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4]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57)] 믿음의 말씀 (롬10:5-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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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4]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57)] 믿음의 말씀 (롬10:5-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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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0: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 10: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 10: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녹취록>



1.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요 바라는 것의 실상

우리가 살아갈 때 여러 인생의 역경을 겪습니다. 인생의 희노애락이라는 말을 세상 사람들도 합니다. 인생은 고해, 고통의 바다라는 말도 합니다. 맑은 날이 있고 좋은 계절과 아름다운 일, 박수치고 즐거워할 일도 많지만 인생이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60살, 70살, 80살 인생 중 희락 가운데 거하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상황에 처하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인생의 여정 가운데 성도들의 믿음은 보이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 헤아리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세계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쫓겨 집을 벗어나 멀리 밧단 아람으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납니다. 요새처럼 차도 마차도 아닌 혼자 걸어 물과 음식을 가지고 갑니다. 그가 벧엘을 지날 때, 당시 이름도 없던 그 지역을 지날 때, 그곳에는 풀도 없고 기를만한 나무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친 돌이 있어서 얼마나 피곤했던지 그 돌을 베고 잠을 잤습니다. 그 돌 베개를 배고 잠을 잘 때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고 여호와의 얼굴을 보게 된 바 그 곳이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된 것입니다. 의지할 것이 없어서 거친 돌을 의지했으나 그것이 신령한 산 돌, 영원한 생명의 반석이 된 것입니다.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가장 어려울 때 내가 찾는 푹신한 재료가 아니라 단단하고 거칠지만 것이지만 그것을 취하고 의지하고 배고 잘 때 버려진 돌이 신령한 돌이 되어 하늘에 이르는 사닥다리가 되어 천국을 경험하고 그것에서 하나님의 집을 짓는 제사의 터를 삼고 예배의 전을 삼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이와 같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영생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가사가 바로 말씀일 것이요 코드가 믿음일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가 성도들의 영생의 노래입니다. 

믿음은 그 대상이 기본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상 또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과거형이 아닙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요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히브리서 11장은 말합니다. 믿음의 대상은 바라는 것,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보게 되고 지금 이루어지거나 과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지라도 미래에 바라는 소망에 속한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이미 있는 것처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단순한 마음의 작용이 아닙니다. 믿음만으로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지 못합니다. 

2. 믿음 자체 혹은 믿음의 주체보다 믿음의 대상이 중요

그러나 잘 알 것은 우리가 누구를 믿느냐입니다. 홍해를 믿는다면 아무리 그것을 가지고 기도해도 갈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 주십니다. 바위를 보고 믿고 기도한다면  수백만년을 기도해도 갈라지지 않으나 하나님을 바라고 기도하면 갈라져 샘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은 이것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3) 믿음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믿는 대상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시므로 그 분을 믿을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하는 믿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믿으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자랑할 때 믿는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는 대상으로 하나님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 사물, 현상, 질서, 경험 등을 믿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큰 역사를 이루는데 그것만이 우리에게 의가 됩니다. 이것이 본문 6절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입니다. 나로부터 나가는 의로는 아무 일도 역사도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것으로 자랑하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를 위해 외식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도무지 타락한 인류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런 하나님이 사랑하고 지키시는 나를 믿는 것일 뿐입니다. 내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암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광고는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자기 암시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믿으므로 내가 나를 아끼고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할 수 있고 외롭지 않으며 방황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큰 역사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 자체로부터가 아닌 믿는 대상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 외에는 믿으면 안됩니다. 나 자신도 믿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나를 믿어야 합니다. 나를 절망하고 좌절하란 얘기가 아닙니다. 나를 믿되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붙드시고 항상 지키시고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지켜 주십니다. 

우리의 의는 바로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믿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믿느냐입니다. 그것에 따라 어떻게 믿느냐, 그것으로 무엇을 이루느냐가 결정됩니다. 사람을 믿으면 큰 능력이 없습니다. 망원경으로 별이 생기지 않습니다. 현미경으로 세포가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없는 것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 믿어서 홍해가 갈라졌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홍해를 갈랐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나아만이 믿어서 문둥병이 나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선지자의 음성을 들었으므로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믿을 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창조적 능력, 역사 입니다. 내 믿음에 가치가 있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보시고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 그리스도의 말을 믿음

그러므로 우리는 믿되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로 말씀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어긋남이 없이 믿는 것입니다.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언제든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 말씀의 백성인 것입니다. 구약 백성들의 한가지 특징은 말씀을 맡은 것입니다. 말씀을 맡은 것은 그대로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고 그대로 살면 상급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믿으라'고 하면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그 아들의 말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신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구약 백성들은 양과 많은 짐승을 번제함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서 말씀처럼 하나님은 번제보다 인애와 순종,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말씀이고 진리이신 그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엡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그리고 이같이 너희가 그리스도를 배우지 않았느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 4:20)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즐거움은 우리가 이제 예수를 믿으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다른 것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를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요 말씀을 들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기적을 행하여 달라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게 해 달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으니 다른 곳에서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 6절,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데리고 내려오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누가 무저갱에서 그리스도를 올리지 않겠냐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는데 그리스도를 또 이땅에 오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지고 보이는 것으로 신앙생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나 보는 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가 다 이루신 의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말씀을 들음

구약 백성도 쉐마, 곧 들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자꾸 하나님을 보여주고 만지게 해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공기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빛도 그렇습니다. 보지 못합니다. 빛은 반사될 때만 보이지 그 자체로 보이지 않습니다. 빛을 만드신 분을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나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바로 그의 말씀을 듣는데 있습니다. 

자꾸 보여달라고 하니 양보하셔서 그 때마다 언약을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노아와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계속 맺어 주시고 말씀으로는 잘 안 믿으니 특별히 자기 자신을 현현하셔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구약 역시 쉐마 이스라엘, 곧 말씀을 듣고, 마음과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뜻, 최고의 신앙입니다. 그래도 자꾸 보여달라고 하니 계속 양보하셔서 또 언약 체결하셔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날 때 모세가 예언한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설교했습니다. (행 3:22)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라고 이야기하고 이후 또한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요 14:21)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신 성령이 임하게 되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말씀이 우리 가운데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처처에 거짓 소식과 소문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 남산에서 바위가 깨진다고 해도 가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예배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옷과 얼굴이 해보다 더하게 광채나게 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음성을 내려 '이는 내 사랑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 의심하고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말씀이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이로 천하 만물에 구원받을 이름이 없습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5. 여호와의 말씀이 가까이 있음

본문 8절의 말씀은 신명기(신 30:11-14)에 나오는 것입니다. —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가까워 내 입과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우리에게 가까이 주셨습니다. 구약 모세오경 중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네 입과 마음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길 뿐입니다. 모두에 야곱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찮은 것 같은 그 돌이 신령한 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을 때 하찮게 보이지만, 그 말씀이 우리에게 천국의 사닥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벧엘은 황량한 곳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역사가 있으니 하나님의 집이 된 곳입니다. 말씀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듣고 있습니다. 귀로만 듣고 지나가듯 잊는다면 아무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내가 거칠어 보이더라도, 아무것도 의지할 곳이 없으면 말씀에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야곱이 푹신한 지푸라기, 잎사귀 하나가 없어 돌을 배고 잤습니다. 그것이 신령한 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배고 자야 합니다. 잘 때 사람 생각하지 마십시오. 큰 일 하려거든 사람 생각하고 자지 마십시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기 전 마지막으로 하나님,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은 지나가는 구름입니다.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율법도 믿음으로 받을 때는 역사합니다. 삶의 규범이 됩니다. 

6. 믿음이 응시한 보화를 기도로 캐내어야

그러나 믿음이 없이 말씀을 받으면 돌과 같습니다. 본문 8절 "믿음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롬 10:8) 말씀 그 자체는 꿰지 않은 구슬과 같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역사하고 기도로 그 보화를 캐내어야 합니다. 칼빈은 '성령의 주요한 선물이 믿음이라면 믿음의 주요한 훈련은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이 응시한 보화를 기도로 캐내어야 합니다. 농부가 밭을 갈다가 보물이 묻힌 것을 발견하고 전재산을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믿음으로 보화를 발견했을 때 무엇을 그것을 살 것입니까? 기도입니다. 우리 가정, 부부 간에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랑만 이야기하지만 믿음과 소망이 필요합니다. 사랑만 이야기하는데 과연 부부끼리 서로 믿는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서로 소망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노르웨이에 페르귄트라는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솔베이지라는 시골 소녀가 있었습니다. 둘이 사랑해서 정원에서 결혼하고자 했는데 너무 생활이 가난해서 페르귄트가 멀리 가서 돈을 벌어온 후 그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어 돌아오는 길에 도둑을 만났습니다. 이리저리 방황 유리 하다가 백발이 되어 천신만고 끝에 노르웨이 산간의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어머니는 이미 죽고 자신의 오두막에 들어가 문을 열어보니 머리가 새하얀 노인이 앉아 있는데 그가 바로 솔베이지입니다. 그리고 그 품에 안겨 노래를 부르며 죽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을 말합니다. 닭을 사랑한다고 아무리 끌어 안아봐야 달걀이 나오지 않습니다.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나무 역시 믿고 기다려야 가을에 열매가 맺힙니다. 믿음의 역사는 큽니다. 내가 누군가의 마지막 사랑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끝까지 믿어주는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는 사랑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믿는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소망한다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내 소망이 너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큽니다. 그것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을 받았습니다. 누가 우리 자녀에게 소망을 갖고 믿어야 합니까. 부모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못 믿는다면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고생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자녀를 누가 믿어줍니까.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저를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이 인내하셨을까 생각합니다. 시골에 양식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친구들을 모두 데려다가 밥을 지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저를 사랑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믿을게 없는 저를 정말 많이 믿어주셨음을 생각합니다. 항상 저를 믿어주시고 바라주셨습니다. 믿음의 힘이 큰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누구를 믿어야 하냐 할때 그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을 믿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통해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하나님이 우리 사랑하는 사람을 붙들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힘은 믿는데, 믿음과 소망의 힘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그것을 잘 압니다. 기다리고 바랄 때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홍해도 가르시고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을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