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1 | 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 새해감사주일 |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 | 전도서 3:1-15 | 문병호 목사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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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1일 주일낮예배 설교  |  새해감사주일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전도서 3:1-15

(전도서 3:1-15)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녹취록



1. 인생의 기한과 때

     2023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물이 흐르듯 인생이 2023년이라는 달력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살을 먹습니다. 우리 속담에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참 때는 시간은 내 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시간이 나를 쇠약하게 하고 늙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때가 있다고 합니다. ‘기한’이라는 말은 1차적으로 정해진 구간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좀 더 의미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정해진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멸이 있고 시작과 어느 구간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하나님의 운행 질서가 기한입니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연한이 있습니다. 그것을 수명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생물에도 어느 길이만큼의 삶의 때가 있습니다. 꽃도 일년생이 있고 다년생이 있지 않습니까. 제품에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시편 39:4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나의 끝과 내가 이 땅을 삶을 사는 연한, 즉 수명이 어떠함을 알게 하사 연약함을 알게 해달라고 합니다. 시편 90:10에서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70, 80세를 살고 요즘에는 100수도 하며 더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연수 동안 헤아려 보니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날아간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이 전체적으로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지나 보니, 쑥 날아간 화살 같다고 시편 기자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기한과 정해질 질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때인지는 모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기한이 있고 때가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우리 수명의 기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이 어느 때인지는 모릅니다. 분명히 가을에 낙엽은 집니다. 어떤 때는 낙엽이 조금 늦게 지고 어떤 때는 조금 빠르게 집니다. 모든 사물에 기한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때는 알 수 없습니다. 단풍이 11월 15일에 드는지, 22일에 드는지 그때는 다양합니다. 때가 다르다고 해서 기한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8절까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범사에 날 때와 죽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것은 다 죽습니다. 그리고 심을 때와 뽑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콩을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습니다. 3절에서는 죽일 때와 치료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때는 양의 다르기 부러지면 치료하는데, 어떤 때는 양을 도수장에 가져가서 잡습니다.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습니다. 집을 세울 때가 있고 포크레인으로 집을 쿡쿡 찍어서 허물 때가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 춤추며 법궤를 옮길 때가 있었고, 예루살렘을 걸쳐 흐르는 기드론 시내를 눈물을 흘리며 건널 때가 있었습니다. 시편 30:5에 “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전날 그렇게 울다가 그 다음 날 기쁨이 옵니다.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슬퍼할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보니 에스더가 생각났습니다. 하만의 궤계로 모르드개는 장대에 달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멸절당할 것이 예고될 때 슬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만을 그 장대에 달아 버리십니다. 에스더 9:22을 보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날이 부림절입니다. ‘부림’이란 말은 ‘제비’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림절은 하나님이 슬픔이 기쁨이 되도록 정해 주신 날입니다. 또한,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다고 합니다. 주석을 보면, 이는 전쟁을 해서 성벽을 무너뜨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두어 건물을 지을 때가 있다는 의미로 보기도 하고,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돌을 거두어 버려 밭을 일구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안을 때가 있고 품에서 멀리할 때가 있습니다. 아기를 안을 때가 있고 장성했기에 내보낼 때도 있습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젊을 때는 감기나 질병에 걸려도 금방 건강을 찾으나 건강을 쉽게 잃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애지중지하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일상을 살다 보면, 차를 새로 사면 깨끗이 닦습니다. 그런데 두세 달 지나면 그저 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광야 생활을 지나서 가나안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지키려 할 때가 있었고,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땅을 떠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고, 흩어지게 할 때가 있고 모을 때가 있고,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100m를 뛸 때는 잠잠해야 합니다. 노고를 할 때는 잠잠합니다. 한편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되면 안 됩니다. 한참 뛸 사람이 말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도 그렇게 합니다. 돌아서면 남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맞아들였지만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은 못 막습니다. 인류가 타락했을 때 형제를 죽이지 않습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이지 않습니까. 어느 장군, 대통령이 전쟁을 못 막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오랫동안 평화로운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인류 역사상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평화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다윗의 왕국도 수천 년 갈 것 같은데 불과 솔로몬 이후에만 되어도 나라가 두 동강이 났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의 단면을 보여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2. 타락 이후 인생의 모습 1: 수고와 노고

     전도서 기자가 이렇게 길게 얘기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영원한 것도 없고 불변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앞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후 9절과 10절은 수고와 노고를 하나님이 주신다고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은혜 위주로 기록되어 있으나 전도서만큼은 우리 인간의 타락 모습과 한계를 많이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인간의 헛됨만을 말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9절과 10절에서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는 수고와 노고는 우리의 죄 값을 의미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수고와 노고가 들어왔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수고와 노고는 크게 두 가지의 죄 값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첫째는 죽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 안을 떠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수고가 들어왔습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땅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그 땅이 우리 인생과 부대끼는 것입니다. 땅은 인생을 도와 주지 않고 가로막는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3:18에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크게는 두 가지인데, 창조주를 떠나는 일, 즉 죽음이 일어났고, 피조물 간에도 서로 부딪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물이 사람을 가로막습니다. 이것이 수고와 노고입니다. 창세기 3:19을 보면,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땀을 흘려야 먹고 산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 애쓰는 것, 죄의 삯을 치르는 것을 수월하게 말하면 감옥살이라는 것입니다. 죄 값을 치르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기를 다 채우면 형장에서 사형을 집행당하듯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 인생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전도서 기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3. 타락 이후 인생의 모습 2: 헛됨, 무익함, 괴로움, 슬픔

     전도서는 성경에서 아주 귀한 책입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연약함과 한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했습니다. 전도서 1장 1절을 보면,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의 아들은 솔로몬입니다. ‘전도자’라는 것은 성경에서 잘 안 나오는 말인데요, 오늘날 말로 굳이 말하자면 철학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teacher’(선생)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기드온 산당에서 구하여 지혜를 얻은 자입니다. 일종의 인생 철학 같은 것이 가장 깊이 들어 있는 것이 전도서입니다. 전도서 1:2을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며”는 헛된 것 중에 헛되다는 것인데, 이스라엘의 최상급 표현입니다. 헛된 것 중에 가장 헛되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하벨 하바림 하벨 하바림 하콜 하벨’이라고 되어 있는데, ‘하벨’이 ‘헛되다’, ‘무익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없는 것들 중에 가장 없고, 또 없는 것들 중에 가장 없고, 모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영어 성경을 자주 보지 않는데 NIV를 한번 보니, “Meaningless! Meaningless! … Utterly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의미 없고 의미 없고 아주 의미 없고 모든 것이 의미 없다(무의미하다, 무익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3을 보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말씀합니다. 전도서 1:13을 보면,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14절을 보면,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이 지나간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전도서 2:23을 보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라고 합니다. 제가 전도서를 전체적으로 보면 네 단어가 주목됩니다. ‘헛됨’과 ‘무익함’과 ‘괴로움’과 ‘슬픔’입니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해 아래에서”, “하늘 아래에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모티브를 잡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해와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높은 곳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해나 하늘 아래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아래에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의 신령한 것이 아닌,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헛되고 괴롭고 슬프고 무익합니다. 
     나는 이러한 것에서 예외일까요? 전도서 1:9을 보면,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나도 아무리 노력해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서 1:18을 보면,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가르친다는 솔로몬이 이렇게 한계상황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어떠함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이 나오는데요, 전도서 4:2-3을 보면,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도대체 전도서가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일까요? 전도서는 인생의 단면, 즉 타락한 인류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 형벌과 고뇌가 안 태어나니만 못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보다 죽은 게 더 복되고, 살아 있는 것보다 안 태어나는 것이 더 복되다고 합니다. 


4. 하나님 안에서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면 우리 인생은 헛되고 괴롭고 슬프고 무익하기만 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인 전도서 3:13을 보면,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느닷없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전도서 2:24을 보면,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은혜받은 백성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은혜 받은 자들에게는 먹는 것, 마시는 것, 수고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내 집도 아니고 학식도 아니고 소유도 아니고 우리 인생 자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전도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깨달은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하는 인생의 헛됨과 괴로움과 슬픔과 무익함과 함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을 깨달은 것입니다. 전도서 4:1을 보면,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위로자가 이사야 40:1에서 말하는 ‘위로’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위로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자가 없는 자들은 빨리 죽는 게 복되고 안 태어나는 것이 더 복되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위로자, 보혜사, 대언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인생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전도서 2:26을 보면,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서를 구별해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있는 자,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십니다. 그러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십니다. 수고와 노고가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수고와 노고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것들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26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희락”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말씀이 전도서 3:11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가운데 이 땅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때를 따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수고하는 것도 낙을 누리는 것(희락)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귀한 선물일까요? 하나님이 주신 나의 인생이 가장 복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의 인생을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해 동안 나를 가꾸어야 합니다. 정원을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가꾸어야 합니다. 나를 가꾸는 데 있어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하는 것도 나를 가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와서 가지는 직업도 나를 가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이것을 직업소명이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3:22을 보면,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12절을 보면,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라고 말씀합니다. “몫”(히. 헤레크)은 하나님인 우리에게 주시는 할당입니다. 12지파가 각각 자기 몫으로 기업을 받았고, 예수님의 비유에서 종들은 자기 몫의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몫으로 주신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일에서 즐거워하는 것보다더 나은 것이 없고,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처해진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 땅에서 주신 일을 부지런히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애쓰는 것이 헛됩니다. 그것은 그저 슬픔이고 고통이고 무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영원을 사모하고, 그 가운데 이 지상의 삶을 살아갈 때,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몫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일이 즐겁지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주신 일이니 즐거운 것입니다. 동네 길거리를 청소하는 어떤 분은 자기가 지구의 일부분을 청소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말씀이 한 군데 더 나오는데요, 전도서 5:19을 보면,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몫을 주시고 누리게 하십니다. 잘 누리는 것이 가장 믿음이 좋은 것입니다. 잘 누리는 것은 기도하고 구하고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자는 인생의 두 모습 중에서 여기서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 즉 하나님을 위로자로 삼고 그 안에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3:14을 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너무 과욕하지 마시고, 너무 못하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다’고 고백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시는 이 지상의 일도 하나님 안에서 의미를 가질 때 천상의 상급이 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으시면 소멸합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슬픔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서 3:11을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인생을 믿음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청교도 정신, 직업소명입니다. 이 땅에서 맡은 일을 하나님이 주신 일로 여기고 열심히 감당하고 베푸는 것입니다.


5. 하나님 안에서 지성소적 삶

     지성소(至聖所)란 무엇입니까? 영어로 “Holy of Holies”입니다. 즉 거룩한 것 중의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헛된 것들 중의 헛된 것이 아니라, 지성소적 삶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인생은 무익한 것들 중의 무익한 것이라면, 그러나 우리에게 인생은 거룩 중의 거룩입니다. 우리의 삶은 지성소적 삶입니다. 올해도 지성소적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공로나 내 자질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잘 누리는 것입니다. 전도서 5:19을 보면,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에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이 몫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으로 나를 가꾸어야 합니다. 내 자신은 하나님만 보십니다. 
     선물에 관한 말씀이 너무 귀합니다. 에베소서 2:8과 3:7에 우리의 믿음과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2:38에서는 성령을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선물을 받았으니, 인생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5:15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에베소서 4:7을 보면, 오늘 말씀에서 나온 ‘몫’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몫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번성과 충만함이 넘치시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