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대 위임 명령 | 마 28:18-20; 사도행전 1:6-8 | 땅 끝까지 증인 됨 2 | 문병호 목사 | 202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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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6일 주일낮예배 설교  |  땅 끝까지 증인 됨 2


주님의 대 위임 명령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마태복음 28:18-20; 사도행전 1:6-8

(마태복음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6-8)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녹취록



1. 가서 증인이 되라

동일한 본문으로 크게 하나님의 말씀, 특히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두 군데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을 유언이라고도 하지만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죽고 살아나셔서 죽고 살아나시고 승천하실 때 하신 말씀이니 유언이라기보다는 대 위임 명령, 지상 명령, 대 사명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이 땅을 떠나시면서 보면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두 가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죽고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 가운데 여러 일들이 있을 것이나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두 가지는 확실합니다. 
여행을 작정하고 계획하고 다녀오듯 우리 인생의 여정도 그렇게 우리가 계획하고 수놓고 살아가지만 또 지나고 보면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천재지변이라고 하는 일들도 해마다 장마가 있다고 하지만 매번 당할 때마다 생각치도 못하는 일입니다. 산이 무너지고 평소에 다니던 지하도가 물에 차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감히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보면 우리가 멀리, 높이, 인간의 과학 혁명이니 우리의 재능을 뽐내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주 작은 것 하나도 감당할 수 없는 더 연약해 보이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세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지상 명령입니다. ‘가서’라는 말은 단순히 지리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한때는 비행기를 타고 가야 선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서'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가서’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도 제자들은 이스라엘 지경을 위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 시기에 대해 알 바 아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모르게 하시는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지식을 가져야 기승전결을 가지고 일을 끝낼 것 같으나 믿음의 세계는 다릅니다. 내가 이성적으로 안다고 해서 더 잘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내 영이 열리는 것이므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순종하는 자세로, 그 영이 내게 임하면 '땅끝까지 이르겠나이다' 매시, 매초 순종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발행하는 시점을 알 수 없었습니다. 언제 떠나는지 물을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떠나야 합니다. 앞으로 금요 철야 때 말씀을 보겠지만 몇 년을 거할 때도 있는 것이 구름기둥, 불기둥입니다. 구약성경에도 보면 스케줄을 잡아서 계획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갔습니다. 지시하는 땅이 어딘 지도 모릅니다. 다만 약속했던 땅인 것만을 알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면서도 나서게 하시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감사합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니 몰라도 되는 것입니다. 떨어져 있으면 알아야 하나 손잡고 이끄시면 몰라도 됩니다. 아이들은 묻지 않습니다. 모든 스케줄을 다 알아야 하고 모든 것에 대한 것을 다 파악해야 움직이고 하나님은 잠시 도와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증인의 삶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전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구원받게 하십니다. 그것이 증인입니다. 내가 구원받지 않고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증언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증인이라는 말은 첫째로 생명을 받았고 생활의 거룩함을 받았으니 살아남, 살아감의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멘이 없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전하며 양육합니까. 내가 먼저 구원을 얻었으니 생명 단위의 전도를 하는 것이 선교자, 순교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증인이, 목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의 체험과 경험이 없이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야곱이 20년 밧단아람의 생활을 견딘 것은 돌베개를 베고 하나님을 뵌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알 바가 아니라고 한 것은 모르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바로 의지하는 길입니다. 내가 알아서 내가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구름기둥, 불기둥, 곧 구약의 성령, 임재를 보고 따라가고 머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성도의 삶입니다.


2. 내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내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한 말씀에 대한 설교는 이미 몇 주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길에 동행하시고 야곱, 이삭,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시고 모세와도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와 대면하여 보신 말씀도 있습니다. 다윗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할 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성취인 것입니다.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거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요 17:21). 우리에게 증인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약시대입니다. 목사만 선교사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족속으로 모든 사람에게 세상 끝날까지 가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나 누구에게든지, 듣든지 안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누게에간 전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지상에서의 가치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 사명입니다. 대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은혜가 큰 것을 의미합니다. 크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에게 맡기십니다. 큰 것은, 우리는 연약하고 작아서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번에도 선교간 아프리카에서 군데군데 어떻게 저런 가운데서 사역을 할 수 있을까 하는데 그분은 오히려 기쁨과 편안함으로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땅끝 마을이 해남에 있습니다. 남아공에도 땅끝 개념이 있습니다. 케이프타운, 희망봉 입니다. 땅끝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귀한 말입니다. 우리에게 ㅅ애명 주신 의미이고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를 삼은 은혜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 있는 땅끝의 개념입니다. 꼭 비행기를 타서가 아니라 우리 가정, 이웃, 자녀가 땅끝입니다.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부분을 저는 자꾸 마음에 새깁니다. 지구촌이라고 할만큼 이제 우리나라에도 많은 외국인이 있습니다. 모든 지식이 컴퓨터에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는 책이 없어서 에딘버러 갔을 때 도서관에 가서 세계에 네권 밖에 없는 책을 허가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료가 없어서 미국에 유학가는 일이 더이상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의 닫혔던 마음을 열고 담을 쌓은 것을 허물고 우리가 그동안 움츠린 손을 펼치는 것이 땅끝까지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아직까지 지역에 민족에 매여 있었으나 오순절 성령을 받으니 그것이 넓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이끄심을 받아 땅끝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를 이끄셔야 내가 움직이지 내가 결단하고 허리띠 매고는 안됩니다. 베드로와 같이 젊을 때는 허리띠를 맷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3. 나미비아 선교 1

선교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서울에서 출발해서 나미비아 수도에 도착했습니다. 아프리카 서남부, 남아공 위쪽으로 위치해 있습니다. 이 나라는 북한과 친합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 독립운동한 사람의 형상을 김일성 동상과 같이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빈툭이 나미비아의 수도인데 왜 사람들이 그곳을 많이 가느냐 하니, 우리나라 드라마가 빈툭에서 촬영됐다고 합니다. 서쪽으로 나미비아 사막과 해안이 있습니다. 이 사막을 나미브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나미브 사막이 나라 이름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이 사막이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이 사막의 모래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 모래를 듄이라고 하는데 들어서 쏟아도 먼지가 하나 안납니다. 중요한 곳에 번호를 붙여놓았는데 듄 42이라는 곳도 가봤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내지로 가면 제가 갔던 힘바, 뱀바 족속 등이 있습니다. 족속이 많은데 다 다릅니다. 모자를 쓰는 모양도 옷 무늬도 다릅니다. 제가 갔던 힘바 족속은 상의는 입지 않습니다. 진흙과 소기름을 바릅니다. 평생 목욕을 안 하는데 그것이 전혀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해변가로는 이처럼 나미브 사막이고 내지 쪽에 칼리하리 사막이 있습니다. 칼리하리 사막에는 오히려 나무들도 새들도 있습니다. 이번에 가서 빈툭이라는 곳에서 가자마자 차를 타고 조금 가다보니 비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솔리테어라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 루터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곱 마리 정도 되는 기린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임스복이라고 하는 짐승과 스프링복이라고 하는 동물들도 봤습니다. 이곳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몽구스 혹은 미어캣이라고 하는 동물도 봤습니다. 이것을 본 곳이 세스리 국립공원입니다. 그리고 이 공원에 듄이라는 사막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미브 사막이고 해변이 접해 있습니다. 모래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희는 듄 42번 사막을 갔는데 듄 45번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착한 나미브 사막에 마지막 오아시스라는 곳도 가보았습니다. 나미브 사막에는 물이 없는데 나무가 푸른 곳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소아쿠트무트라는 나미비아의 제2도시로 갔습니다. 루터란 교회가 있었는데 첫 주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독일말로 설교를 해서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은혜로 예배를 드렸는데 아주 경건하게 한 시간 내내 말씀만 전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전부 백인들이 오는데 그쪽 지역이 독일이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루터란들이 그쪽에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 도시는 소아쿠트 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데, 이곳에서 플라밍고 새를 많이 봤습니다. 또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다는 염전도 봤습니다. 붉은기가 있는 소금을 채취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차로 바다를 보면서 바다 옆의 모래톱을 달리는데 갑자기 차를 새우더니 자칼이 있다고 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맹수라기보다는 귀여워 보이는 동물이었습니다. 


4. 나미비아 선교 2

이후 성경학교로 이동했습니다. 150명 정도 있는 곳인데 빈툭의 빈민가 학생들입니다. 중고등부에서 대학부까지 있습니다. 호디고스라는 지역의 미국의 선교사님들이 수련 가는 지역이었는데 미국인들이 철수하고 한국 선교사님들이 양도를 받아 운영하는 첫 번째 모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는 일정에 맞추어 수련회를 계획했다고 합니다. 속도 좋지 않아 약을 계속 먹으면서, 기도하고 성령의 역사를 생각하며 말씀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통역을 세우려다가 성령의 역사를 믿고 영어로 설교했습니다. 학생들 자는 곳은 너무 추워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반바지만 입고 잡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은 평생 목욕을 처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설교를 했는데 너무 은혜가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나 자신을 아는 지식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교만해서 나의 가능성을 먼저 말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으나 하나님을 만나면 가능한 불가능이 된다고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느데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라고 전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한 그 순간에 바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십자가 앞에 세우면 무엇이든 능치 못함이 없다고 설교했습니다. 그 설교를 하고 학생들에게 은혜가 되고 저도 몸이 회복되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학생들과 인사하고 그들을 뒤안길에 두고 떠났습니다. 사모에게도 와서 누가 질문하기도 하고 했습니다. 저에게 또 어떤 학생이 다 받아 적었는데 한 곳의 성경 출처를 모르겠다고 해서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가진 것이 얼마 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영어를 다 할 수 있으니 영어로 성경을 읽으며 제가 전한 설교도 알아 들을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에투시아 국립공원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힘바 족속에게 가는 길입니다. 이 족속은 옷을 벗고 붉게 칠한, 우리가 사진에서 많이 보는 그 족속입니다. 이 여정 중에 공원에서 하루 잤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코끼리 50마리 이상을 봤습니다. 힘바 족속에게 가서는 급조한 설교를 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영어 성경도 빌려 놓고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아프리카 식으로 창고 같은데서 쿵쿵 거리며 예배를 드리더랍니다. 화음을 넣으며 찬송도 부르고 말입니다. 그곳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두 시간 반 가까이 전했는데 제가 영어로 하면 현지어로 통역을 했습니다. 이렇게 은혜로운 시간을 가지고 다음 날 희망봉으로 떠났습니다. 케이프타운에서 아이들이 있는 학교와 도서관에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남아공에서는 펭귄도 보고 워터프론트라는 곳도 보았습니다. 


5. 결론: 연합하여 섬기자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 저에게 세 가지 와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소셜 위브입니다. 사회적 직조인데, 새 이야기입니다. 배를 짜는 새가 있다고 합니다. 새들이 초가지붕같이 생긴 방을 삼백 개를 만든다고 합니다. 각 방에 구멍이 있어서 한 쌍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흰개미를 보며 생각한 것입니다. 흰개미가 지은 집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다 보면 하얀 비석 같은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석이 아니라 흰개미 집입니다. 개미는 5밀리미터인데 5미터 집을 짓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이 흰개미 집이 몰려 있는 언덕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바 족속들이 식료품을 팔기도 하는 시장이었습니다. 먼지가 너무 많이 일어 견딜 수가 없는 곳인데 힘바 족속 등 모든 족속이 평화롭게 모입니다. 
이렇게 이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직조처럼 교회가 연합하고, 흰개미처럼 작은 동물이지만 큰 집을 짓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사회적으로 연합하여 이웃을 섬기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비록 힘은 약하고 크기는 작으나 큰 일을 하게 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 말씀하지 못한 부분들과 관련된 사진들을 나중에 별도로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