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기쁨 | 잠 23:15-17, 22-25 | 문병호 목사 | 어버이주일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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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기쁨 | 잠 23:15-17, 22-25 | 문병호 목사 | 어버이주일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509


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3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녹취록>



1. 교육이 필요한 인간


지난 주에는 어린이 주일로, 이번 주에는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우리나라 말 중에 아름다운 말이 참 많습니다. 꽃, 어린이, 어버이 등의 말이 주는 뜻과 정서가 우리에게 와 닿습니다. 잠언은 지혜의 책입니다. 여러 지혜 중에 관원의 지혜도 있으나 가정의 지혜 등을 많이 얘기해 줍니다. 지난 주에 지혜는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 사랑스러워진다는 말을 했습니다. 공부를 잘한다거나 운동을 잘하는 것처럼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만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에게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교육을 받아야 사랑스러워지지 그냥 둬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인간 외에 자연 만물은 그대로 두면 사랑스럽습니다. 손을 대거나 다듬으면 오히려 사랑스러움이 상합니다. 그러나 가장 연약하게 나는 피조물인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릅니다. 절대로 혼자 크지 못합니다. 그 기간이 매우 깁니다. 짐승들은 나면서 걷고 왠만하면 몇 달이 지나 생존력을 갖춥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 가정의 교육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답답한 부분이 있어도 순종하고 무릎을 꿇는 것이 있어야 사랑스럽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2. 자녀의 존재 자체가 부모의 기쁨


금주 설교의 본문에는 여러 사랑스러운 단어들이 나옵니다. 특히 설교 제목을 부모의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라는 말이 사실 쉬우면서도 어렵기도 합니다. 지난 주에 "사랑스러워"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부모를 기쁘고 즐겁게 하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데 그 전에는 저 역시 전혀 몰랐습니다. 공부를 잘하거나 판검사 하면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인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자녀들은 누구나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어느 자녀나 있습니다. 부모의 몸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슬픈 일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같이 길을 걷고 맛있는 식사를 같이 하면 부모가 기쁩니다. 어떤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자녀의 존재 자체로 기쁘고 즐거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하나님 경외와 부모 공경


본문을 보면 부모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 인간을 향한 부분의 첫 계명이 부모 공경에 대한 것입니다. 제 1계명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면, 제 5계명 이후로 나오는 모든 것은 부모 공경으로부터 시작되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제 1계명과 부모 공경의 제 5계명을 절묘하게 같이 말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칼빈도 제 1계명을 주석할 때 네 가지를 같이 말했습니다. 즉, 유일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경배하고 신뢰하고 간구하고 감사하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거창하고 대단한 개념 같으나, 결국은 어미 품에 안긴 자식의 모습입니다. 부모 품에 안겨 있는 자식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까불어도 자식이 부모 없이는 살지 못하는 것, 그것이 경배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엄마를 믿습니다. 엄마가 짓는 밥은 아무 의심 없이 먹습니다. 신뢰인 것입니다. 칼빈의 두꺼운 주석에서 제 1계명에 대해 이것을 못박듯이 선언해 놓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경배하고 신뢰하고 간구하고 감사하는 것인데, 이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표현하는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이와 같은 상황은 바로 아이가 어미의 품에 안긴 것에 대한 묘사라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고 듣고 손으로 만진 바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자세히 보고 듣고 손으로 만진 바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부모와 우리의 관계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이다


칼빈은 '낳으심의 시작은 하나님이시다.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해 주셨다'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을 낳았다는 말을 창세 기사에는 쓰지 않습니다. '창조하다'는 말을 씁니다. 최초에 낳았다는 말은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 1:14, 18). 유일하게 낳으셨다는 표현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인간이 낳았다는 이것을 가지고 성부가 성자를 낳았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데 익숙하지만, 낳았다는 표현의 원천은 성부가 성자를 낳은 것에서 발원합니다. "너는 내 것이라"(사 43:1)는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귀하게 여러 번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가 악한 자라도 선한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늘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어떠하겠냐는 말입니다. 자식에게 도둑질시키는 부모는 없습니다. 설령 자신은 그렇다고 해도 말입니다. 자녀가 세상에서 악행으로 이름 나기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절대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라면 선한 것과 거룩한 것으로 자녀인 인간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부모 자식 관계를 설명합니다. 돌아온 탕자 기사 역시 하나님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5.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온전해진다


예수는 이 땅에서 가장 힘드실 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대로 될 것과, 아버지와 하나됨과, 아버지의 뜻대로 될 것과, 생명이 아버지께 있음을 고백하셨고 높이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어떤 것입니까? 가족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본문의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말씀은 신령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어떻게 부모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합니까? 이것을 일시적으로는 인간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가 어떻다는 것을 헤아립니다. 그래야 우리의 나약함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부모의 연약함도 헤아립니다. 그 가운데 악한 부모라도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이라는 말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그러나 악한 자라도 선한 것으로 주고자 합니다. 불완전한 육신의 부모, 자녀 관계가 온전해지는 것은 그러므로 완전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그래서 제 5계명은 부모가 잘할 때만 공경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심지어 믿는 부모에게만 공경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 계명은 모든 부모를 일컫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완전하고 유일하시고 근원이 되신 하나님으로 '아멘'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면 육신의 부모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는 악한 자라도 선한 것으로 줄 줄 압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일까보냐'가 그래서 곧이어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말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또 그것을 마음 속으로 그려봅니다. 그리고 마음에 지킵니다. 이것을 지난 주간에 우리가 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계명을 통해 부모 공경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된 우리는 나를 가장 어릴 때부터 사랑해 주신 부모를 최고의 자리에 두지 않습니다. 심지어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자랑스러워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대구로 갔는데 그 자취방에 부모님과 누님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옆에 있는 서문시장도 가고 창경원도 가 봤습니다. 그런데 그 자취방에서 학교 쪽으로 가는 그 길로 엄마 손을 잡지 않고 저 혼자 앞서 나가고 부모님이 따라오셨습니다. 시골에서 오신 부모님이 부끄럽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마음에 새겨집니다. 부모가 초라한 게 어디있습니까. 부모는 부모이지요. 잘난 부모는 또 어디있습니까. 못난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저 부모이지요. 제가 설교 시간에 이런 말씀이라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6. 가정은 언약 공동체로서 기쁨과 즐거움의 자리이다


가정은 언약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너를 낳은 아비를 청종하고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정말 부모에게 잘하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잘한다는 게 힘들 수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엡 6:1-2). 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이 있으므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다 사랑하고 공경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찌 할 줄 모르니 오히려 부모를 힘들게 여기고 부모가 컴플렉스가 됩니다. 항상 보면 부모가 잘 해 준다고 자녀가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은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가정 때문에 고민하고 의무감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가정은 기쁨과 즐거움의 자리입니다. 가정은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언약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가정이 교회입니다. 회당이 없습니다. 신약에는 교회에 들어오는 것이 세례라면 구약에는 가정의 구성원이 되는 것으로 할례를 행합니다. 언약의 가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이 녹아집니다. 우리가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이 우리 자녀들 마음을 가져가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까지 어머니 마리아에게 순종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효도도 은혜입니다. 우리 자녀들, 부모에게 효도하십시오. 그러나 자녀들이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는 은혜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약속 있는 첫째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결코 자녀들을 판단의 자리에 세우지 않습니다. 정죄의 자리에 세우지 않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세우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결코 부모는 조건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그것을 우리게 알게 됩니다. 



7. 구체적 효도


1) 부모를 가까이 하여 기쁘시게 하라


룻은 시어머니와 즐거움의 관계였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계속 쫓아다녔습니다. 부모와 같이 있으면 불편하게 느끼도록 세대가 만드는 것 같습니다. 부모와 같이 있으면 불편하다는 것은 어디서 나온 문화입니까. 왜 안되는 것입니까. 자식들은 부모들과 그런 경향이 있으니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하여 자식들과 같이 사는 것을 자신들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이런 세태가 왜 나온 것입니까. 너무 거창하게 효도 등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함께 있는 것, 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그것이 부모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2) 지혜롭고 정직하며 세상을 부러워하지 말라


본문 말씀도 그렇습니다. 아비를 청종하고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하면서 부모를 기쁘게 하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로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이 즐겁고 부모의 마음이 즐겁습니다. 또한 절대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기뻐하기 위해서는 절대 정직해야 합니다. 거짓은 일회용은 되도 낫게는 못합니다. 아무 힘이 없습니다. 요새 우리 세태가 거짓말을 재미삼아 합니다. 그런 것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17절은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가 원하는 것,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형통한다고 부모들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죄 지으면서 자녀가 잘 사는 것을 원하는 부모가 없습니다. 마음이 지혜롭고 정직하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할 때 부모의 마음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품에 있을 때 부모가 기쁘고 즐겁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품에 있는 자들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우리 자녀가 하나님과 있을 때 부모의 마음이 놓입니다.


3) 부모를 탓하지 말고 섬길 기회로 여기라


부모를 탓하지 맙시다. 부모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차를 타 보면 매일 다니는 길이 평평해도 덜컹거릴 때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길을 탓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차가 고장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길이 아닌 차가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 오일을 잘못 갈아 차가 덜컹거리고 사고가 날 뻔도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만 있으면 차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우리에게 주신 상급의 기회입니다. 부모에게 섬길 것이 많습니다.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의 절정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다 기쁨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사근사근 말하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자식들은 부모와 대화해야 즐겁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에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난 기쁨으로 기쁨을 주시는데 이것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나면 이것을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8. 결론


칼빈은 부모에 대해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중하게 모시라는 것,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그리고 부모의 빚진 것을 봉양하라, 즉 물질로 섬기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마음만 쏟아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모든 것을 자녀에게 쏟았습니다. 자식 역시 부모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해야 합니다. 가장 맛있는 거 있으면 부모에게 드리고 가장 좋은 옷 있으면 부모에게 드리고 가장 편한 침대에 부모를 눕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