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말씀 | 잠 4:20-27 | 문병호 목사 | 어린이주일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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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말씀 | 잠 4:20-27 | 문병호 목사 | 어린이주일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502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녹취록>



1. 부모 품 안에 있는 자녀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지킵니다. 이것은 절기적 의미이기보다 이 주제를 집중해 보는 계기로 삼는 것입니다. 어린이, 어버이, 스승은 다 귀한 말들입니다. 5월의 실록과 같이 활기찬 가정이 되도록 이런 날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어린이, 어버이 주일이 되어 자녀와 부모에 대한 말씀을 전할 때 마음에 주저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누가 효자라고 할 수 있고 자녀 교육을 잘 시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부족합니다. 애통하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가족을 생각하면 그러합니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오늘은 어린이가 부모를 향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어린이가 어린이인 이유는 부모의 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리광을 부립니다. 어린이가 복된 것은 부모의 품에 있는 것입니다. 



2. 가정교육


가정은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정교육이 있습니다. 가정에 교육이 없으면 자녀가 올바로 자랄 수 없습니다. 가정에는 먹고 마시는 이상의 더 큰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가정교육에 있습니다. 교육은 가르쳐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장성한 채로 오신 것이 아니라 모태에 잉태되셔서 성장하며 가정교육을 받으셔서, 지혜와 키가 자라가셨습니다. 인성의 주님은 스스로 자라신 것이 아니라 그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교육하고 양육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럽게 되셨다고 합니다(눅 2:52).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스럽다는 말은 가장 좋은 말 같습니다. 저는 이 말을 통해 교육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봅니다. 사랑스럽다는 말은 교육을, 말씀을 잘 받고 부모에게 순종했다는 걸로 여겨집니다. 공부를 잘하고 달리기를 잘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입니다. 

신앙교육은 교회에서 하고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하고 기능교육은 학교에서 합니다. 학교는 도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기술이나 학문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교육을 안 시키고 학교에서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교회교육의 교재는 성경이고, 교회교육의 정점은 예배이며, 교회교육의 뱃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가정교육의 교재는 부모님의 훈계이고, 가정교육의 정점은 효도이며, 가정교육의 뱃지는 집안의 경륜입니다. 



3. 가정교육의 근본: 여호화를 경외함


잠언은 전체적인 형식이 자녀교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전반부 앞부분이 그렇습니다. 잠언의 가장 큰 주제는 1장 7절 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고 훈계는 그것을 심는 것입니다. 훈계가 없으면 지혜가 심겨지지 않습니다. 지혜가 씨앗이라면 훈계는 밭을 가는 것입니다. 밭을 갈기 위해서는 땅을 파야 합니다. 땅을 파다 보면 혼도 내고 찢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땅에 씨앗을 넣을 수 있습니다. 지혜와 훈계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말씀을 멸시합니다. 말씀이 나에게 심겨지는 것도 멸시합니다. 그 지식의 근본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에 대한 경외가 없으면 지혜도 없고 훈계도 없습니다. 말씀이 없고 말씀이 심겨지는 것도 없습니다. 바로 교회 교육의 최정점은 예배인데, 여호와를 경배하고 신뢰하고 간구하고 감사하는 이 네 가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 말씀이 반복되는데 그 근본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는 두려워하면서도 불가항력적 은혜로 여호와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장을 들고 가지 않아도, 잘못한 것이 있어도 자녀는 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정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아버지로 섬기고 그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내가 내 모습을 보면 온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므로 하나님의 품에 불가항력적인 이끄심으로 내가 이끌려 들어가는 것의 정점이 바로 예배입니다. 항상 예배는 내가 가서 드린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나를 이끄셔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4. 부모의 훈계를 즐겨 들으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8). 훈계는 히브리어로 '무싸르', 책망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그저 회초리를 들고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훈계는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물이 있어도 그냥 걸어 들어갑니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두려움도 없습니다. 불로도 들어갑니다. 가만히 두면 사자한테도 갑니다. 뱀을 잡습니다. 밥 대신 사탕만 먹습니다.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훈계입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 12:1). 우리 자녀들은 어떻게 보면 혼나는 것을 감사하고 누려야 합니다. 혼났다고 앙심을 품는 것이이 작금의 세태입니다. 우리 십자가지기의 청년들, 학생들은 혼나는 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싫어하면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자녀가 우리 부모에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내가 맞다'는 것입니다. 왜요? 부모님은 아주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면산에 백 번 가 본 사람이 한 번 가 본 사람보다 더 잘 압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은 다년간의 경험이 있을 뿐 아니라 나를 낳고 기르셨기 때문에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더 잘 나를 압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것이 부모님입니다. 내가 날 때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아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아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나를 잘 압니다. 큰 기계가 돌아가면 젊을 때는 기계가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어릴 때 집앞에 떡 방앗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그 기계가 돌아가는 것이 그렇게 신기했습니다. 항상 보면 그 큰 기계에 기름을 쳤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큰 기계도 기름이 한 방울이 없으면 멈추거나 고장이 나거나 불이 납니다. 부모님의 훈계가 이 기름과 같습니다. 부모님의 훈계는 금보다 은보다 귀합니다. 이것을 즐겨야 효자입니다. 부모님이 혼을 내면 달콤하게 생각하는 것이 효자입니다. 또한 이런 의미에서 부모님을 전도해야 합니다. 이런 잠언을 볼 때 만약 부모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 6:23).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우리 자식들을 생명을 다해 키우고 사랑하십니다. 물론 우리 부모님들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훈계를 듣는 것이 지혜롭다고 잠언이 누차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5. 부모님의 말씀에 죽는 시늉이라도 내라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잠 4:20). 본문의 이 말씀을 이렇게 풀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내 말"은 명령하는 말을 가리키고, "내가 말하는 것"은 이야기, 즉 그 명령에 대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 자체를 듣고, 그것에 대해 부모님이 다시 이야기하시는 것, 경륜, 지혜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친근하게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은 그것을 내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합니다. 이것을, 부모의 말을 그려 보는 것이라고 해석해 봤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한 것, 설명한 것을 내 눈에 그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지키라고 했습니다. 제가 최고 쉽게 이 말을 표현해 봤습니다. 죽는 시늉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말씀하면 눈에 그리고 마음에 담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까 내 목에 금사슬이요, 그것이 나의 존귀요, 아름다운 관이라는 말입니다. 이 잠언을 본문으로 삼은 것이 바로 이 이유입니다. 부모님 옆에 최대한 오래 앉아 있으십시오. 친구들과는 두세 시간도 앉아 있으면서 부모와는 3분도 있기 싫어하지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낳으신 부모님이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밥을 주시고 빨래와 청소를 하시는 부모님이니 말입니다. 그런 부모가 하는 말이라면 지나가는 사람이 하는 말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이 부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새기고 지키라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부모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그것을 젊을 때는 잘 모릅니다. 제가 그나마 이 나이 되니 조금 알겠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사랑스럽다는 것입니다. 괜히 똑똑한척 하기보다 부모님 모시고 놀이터에 나가고 산책시키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자기도 몸이 불편하면서 부모를 휠체어에 태우는 것이 진정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똑똑하며 얼마나 잘나겠습니까. 나를 낳아주시고 사랑하시고 씹어서 먹이고 옷을 풀어서 따뜻하게 하시는 이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가 어찌 지혜롭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겠습니까.



6. 부모의 훈계 내용


부모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영혼과 육체에 모두 유익합니다. 그러면 부모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훈계는 무엇입니까. 

첫째, 내 마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재물은 누군가 그것을 도둑질할까 걱정됩니다. 그러나 마음도 지켜야 합니다. 육체는 잘 단련하는데 마음을 단련해 놓지 않으면 퍽 쓰러집니다.  요새 그런 일이 더욱 많은 것 같습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마음의 cctv를 달아야 합니다. 

둘째, 구부러진 말과 비뚤어진 말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즉 말을 가려서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도 보면 저주와 축복이 동시에 나오는 신체 기관이 유일하게 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한 가지만 봐도 될것 같습니다. 저도 말 때문에 후회를 많이 하는데, 그 이유는 말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이라는 게 항상 안 할 수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 가장 중요하게 하나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만 말하면 됩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고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말한다고만 생각하면 말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셋째, 내 눈은 바로 보며 내 눈꺼풀은 내 앞을 곧게 살핀다고 합니다. 눈은 직시하는 것이요, 눈꺼풀은 볼 것과 안 볼 것을 가린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라도 다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 호기심은 누구나 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이 죄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에디슨이 달걀에 대해 부화해 보자 하는 호기심은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 데나 다니는 호기심은 아닙니다. 

넷째, 발입니다. 무작정 아무 데나 가지 말고 준비된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길을 든든하게 하라는 것은 다진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푹신푹신한 길은 늪입니다. 준비된 길, 잘 다져진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도, 솔로몬이 성전 지을 때도 하신 말씀입니다. 

이 잠언의 훈계의 복이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