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0]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1)] 로마서의 주제 (롬1:1-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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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0] [주일낮예배:로마서강해(1)] 로마서의 주제 (롬1:1-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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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1)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2)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녹취록>



 오늘부터 로마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로마서에 어떤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어떤 주제가 다루어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일곱 절의 말씀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이 편지를 쓴 목적이 뭔지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를 썼다고 하고 성경의 다른 서신서에도 각 저자들의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저작으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들 서신서는 모두 사사로운 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들려 주시고 그것을 편지의 형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만큼 성경 전체의 기독교 기본 진리가 일목요연하게, 함축적으로 드러나는 책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내용을 확장한 것이 로마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으로 말하면 로마서의 진리를 함축해서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 교회에 대한 사도신경의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로마서는 구원에 이르는 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는 단순한 신약의 한 서신으로 한정하기보다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이르는 성경 전체의 진리가 일목요연하게 제시되어 있고 이를 통해 기독교의 기본 지식과 진리와 삶에 마땅한 도리를 가르쳐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칼빈은 평생 설교와 주석에 힘썼는데 모든 성경은 한 번 주석했지만 로마서는 세 번이나 주석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성경보다 먼저 주석한 책이 로마서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는 '이 로마서에 전체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한 문장이 펼쳐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로마서에는 복음의 핵심이 나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써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원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로마서에는 복음의 핵심과 이신칭의의 원리 뿐 아니라 기독교 윤리의 최고 핵심이 나옵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삶이 예배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기서 '몸'은 전부를 뜻합니다. 영혼과 육체, 우리의 일상, 생업, 신념, 의지, 뜻 모든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이 기독교 윤리의 대헌장입니다. 


  또한, ‘기독교 철학’의 핵심을 제시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 철학이 무엇인가요? 모든 것의 시작과 끝, 그리고 가치를 탐구하는 것일진대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하니, 대철학이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로마서에는 윤리, 철학,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로마서에 기록된 이신칭의의 원리를 달리 표현해보면,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된 의를 그저 우리 것 삼아 주시고 일한 것이 없이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의 복' 입니다. 그 의를 우리 것으로 삼아 주셔서 우리가 거듭나는 새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새 생활을 누리는 선포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합하여 gospel, 즉 복음이라고 합니다. 값 없이 생명을 얻고 값 없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생명, 생기, 생활이 모두 있는 ‘영생’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살아있고 생기가 있습니다. 비록 육신의 고난과 삶의 애통함이 있어도, 정신은 멀쩡해서 분별하고 직시하고 삶의 흔적을 드러내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서에 나오는 영생 개념은 아주 역동적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로마서로 인해 획기적인 일이 일어나는데 그 중 하나가 어거스틴의 회심입니다. 말할 바 없는 기독교의 거목인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서 로마서 13장 12-14절 말씀의 영향을 받아 회심했다고 말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알다시피 어거스틴은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마니교라는 잘못된 종교에 빠져 영혼만 올바르면 육신은 더러워도 상관 없다는 이원론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많은 철학자들이 지성적이지만, 육체적인 부분, 실제 삶은 문란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 있던 어거스틴이 로마서의 말씀, “빛의 갑옷을 입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는 말씀을 듣고 회심한 것입니다. 저도 그런 말씀을 평소에 자주 합니다. 집도 단정해야 하고 가급적이면 밝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라는 말에서 어거스틴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로마서입니다. 생명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는 의의 책이고 믿음, 복음, 생명의 책입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올리는 것은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입니다. 내년이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됩니다. 로마카톨릭 사제로서 수행해서 자신의 공로로 회개하고 구원에 이른다는 금욕, 수행 사상에 빠져있던 루터가 비텐베르그에서 로마서 강의를 하도록 지정되어 강의 준비의 일환으로 로마서 1장 17절을 읽다가 깨진 것입니다. 거기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이 처음 나오는 곳은 하박국 2장 4절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로 여겼다는 말씀에도 나옵니다. 바로 루터가 이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믿어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로마서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한편, 이 루터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경건주의에도 심취해서 우리와 약간은 차이가 있지만, 바로 요한 웨슬리입니다. 감리교와 순복음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그는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다가 회심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한 분만이 구원을 위해 오셨다는 것을 믿고, 나의 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가져가셨다는 고백을 하면서 뜨거운 복음전도자가 됩니다. 이미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요한 웨슬리는 우리의 신앙과 약간 차이를 보입니다. 그와 함께 당대 2대 말씀 전도자였던 조지 휫필드는 우리와 비슷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루터의 영향을 받아 예정론 등이 조금 약화되고 오히려 공로와 삶의 완전함을 조금 더 강요합니다.


  어쨌거나 로마서는 이렇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바로 성경이 그런 책이라고 한다면 로마서야말로 그 말씀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자체가 어떻다기보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진리가 그곳에 일목요연하게 잘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는 전체적인 윤곽을 잡으면서, 각 장에 무슨 내용이 나오는지를 그리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설립 후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등 내용상 신구약을 종합강론해 왔습니다. 이제 복음의 완성은 신약이고 그 가운데 구약을 바라본다는 관점에서 너무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지만 핵심을 파악하여 로마서를 나누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로마서는 성경과 신앙의 로드맵,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잘 읽으면 신앙 전체의 뼈대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가히 작은 성경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복음과 율법이 전부 기록되었고 나는 누구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즐거워해야 하는지 등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를 통해 깨지고 거룩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로마서에는 역사적인 구속사 뿐 아니라 우리 구원의 과정이 또한 잘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우리 구원의 순서, 한자어로 ‘구원서정(ordo salutis)’이라고도 합니다. 택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자를 거룩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룰 부분으로  8장 9절, 15절, 17절을 생각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를까요?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시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고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것, 행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성경이 요한복음 4장 13절에서 16절이라면 가장 일목요연하게 전개한 것은 로마서입니다.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최초의 성찬을 거행하면서 가르쳐 준 보혜사 성령의 의미를 로마서 8장이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로마서 8장 15절에서 “양자의 영”이라고도 불립니다. 양자의 영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합니다. 구약의 모세도 아브라함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만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겟세마네에서 피가 땀이 되도록 부른 그 이름을 우리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 양자의 영이 로마서 8장 17절의 “자녀이며 상속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양자의 영이며 상속자와 자녀가 되는 영입니다. 그러니 이어지는 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창세 전에 택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게 한 자를 영화롭게 하는 끝까지 끌고가는 성도의 견인이 나옵니다. 그리고 32절부터 39절은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선포합니다. 


  이렇듯 로마서는 우리를 향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로마서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렵게 갈 필요가 없습니다. 로마서는 나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로마서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의 기본서요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수직적 수평적 사랑이 로마서에 나타납니다. 십계명 1-4계명이 그렇고 나머지 계명이 그렇습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빛 외에는 아무 빛도 지지 말고, 남을 사랑하는 자는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8:13)." 값 없이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사랑의 빚을 꾸고 갚는 관계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만 부담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완성이요,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덕을 세우라고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2)." 오늘날 교회에서조차도 법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법만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덕입니다. 덕스럽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뜨겁게 합니다. 특히 본문 7절은 로마서가 은혜와 평강, 샬롬의 서신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어렵게만 접근하지 않고 편안히 읽다 보면, 끊임없이 우리에게 생명의 역사의 재촉을 하는 동시에 평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정말 가고 싶어했습니다. 쉬지 않고 로마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했고 로마에 가기 원하는 것을 9절부터 15절까지 반복하여 드러냈습니다. 로마에 대해서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로마에 가서 말씀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열어 주셨는데, 이는 죄인이 되어 재판을 받는 길, 사실상 죽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에 대한 애틋함이 있었습니다. 저희 장인어른이 시골에서 목회를 잘 하시다가 이곳 이태원 근처에 있는 대성교회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무속이 흥한 곳입니다. 무속에서 이 땅이 좋다고 하니 재벌들이 와서 땅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신각이 있고 음란한 것을 섬기던 곳이 많이 있습니다. 무당 족보에서 이름난 무당들도 이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저희 장인어른이 그런 곳에 와서 목회하신 것은 특별한 뜻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마에 대한 사도 바울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쓴 편지에서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롬 15:33)”라고 했고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롬16:20).“라고 했습니다. 로마서는 자체가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렵게 읽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 생활, 생기가 넘치는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사도 바울의 사랑을 받은 로마교회는 어떻게 생성되었을까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나고 그 때 흩어진 교인들에 의해 로마 교회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곳에 회당도 있었을 것이고 지하에 핍박을 피해 세운 지하교회 카타콤도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이 초창기에 기독교를 박해하지 않은 것은 초창기 기독교 교세가 미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판테온(만신전)으로 대변되는 다신교 사상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기독교의 하나님 역시 여러 신 중 하나로 여겨 허용한 것입니다. 이후 로마의 3대 황제인 카리큘라가 다른 신을 모두 죽이고 나만 믿으라는 명을 내린 후에는 본격적인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런 기독교를 처음에는 하층민들이 믿었고 이후 로마의 관리들이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백부장은 고백은 참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로마서의 큰 주제를 살펴봤습니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은혜("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를 베푸신 내용이 1장 앞부분에 나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율법을 주었다는 일반적인 계시가 3장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4, 5장에는 생명, 즉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다는 이신칭의가 나오고, 6장, 7장, 8장에는 성화-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거룩하게 사는 원리가 나옵니다. 9장부터 11장에는 선택이 나옵니다. 그리고 12장부터 15장까지는 그리스도의 삶, 성화가 나옵니다. 마지막 16장은 사도 바울이 칭찬하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을 나열합니다. 


  초대교회에서 황금의 입이라고 불렸던 교부, 신학자 크리소스톰은 초대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로마서 주석을 합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작년에 책을 냈던 지평서원에서 크리소스톰 로마서 강해를 출판했습니다. 그 크리소스톰의 로마서 주석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루가 멀다시피 그의 사랑어린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바울이 제 앞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우리 둘이 한없이 정다운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로마서는 어려운 성경이 아닙니다. 대화하듯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저도 많이 기도하면서 정겹게 전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신구약을 망라해서 바라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로마서를 감사히 받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