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6 | 주일낮예배 | 추수감사주일 | 감사함: 기쁨으로 누림의 열매 | 시 100:1-5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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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6일 주일낮예배 설교  |  추수감사주일


감사함: 기쁨으로 누림의 열매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시편 100:1-5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녹취록



1. 감사를 통한 성화(聖化)와 누림의 회복

     해마다 이맘때 추수감사주일을 지내면 곧 겨울, 성탄, 새해로 시간이 급하게 흐릅니다. 추수감사주일에 가을 곡물이나 과일을 앞에 놓고 예배드리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대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귀한 행위입니다. 제가 외국에서 경험했을 때와 달리, 오늘 우리 교회의 풍부한 과일은 이 감사의 표현을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간혹 삶에서 몸이 조금만 아파도 큰 병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고, 간혹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내가 잘 못 누리고 있는가? 감사하지 않고 있는가?’를 돌아봅니다. 이 막막함을 채우는 것은 운동을 더 하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나는 이끌려가고 있음을 깨닫고, 늘 감사하는 그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잠시라도 흔들리는 것입니다. 요새는 돌아 누워도 힘들 때가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만물이 지금 다 털어내야 하는 힘든 때이기에, 이 점이 오히려 과일이 맛을 내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정착할 때, 마치 홍해를 건너듯 막막한 상황에서 첫겨울을 맞았고, 혹한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이 첫 추수를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했던 것이 바로 추수감사주일의 유래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구약의 절기(수장절, 초막절)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셨으므로 구약의 절기는 폐하여졌습니다. 우리가 다만 그 의미를 붙여 말할 뿐입니다.
     추수감사주일에 감사를 드러내서 하는 것은 우리의 겸손입니다. 함께 모여 감사를 고백함으로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우리가 마디마디 생각하며 기도하듯이 마디마디 감사하는 것이 바로 추수감사주일을 지내는 의미입니다.
     저는 성화를 신학적으로 이렇게 쓰면 좋은 점수를 못 받을 수 있겠지만, “어제보다 오늘 더 잘 누리는 것이 성화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곧 더 잘 의지하는 것이며, 더 나를 부인하고 더 ‘나의 것은 내 것이 아니요’라고 고백하며 은혜에서 감사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감사는 준비이며, 철드는 것, 지경 넓히는 것, 그리고 영적인 중무장입니다. 독수리가 큰 기류를 타고 고요하게 응시하듯, 감사는 우리 삶을 흔들림 없이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우리의 삶은 은혜 위의 은혜요, 달란트 위의 달란트입니다. 달란트 자체가 선물이라는 뜻이기에, 우리는 선물로 시작했다가 공로로 마치지 않습니다. ‘살아남도 은혜고, 살아감도 은혜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고백처럼, 삶과 죽음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의 마디입니다. 대나무가 마디로 강함을 유지하듯, 우리도 마디마디 하나님께 은혜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느헤미야). 빛, 아름다움, 꽃,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은혜, 성령의 교통(감동, 감화)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럼에도 부족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누림이 부족한 것’입니다. 굳이 아름다움을 찾아 먼 곳에 가지만, 끝내 돌아보면 우리 집 마당이 가장 아름답다는 소설처럼,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을 누리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양재천을 걷는 것, 호흡하는 것, 짓부둥 해보면 걷는 것이 감사한 것처럼,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주의 긍휼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만물에게 호흡을 주시는 이에게 감사하라”(시 136편). “매사 만사 긍휼이 먼저다.” 하나님은 빛보다 먼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다”는 긍휼을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2. 시편 100편의 세 가지 행위와 하나님을 주어로 삼는 신앙

     시편 100편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핵심적인 명령을 중심으로 합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즐거운 찬송’은 ‘루아’라는 동사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쳐 부르는 것처럼, 여호와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크게 영광을 울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잠잠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고백하는 찬송입니다. 호흡기를 떼고 호흡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그 감사를 건강할 때 하는 것이 철드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뭔가 허물어지고 불안합니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빛 안에서 다니리로다”(시 89:15). 즐겁게 주님을 부르면 주의 얼굴빛 안에서 다니게 됩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라.” ‘섬긴다’는 것은 종이 된다(에베드)는 뜻이며, 무서운 명령을 받을 때도 기쁨으로 섬기는 것이 종의 마땅한 덕목입니다. ‘그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여호와의 얼굴 면전에서(Coram Deo), 브니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나아갈 때 부르는 노래는 새 노래입니다. 이는 거듭남, 구원, 부활, 영생의 노래이며, 여호와와 대면하여 보는 모세의 노래와 같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모든 예배, 모든 헌금의 기본은 감사입니다. 십일조는 약속된 헌금이지만, 기본은 받은 것을 알고 드리는 감사입니다. 감사해야 영적인 문이 열립니다. 감사는 열매 자체입니다. 기쁨이 우리 안에서 즐거움이 솟아나 응고되어 형체를 갖춘 것이 바로 감사의 열매입니다. 기쁨이 있어야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모든 재물은 이 감사의 재물입니다.

3. 하나님을 주어로 삼는 신앙과 기쁨의 근원

     하나님을 주어로 삼는 신앙: 우리는 믿음, 사랑, 기쁨을 동사형(내가 행하는 것)이 아닌 명사형(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기뻐하게 하소서’가 아니라, ‘기쁨을 주소서’라고 기도하여 하나님을 주어로 삼아야 합니다. 지난주 설교에서처럼, 바리새인은 자기를 주어로 삼았지만, 세리는 “하나님이여,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나님을 주어로 삼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주어로 삼는 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그래야 흔들림이 없고, “주신 분도 하나님이요, 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요”라고 고백할 때 샬롬(평안)이 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불가항력적인 아가페 사랑을 받았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쁨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낳으시고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습 3:17)고 하셨습니다. 이는 낳은 자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내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신령한 기쁨은 불가항력적인 전파력을 가집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 4:7). 기쁨의 분량은 환경의 양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누리는 양입니다.

4. 여호와와 하나님의 영원한 성품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이 두 이름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스스로 계신 분으로, 모세에게 계시된 언약의 주이자 구원주의 이름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구원 고백과 같습니다. 
     하나님(엘로힘)은 창조주이자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나의 구주(여호와)가 만물의 창조주(엘로힘)시다’라는 확신을 가집시다. ‘생명 주신 분이 생활 주신다. 살려주신 분이 양식 주신다’는 진리입니다. 구주가 목자가 되시며,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성품입니다. 그의 선심은 진리 가운데 복되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구약의 헤세드(인자)는 신약의 아가페(사랑)와 같으며, 그 사랑은 영원합니다. ‘성실하심’(에무나)은 디모데후서의 신실하심과 같은 단어로, 전능하심 가운데 불변하시는 성품을 의미합니다. 이 성실하심이 세대를 넘어 대대에 이릅니다.


5. 결론: 기쁨이 표요, 감사가 격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기쁨이며, 그 기쁨의 진액이 잘 여물어져 감사의 열매를 맺습니다. “기쁨이 표요, 감사가 격이다.” 기쁨은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야 할 표징입니다. (얼굴로도 기뻐합시다.) 감사는 성도의 영적인 품격을 드러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최고 품위가 높은 사람입니다. 기쁨이 이기고 감사가 이깁니다. 기뻐하고 감사해야 큰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힘든 일이라도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니, 그 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기쁨과 감사의 조건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순간의 슬픔과 막막함이 있더라도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가 우리의 기쁨과 감사의 조건이 되도록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