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6]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66)] 후회하심이 없으심 (롬11:28-32)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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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6]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66)] 후회하심이 없으심 (롬11:28-32)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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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28)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롬 11:29)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30)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롬 11:31)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 11:32)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녹취록>



1. 인생의 제 1 목적

하나님은 지음을 받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계시고 스스로 계시고 전능하시고 무한하시고 자존하시기 때문에 뜻하시는 것이나 이루시는 것이나 생각하시는 것이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후회가 있지만, 하나님은 미리 마지막에서 시작으로 내다보시는 분이므로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바위 위에 집을 짓듯 하나님의 백성은 흔들리지 않는 주초 위에 집을 지어야 되는데 그 집이 바로 말씀이요, 언약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요, 창세 전에 정하신 것이므로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날마다 후회합니다. 깨닫지 못하고 안 할 뿐 후회할 일이 끊임없습니다. 겨울에 똑바로 걷는 것 같아도 눈길을 돌아보면 비뚤비뚤한 족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다양하지만 부르심은 하나이며, 창세 전에 지으신 대로 우리를 부르셔서 그 목적대로 이루게 하십니다.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낯은 밝고 밤은 어둡되 밤도 영 어둡지만은 않아서 달이 별이 있어 걸을 만큼은 밝게 하셨습니다. 절묘한 질서를 이 땅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지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무와 풀이 가장 즐거운 때는 언제인가요? 그것은 그 생긴 대로 잎새를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입니다. 또 때가 되면 지기도 하지만 홀씨를 남겨서 봄이 되면 새 싹을 냅니다. 우리 일생을 지은 목적이 무엇인가요? 여호와를 찬미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과 목숨과 생명을 다하여 찬미하게 하시려고 우리 인생을 지으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 나오듯 인생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세상 만물은 가장 즐거운 것이 열매를 맺는 것이요, 우리 인생도 가장 즐거운 것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자 즐거움이자 열매입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예배해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 이력을 쌓아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예배 드리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지금 마음과 정성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찬미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예배를 위한 부차적인 것입니다. 내 모든 삶이 예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예배가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들지 않은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서 어디 놀러 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저 같이 나이가 들어 보면 엄마 품이 가장 좋은 곳임을 알게 됩니다. 인생은 자꾸 다른 곳에서 찾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품에 안겨서, 제가 주님을 잘 믿으니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해야 하겠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 품 안에 거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직장도 명예도 재물도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돈을 잘 벌어서, 권세를 얻어서 주를 위해 뭔가를 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혹은 주님을 잘 믿어서 세상에서 뭔가 해 보겠다고 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전치된 것입니다. 

2. 후회하심이 없으심: 인생을 통해 영광 받으심(1) 

우리 김원진 전도사님이 2012년 11월 4일에 우리 교회에 처음 왔습니다. 처음 우리 교회에 오게 되기 달포 전쯤에 저를 만나서 '대구에서 태평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곧 서울에 올라올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유수한 교회 몇 곳에서 자신을 오라고 하는데, 도무지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들고 우리 교회에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했고, 11월 4일 우리 교회 교육부의 교육전도사로 당시 전도사님이 4학년 때 오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저도 학교에 어려움이 있어 사당동으로 발령이 난 상태였는데, 그 후 다시 신학대학원으로 복직할 때 마침 전도사님도 신학대학원에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되어 저의 조교도 하면서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또 다시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때가 전도사님이 3학년 때입니다. 평생교육원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사당동에 오게 되는데, 그 때 전도사님이 제게 와서 "저는 교수님과 졸업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라고 하면서 휴학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그 때 그 때의 과정과 동기들을 좇아 졸업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만류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의 의지가 강했고, 학부를 총신대에서 나왔으므로 선후배의 문제도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은 당시 저에게 한창 배우던 차에 실력이 일취월장 하고 있어서 일년 정도 휴학 후 다시 돌아와서 학업을 계속하면 되리라는 생각을 저 역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원진 전도사님은 휴학 중에도 제 수업을 모두 다 들었습니다. 아마 제 수업을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이 김원진 전도사님일 것입니다. 대학원 수업까지 청강하여 모두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제가 신학대학원에 돌아가게 되었는데 전도사님도 3학년에 복학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도사님이 이제 남은 학업을 잘 마쳐 졸업할 줄 알았고, 그 와중에 기독론 책도 같이 잘 썼습니다. 그런데 작년 7월, 1학기 마칠 때 전도사님의 몸에 고통이 심해서 겨우 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병원에 수차례 가 보았지만 명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방학 때 영양섭취를 잘하라는 말을 해주며 저는 예루살렘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후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병이 밝혀지고 어려움이 있어 전도사님이 끝내 복학을 못하게 되고, 올해 2학기 복학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였으나, 이번 주 목요일, 8월 3일, 하나님이 끝내 불러 가셨습니다. 

이 작은 교회에 김원진 전도사님이 5년간 섬긴 것을 저는 순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새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시대 순교가 총을 맞아서가 아닙니다. 돌을 목에 걸고 물에 빠뜨림 당하여 순교가 아닙니다. 김원진 전도사님은 이름도 빛도 없이 이 작은 교회에서 주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새벽마다 교회의 문을 열고 나와서 예배를 준비하며 섬겼습니다. 주일 새벽 6시 30분이 예배인데 항상 먼저 나와 제가 6시 10분쯤 도착하면 이미 정리를 끝내 예배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2. 후회하심이 없으심: 인생을 통해 영광 받으심(2)

하나님은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제가 특별한 본문을 정하려고 하지 않았으나 지난 주에도 그렇고 하나님이 적절한 말씀을 주십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지금 김원진 전도사님의 일생을 어떻게 헤아리실까요, 하나님께서는 결코 후회하시지 않습니다.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을 통해 무엇을 받으셨길래 후회하심이 없다고 하나요? 전도를 많이 한 것도 번듯한 목회를 제대로 해 볼 기호가 있던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생명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께 김원진 전도사님이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가 신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고 위임을 받아 어떻게 했다는, 족적을 남겨야만 잘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평생 주님 한번 만나고, 안나는 84년간 성전에서 기도하며 주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주님을 만나 한 번이라도 뵙고 기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 인생에 다른 것은 티끌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김원진 전도사님을 통해 큰 영광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행위도 십자가 지는 자로서도 그렇고 ‘십자가지기’ 교회입니다. 이 십자가지기를 생각한 것이 한참 전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이름일 수도 있지만,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작은 등대와 같이 존재하더라도 명멸하는 빛을 내서 큰 배라도 우리 교회를 보고 좌표를 삼을 수 있도록, 그래서 많은 신앙의 거목이 우리 교회를 통해 나타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참 귀한 일꾼을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젊은 주의 종을 우리 교회에 보내셔서 그의 5년을 꽉 채우면서 그 인생의 마지막 때, 가장 황금기를 우리 교회에 보내셔서 새벽마다 문을 열고 마지막에 문을 닫으며 집에 가게 하시고 주일학교도 없던 것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3. 변개치 않으시고 미쁘신 하나님, 그의 베푸시는 긍휼

우리 인생은 변개하는 것이 많아 후회하지만 주님께서는 신실하시고 변개치 않으시므로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특히 긍휼을 베푸시는 데에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어떤 사업을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베풀어 주시는 데 후회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실하다는 말도 됩니다. 신실하려면 첫째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부모는 자식 앞에서 신실할 수 없습니다. 제가 원욱이 마리아 아프다고 뭘 할 수 있나요? 사랑이야 변함이 없어도 그것만으로는 신실하지 못합니다. 자주 말하지만 자식이 앞에서 신음을 내도 무너져 가는 모습이 보여도 우리가 세월호에서 보지만 자식이 눈 앞에서 가라앉아도 우리 부모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습니다. 신실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미쁘십니다. —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우리 자녀를 신실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부모가 안고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쁘십니다.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품에 독생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요 1:13-14)은 우리를 품어 우리도 역시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영원히 안기게 하려 함입니다. 

김원진 전도사님은 이제 신실하신 하나님의 품에서 그 약속이 변함없고 후회 없고 전능하셔서 우리가 걱정할 것이 없는, 염려할 것이 없는 아버지의 품 속에 안겨 있습니다. 사람에게 맡겨, 이 세상의 어느 곳에서든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품에 이제 안겼으니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인간적인 생각으로 아쉬워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품에 그를 안고 계시니 말입니다. 제 스스로가 개혁신학자로 신비주의를 배격하지만, 요즘 눈만 감고 기도하면 환히 웃고 있는 김원진 전도사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를 보며 ‘김 전도사, 그래 이제 곧 보자’, 우리가 자주 안았는데 그때는 아파서 안고 했지만, 이제는 자주 안자고 스스로 얘기했습니다. 항암하고 퇴원한다고 휠체어에 앉았을 때 처음으로 제가 두 번 정도 김 전도사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머리는 다 빠졌었지만, 그래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저와 서울대 병원 출구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4. 하나님의 긍휼: 자녀 삼으시고 일꾼 삼아 영광 받으심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은 선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화형을 당한 폴리캅은 하나님이 어찌 자신을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는데 내가 하나님을 배반하겠느냐고 하며 기쁜 마음으로 순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십자가지기교회에 순교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교회는 그 신앙을 잘 계승하고 그저 시류를 좇아 이렇게 저렇게 편의주의, 세속주의, 윤리주의, 기복주의를 좇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말씀을 좇고 의연하게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죽을 병에 걸렸어도 죽음조차도 하나님께 맡겼다는, 지난 주 새벽예배 때 설교한 에바브로디도가, 우리 김원진 전도사와 같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매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씀을 봤습니다. 다 외인이요 나그네요 이방인이지만, 구약의 이스라엘이 선택 받은 육체, 혈육이 아닌 이제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하면 원래 우리가 원수 되었지만, 이제 복음 아래 자녀가 되었고 오히려 이스라엘이 원수가 된 것입니다. 참 신비한 역사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단일신이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보면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싸우는 것이지 기독교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황금돔이 성전의 터인데 그곳은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로 마호메트의 시체를 안치해 둔 곳입니다. 통곡의 벽을 사이에 두고 이슬람교가 있는 것입니다. 통곡에 벽에 통곡하는 자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유대교인들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라고 하면 농담하고 비웃습니다. 그들은 선조가 예수님의 조상이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혀 그와 상관없는 동방의 작은 점과 같은 나라인데 복음이 떨어져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생의 삶 가운데 주를 위해 주의 이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가져갈 이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이름 천국에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의 전도사로 주의 일꾼으로 한 그 일을 이 땅에서 귀한 것으로 여겨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베드로서는 네로의 핍박이 몰려오는 소아시아를 향해 베드로가 쓴 것입니다. 순교가 임박한 시점에 오히려 기뻐하라고 합니다. 어찌 그러나요?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성도는 어려움이 있을 때 환란이 있을 때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입니다. 주 안에 기쁨이 있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5. 진리 가운데 예배 드림이 가장 큰 일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상실감이 클 것입니다. 참 귀한 우리 교회의 종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저도 많이 기도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좋은 선물, 은사를 주신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그가 우리 교회에 있으면서 목사 안수도 받고 하면 얼마나 좋았으랴마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꽉 찬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무엇을 해야 이 땅에서 사용됐다고 생각하시지 마십시오. 예배 드리는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내가 먹고 사는 것은 예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6일 동안 준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예배 드려서 6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김원진 전도사님을 겪어본 결과 그는 그런 의식이 투철했습니다. 교리를 정말 좋아하고 진리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어제도 가면서 대화를 나눴지만, 결국 우리가 말씀의 진리를 붙들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말씀 듣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기이한 빛이 우리에게 둘러쳐 있습니다.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베드로서는 긍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긍휼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불쌍히 여기심이 우리 가정에 산 소망입니다. 이 긍휼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베드로서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 하나님이 자녀 삼아서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흔들리지 마시고 기이한 그 빛의 역사로 주님이 우리 자녀를 잘 길러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민서도 아비의 기도를 따라 가족, 집안 모든 사람들의 면류관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보람 자매도 잘 붙들어서 훌륭한 주님의 딸로 키워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우리 보람 자매가 참 착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방배동에서 보람이하고 오빠하고 길 옆에 서 있습니다. 오빠는 절뚝거리고 보람이는 옆에 서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어제 밤새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의 제 1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축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