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 은혜, 전적 감사 | 대상 16:7-11 | 문병호 목사 | 추수감사주일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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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은혜, 전적 감사 | 대상 16:7-11 | 문병호 목사 | 추수감사주일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1121


7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먼저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8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9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10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11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녹취록>


1. 추수감사주일: 구약의 절기가 아니라 감사의 주일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이라고 총회적으로 전 교회적으로 이렇게 기념하는 것은 구약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절기는 의식 자체가 폐하여져 뜻이 완성되었으므로 이제 이 추수감사주일은 굳이 말한다면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들이는 초막절, 수장절, 장막절과 뜻이 맞닿아 있습니다. 사실 추수감사주일은 역사적으로 보면 신앙의 핍박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배에 올라 메사추세츠 미국 동부에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여 겨울에 많은 사람이 죽은 가운데 이듬해 맞은 가을에 하나님께 첫 곡식의 단을 거두고 드리는 것을 기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의식을 쫓은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다 이루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가 우리를 살릴 뿐 아니라 우리를 기르시는 것을 고백하여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생산의 싸이클이 일 년입니다. 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걷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월급은 한 달을 주기로 하여 받습니다. 주급이라는 것도 생긴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당이나 시급으로 받기도 합니다. 그러니 굳이 전통적으로 추수를 하는 가을에 무언가 거둔다는 차원이라기보다 실과를 보며 과일 하나의 맛에도 담긴 하나님의 기묘하심과 인간을 향해 베푸신 은혜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여 품종을 개량하고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그 자연의 산출은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2. 감사와 간구


본문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의 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기뻐한 것은 자신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칭송받을 때도 아니요, 하나님의 법궤를 옮길 때였습니다. 그때 그가 옷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춘 것입니다. 이 노래가 시편 곳곳에 퍼져 있으니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노래에는 감사뿐 아니라 자랑과 선포, 무엇보다 여호와께 구하는 자가 즐겁다는 내용, 감사와 간구가 모두 담긴 것입니다. 간구하고 있는 사람은 사실상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교만하므로 간구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실한 것이라도, 작은 생선 하나라도 붙들고 감사한다면 그때 간구가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가 없이 우리에게 기도, 간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많이 주셔서 감사하니 더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이 기도의 근본이 아닙니다. 작은 것이라도 여호와께서 주신 것, 새라도 먹이시고 백합이라도 입히시는 그분이 우리 인생을,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인생을 날마다 자라가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귀한 것이요,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을 간구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감사와 간구가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님들도 보면 작은 것 하나를 두고 귀하게 아껴 사용합니다. 감사하는 모습이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기억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처음 사랑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조건 감사일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의 존재 자체를 감사하라


본문 설교도 전적 은혜, 전적 감사입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으면 전적인 감사가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은혜이니 오직 감사입니다. 전적 은혜니 전적 감사요 오직 은혜니 오직 감사입니다. 모든 것에 은혜니 모든 것에 감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설 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존재 자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하시니 존재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멸망이요, 멸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시고 자신의 것으로 삼아주심입니다. 하나님 품에 안으셔서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고 유업을 주시는 상속자 삼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허물어집니다. 썩어지고 없어집니다. 존재하는 듯 보이나 말입니다. 그러나 천국 창고에 들이는 알곡은 끝까지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추수감사절의 의미일 것입니다. 오직 감사, 괜히 감사입니다. 감사에는 그저 괜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따져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흐물하게 그냥 괜히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없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조건을 따져 감사하면 절대 감사가 많지 않습니다. 괜히 감사해야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저 감사해야 감사가 넘칩니다. 거저 감사해야 합니다. 값없이 거저 받은 은혜에 매번 괜히 이유 없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변을 정리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고대광실 같은 집을 마련해도 내 마음에 감사가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산이 보이는 집이라 비싸니 싸니 얘기를 해도 감사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감사를 해야 누리는 것이 아닙니까. 잘 누리는 것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리면 정말 거친 음식을 먹어도 향기롭습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가장 좋은 것을 먹어도 목에 걸립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일도 감사해야 하고 집안 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감사로 해야 합니다. 감사가 힘입니다. 감사하면 즐겁고,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이 힘인 것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우리 자신이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적 감사, 오직 감사,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로 내 자신이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찬 때 부르는 내 몸을 바쳐 감사 드린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존재 자체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뭔가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드렸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드린다고 하면서 드렸습니다. 제물이 문제가 아니라 말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여호와께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의 장인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고 그리스도 없이는 헛되며, 특히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 내가 수고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니 부득불 자랑하는 것은 그의 약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나를 자랑하면 실족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면 실족할 일이 없습니다. 내 공로를 따지니 시험듭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고백하면 시험 들 것이 없습니다. 바짝 엎드리는 사람들에게는 지경이 넓어지는 간증만 있지 어떤 시험도 없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바로 우리 자신이 감사의 가장 큰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이것은 우리 자신이 항상 기도하고 감사하는 기뻐하는 마음을 갖자는 것으로 우리 자신이 감사의 제물이 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우리를 부르신 분은 신실하니 그가 바로 이루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참으로 귀합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라


본문은 감사와 함께 간구가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대상 16:8).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고백이 따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이것에는 필히 감사가 따릅니다. 그리고 찬송이 따릅니다. 본문 9절은 그리하여 그에게 노래하며 찬양하는데 이 찬양이 바로 자랑이자 전도입니다. 성전 미문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제자들의 기도로 일어나 걷게 될 때 바로 성전 안에 평생 처음으로 뛰어들어가 한 것이 자랑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감사가 따르면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랑이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찬양은 선향입니다. 선전하고 퍼뜨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자랑을 끝까지 붙들라고 말한 것이 이 이유입니다.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시 71:23). 주께서 속량하시는 내 영혼, 구원받고 거듭난 내 영혼,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사시는 내 영혼은 주를 찬양할 때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일상에서 우리 성도님들은 찬양을 많이 하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찬양할 때 입술이 기뻐하며 내 속에 영혼이 즐거워하리라고 노래했습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시편은 감사와 간구가 두 주제어입니다. 감사와 간구가 비롯되는 것은 말씀을 묵상할 때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쭉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눈물을 흘리고, 감사할 때 그것이 곧 기도이고 이것이 바로 시편입니다. 감사가 간구인 것입니다. 자녀가 즐겁게 맛있게 먹으면 부모라는 무엇이라도 내어 해 줍니다.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아가는 것이 간구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기도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감사한다는 기도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을 지키시니 감사한다는 기도는 곧 지켜달라는 간구입니다. 감사 없이 어떻게 기뻐하시는 간구가 있을 수 있습니까.



5. 결론


본문 10절은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워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앞에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고 합니다. 감사, 찬송, 자랑, 그리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같이 나옵니다. 이것이 다윗의 지도자의 면모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이 이것을 보시고 채워주시는 것, 이것입니다. 다윗의 지도자의 면모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대상 16:11). 감사하는 찬송에서 간구하는 찬송으로 바뀌는 것이 시편의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의 가르침입니다. 작은 것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한다면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맛이 덜할지라도 감사하게 먹으면 그 사람이 최고의 미식가입니다. 감사하게 먹는 사람이 미식가입니다. 이런 것들은 따져서 되지 않습니다, 무조건 해야 됩니다. 다윗이 따져서 춤을 춘 것이 아닙니다. 찬송은 무조건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