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3]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14)] 유대인의 나음 (롬3:1-2)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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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3]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14)] 유대인의 나음 (롬3:1-2)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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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3:1)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롬 3:2)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녹취록>



여러분의 기도로 10박 11일간 이스라엘, 요르단 등지를 잘 다녀 왔습니다. 그곳은 기후의 변화가 심하고 광야 같은 곳에는 족히 50도는 되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면적은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만큼도 안되지만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중해와 소금바다라고 부르는 사해가 있고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휴양지로 유명한 홍해가 나옵니다. 또한 지형 자체가 어딜 가든 비슷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다양합니다. 같이 간 학생들을 졸라서 많이 바쁜 일정이었지만 히브리대학교도 가 봤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돈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모아서 장차 무엇을 해야할까 생각을 하다가 3학년 때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트리니티, 칼빈 등 신학교를 둘러본 것입니다. 그 때 미국의 학교를 돌아보고 오니 여러가지 생각되는 바가 있었는데 이번에 같이 간 학생들 역시 히브리대학교를 방문해서 여러 유익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히브리대학교는 세계 50위 안에 드는데, 아인슈타인이 설립에 크게 관여했고 10명 이상의 졸업생이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세계의 유대인들이 많은 후원을 하는 학교입니다. 그 학교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나무가 많고 뒤에서 찍으면 광야가 보입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나라의 기후와 지형이 다양함을 재차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한편, 이번 여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과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이 어디든지 가면 귀합니다. 저는 호텔 등의 숙소에서 찬물이 안나오는 곳을 처음 봤습니다. 이스라엘은 호텔에 가도 찬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온수가 자연수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갈증입니다. 그래서 물이 귀합니다. 그리고 귀한 또 다른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핍박과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제가 어릴 때 학교에서 '시련과 극복'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의 어려운 역사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것에 대해 가르칠 정도로 고난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헤아려봐도 이스라엘이 겪은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를 통해 큰 전쟁을 많이 겪었습니다. 세계의 강대국들이 흥망성쇠할 때 이스라엘은 그 나라의 종이 되거나 그들과 전쟁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이집트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강국을 이룬 나라가 이집트입니다. 그 다음으로 철기문화가 강한 가나안이 있었는데 이들 나라와 전쟁을 하거나 종으로 잡혀갔습니다. 또한 내부적으로 남북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바벨론 등이 역사상 계속된 강대국에게 계속 고난을 당했습니다. 수차례 학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십자군 전쟁이 이스라엘을 구한 전쟁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군은 기독교이고 이스라엘은 유대교입니다.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기독교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을 이유로 유대인 수십만명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새벽에 회당에서 30대 랍비를 만나서 대화를 많이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와 이야기 하다가 저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어떠냐고, 말도 안되는 질문은 해봤더니 저를 보면서 비웃음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을 계속 지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를 아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모른다고 잡아 뗐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한 것은 주후 73년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포진하여 저항을 했는데, 적군 사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황금을 먹고 도망친다'는 말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침략군의 장군은 잔인하기로 매우 유명한 디도, 영어로 Titus 장군이 이끌고 있었는데, 이런 소문을 들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면 산 채로 다 배를 갈랐습니다. 금을 꺼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 죽였습니다. 임산부도 배가 튀어나오면 황금이 들었다고 배를 갈라 죽였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참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또 유럽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는, 유대인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독약을 풀어 100여만명이 죽임당한 역사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정말 살육과 고난으로 점철된 것입니다. 주후 73년 이스라엘이 함락되고 병사 중 960명이 맛사다라는 곳으로 도망칩니다. 맛사다는 이스라엘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사해 바로 옆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끝까지 항전을 하다가 다 자결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후 거의 2천년 만인 1948년에 독립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아직도 말씀을, 그들의 고유한 언어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나가면 3, 4대만 되도 한국어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국가, 민족이 그렇습니다. 화란 사람이든 독일 사람이든 미국에 가서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모두 모국어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를 잃고 세계 각지를 헤매인지 2,000년이 되어도 언어를 잊어버리지 않고 보존했습니다. 그 이유가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히브리어로 성경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야로 성경을 암송하면서 언어를 지켜 온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2천년이 지난 후 아랍 사람들이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에 시오니즘을 내세워 이스라엘로 돌아간 것입니다. 세계에 이런 역사가 없습니다. 완전히 자신의 땅을 뺏긴 민족이 2천년만에 본 지역으로 돌아가 다시 나라를 세운 역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기를 보면 다윗의 별이 있고 물결이 두개 있습니다. 색상은 하늘색입니다. 이 하늘색은 거룩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위의 물결은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 강, 유브라데스 강), 밑의 물결은 나일강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일강에서 이라크(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는 이스라엘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유대인의 나음,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2절은 그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은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뛰어난 것은 할례도, 혈통도 아닌 그들이 말씀을 맡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첫번째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심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 말씀을 주셔서 그의 백성이 주야로 묵상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것보다 더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것보다 더 달다고  시원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말씀을 그만큼 찾아 봤습니까? 이번에 제가 가서 본것은 그런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 하니, 말씀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면 경배할 수 없고 예배할 수 없고,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말씀 맡은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고 주야로 그것을 외우고 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시고 그 백성을 통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이마와 옷술과 문설주에 붙이고 새겨 주야로 묵상하고 새기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참 안타깝지만, 그래도 제가 이번에 그들을 보면서 조금 부러웠던 것은 식사 전 한시간 동안 모여서 회당에서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점심 때는 짤막하게 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녁에 또 말씀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하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 주십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으로 살게 했습니다. 천지는 없어지나 말씀을 영존하다고 했습니다. 백성도 죽고 성도 무너지나 말씀을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이스라엘에 가서 깨달은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입니다. 바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습니다. 모세의 때와 같이 친히 말씀해주시고 야곱에게와 같이 얼굴을 보여주시고 브니엘(פְּנוּאֵל) 하나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도 더 말씀을 꿀송이 같이 달게 여기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말씀을 읽지 않습니다. 지혜가 있으니 읽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읽을 때 소망과 지혜가 생기고 내 안에 생명의 기운이 도는 것입니다. 바로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맡았다고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유대인들은 또한 이 말씀 가운데 언약을 받았습니다. 말씀은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약속의 말씀으로서 명령하면 이루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가서 그것을 또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무모합니다. 불가능해보입니다. 어떻게 홍해를 가르고 광야를 40년동안 다닙니까? 하나님의 명령에는 그러나 친히 이루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 위인은 모두 이 약속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여리고로 올라가라고 하면 하나님이 여리고를 무너뜨릴 것은, 홍해와 요단의 물을 정지시키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광야 같은 삶도 우여곡절이 없지 않습니다. 아무 일 없이 일생을 살다가 삶을 마무리한 믿음의 일꾼은 성경에 한 명도 없습니다.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요셉은 구덩이에 두 번이나 들어갔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땅은 우리에게 그저 평안한 땅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 가장 크게 누릴 복은 바로 말씀을 맡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우리는 허탄한 것을 입에 올립니까.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가요 등에 관한 것을 우리가 얼마나 입에 많이 올립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 입에 이렇게 올린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합니까.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꿀송이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 말씀은 언약의 말씀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아직 믿지 않습니다. 이번에 가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스라엘이 (主.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불쌍한데, 왜 나는 그들이, 어떤 면에서 부러워지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을 이제는 진리의 영으로 내 안에 받았다면 훨씬 더 유대인보다 잘 살아야 될 것 아닌가요. 유대인이 우리를 더 부러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목사인 제가 그 유대인들을 일면 부러워하고 있는지 저는 그것이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 같이 여기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모르는데 왜 그들을 부러워합니까. 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믿지 않는 것이 아닌지, 제대로 믿는다면 다 이루신 그 생명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주셨는데, 우리 안에 그 분이 사시므로 우리는 훨씬 더 그들보다 말씀을 즐거워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배를 타기 전에 시끌벅적 여행 온 학생들 틈에 벤치에 앉아 여학생 하나가 성경을 막 읽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 이스라엘 학생들은 다 저렇게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성경을 암송한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뉴욕의 맨하탄 땅 90%이상이 유대인들 소유입니다. 금융, 증권, 음악, 예술 모두 유대인들이 잡고 있습니다. 저도 이번에 예루살렘 간 김에 교향악 한 번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이렇게, 무슨 특권과 재주가 있길래 뛰어납니까? 오늘 2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출 19:5). 저도 목사이지만 유대인들에 비하면 제가 얼마나 말씀을 멀리하는지 느끼고 왔습니다. 그저 말씀을 많이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대인 교육법은 하나라고 합니다. 깨달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읽다 보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무조건 읽으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읽다 보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스스로 증거하고 스스로 옳은 것입니다.  동일한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므로 성도들은 읽기만 하면 모두 친히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을 정리한 것이 교리이지, 무슨 교리를 알아 성경을 알지 않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읽다 보면 고백되고 '아멘'되고 한 것을 정리하고 기록한 것이 교리입니다. 교리는 성경을 쫓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됩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님들께 이 성경을 읽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연구를 하다 보면 특별히 어떤 부분만 읽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여행 중에 저도 여러번 성경을 꺼내 읽으니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혼자 다녀와서 죄송하지만, 설교 곳곳에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왔고 우리가 그를 영접했습니다. 영접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이야말로 진정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왔는데 그것은 진리이기도 하고 은혜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씀이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의 말씀은 지침입니다. 방향만 제시하고 직접 이끌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지침을 주시면서도 보호하십니다. 같이 가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다 이루신 말씀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왜요, 주님은 구약을 다이루셔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오순절 성령을 받자마자 설교한 것이 '구약 시편의 말씀이 이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신명기, 시편 등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나 그래도 말씀을 순종하여 주야로 묵상하니 잘 살고 지혜롭다면, 세례요한이 말한 바 '입에 쓰나 몸에 달다'고 두루마리로 받은 그 말씀, 다 이루신 그 말씀을 우리가 이제 성경으로 받아 읽으면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날까요. 그것이 제가 이번에 다녀온 것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유대인만큼만 성경을 읽는다면 그들보다 얼마나 더 큰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날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말씀을 맡겼는데 그 뿐 아니라 우리 안에 말씀을 진리의 영으로 심겨 주셨습니다. 그것이 예레미야이고 에스겔의 예언입니다. 이제 말씀이 우리 안에 심령에 새겨지고 들어왔는데 그것이 새 언약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즐거워 하십시오. 부담 갖지 마십시오. 어디 갈 때 마태복음 한 번 읽어보자하는 생각으로 하십시오. 성경의 각 권을 한 번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편히 해 보십시오. 그럼 즐거워질 것입니다. 말씀을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마십시오. --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여러분, 이 말씀을 꿀송이 같이 받아 누립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떡의 기갈은 육체를 죽이나 말씀의 기갈은 육체와 영혼을 모두 죽입니다. 말씀이 있으면 떡이 따라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만 주야장창 읽고 있는데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길, 경륜, 교육, 지식, 지혜가 있습니다. 

칼빈은 이부분을 주석하면서 '유대인의 나음이 말씀 맡았음에 있다면 이제 우리는 그 말씀의 보화를 새겨 마음에 갖고 있다'고 주석했습니다. 한 말씀이 생명을 살리고 길을 인도합니다. 그 말씀을 의지하는, 말씀을 많이 읽고 마음에 새기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