울은 형제라고 부르고 빌립보가 보낸 사자라고 칭했습니다. 그가 죽을 병에 걸려 죽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그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다시금 빌립보로 보내는 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어제 김원진 전도사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어제 했습니다. 갈수록 말이 궁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죽어도 살아도 우리는 주님의 자녀요 죽어도 다시 살고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해 헌신하다가 몸이 약해져서 죽을 병에 걸렸는데, 주님이 낫게 하신 에바브로디도처럼 말입니다. --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 남상수 목사님께도 같은 본문 25절 말씀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김원진 전도사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되 죽음조차도 하나님을 위하여 돌보지 않는 그 신앙인의 믿음을 지키라고 말입니다. 그저 제가 무슨 위로를 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접붙여 주시고 인자하심으로 그의 영혼을 지금까지 붙들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바로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그렇게 기도 했습니다. 피가 나오게만 하지 마시고 암 덩어리가 나오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이번에 송지동 교회라는 곳에 갔습니다. 120년 된 교회입니다. 지난 번 간 금산교회(기역자교회)에서 20분 거리입니다. 그 교회의 지금 목양실, 당회장실이 교회의 터인데 그곳에서 75세 된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우리 장모님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또 당시 전도사였던 저희 장인어른에 대해서는 새벽에 눈이 와서 쌓이면 성도들의 집까지 다 치워줬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새벽예배를 나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명이 새벽예배에 나왔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그 담임목사를 역임한 분 중 하나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마당에서 자리를 깔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나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큰 것입니다. 왜요? 접붙임을 받은 비밀이, 세상 사람에게는 흐르지 않는 특별한 관이 우리에게 흐르므로, 하나님이 양분과 수분을 주입해주시므로 그렇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의사가 안된다고 할 때 열두 해 혈루병 환자는 예수님의 겉옷을 만져서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간혹 나사로와 같이 빨리 오라고 마르다가 불렀지만 볼일 다 보시고 열두 해 혈루병 환자 고쳐주시고 천천히 가십니다. 왜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이시려고 그렇습니다. 나사로가 죽어 이제 사람들이 왜 오시냐고 하니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며 살리셨습니다. 

우리 김원진 전도사님은 접붙임을 받은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를 보호하시고 영적인 음성을 들려주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김원진 전도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3년, 4년 째 새벽에 교회 문을 열고 정리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충성된 종을 왜 오랫동안 들어 쓰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접붙임을 받았으므로 세상의 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서 말씀입니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에 채우리로다.”(사 27:6) 

생명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접붙여 주셔서 놀라운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 교회가 기도해야 합니다. 김원진 전도사님은 끝까지 약한 마음 먹지 말고 오늘 말씀의 에바브로디도처럼 죽기에 이르기까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자와 같은 자가 되고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할 때 병 나음의 역사도 일어나고 전도사님도 평안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죽음을 그저 피하듯 좌불안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모습 조차도 하나님이 영광 받기 위함이라는 믿음으로 이겨 낼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다 가지로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그 부요함이 성도님과 모든 가정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