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목자시며 의로운 가지이신 메시야의 성탄 | 렘 23:1-8 | 문병호 목사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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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4일 주일낮예배 설교  |  성탄주일


참 목자시며 의로운 가지이신
메시야의 성탄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예레미야 23:1-8

(예레미야 23:1-8)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1)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






녹취록



1. 어두운 시대에 복된 소식

     우리가 예레미야 선지자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는 ‘여호와가 함께하시니 힘을 얻어서 바벨론과 싸우자’라고 하는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전한 선지자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에게도 믿음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밤새 울면서 수치 거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은 시대에 거짓 평화를 외치는 자들에게 ‘할 수 없다’고 전한 선지자입니다. 주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 항복하자고 하냐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들을 징계하여 연단시키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감옥에도 많이 갇히고 뜰에도, 뚜껑을 덮은 곳에도 많이 갇히고, 끝내 애굽까지 잡혀가는 등의 고난을 많이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자르는 말, 끊는 말, 깨는 말을 했습니다. 썩지 않고는 생명이 나지 않습니다. 
     본문은 성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반부에는 목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거짓 목자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백성을 기르는 목자라고 하지만 양 떼를 흩어지게 하고 몰아내는 자들입니다. 그런 목자들을 하나님이 폐하시고 새로운 목자를 주시는 것으로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한 의로운 가지를 세운다고 합니다. 그 가지를 세워서 그 가지가 왕이 된다는 비유를 말합니다. 6절은 유다가 구원을 받겠다고 하니 바로 왕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렘 23:6).
     본문은 크게 두 가지 비유—전반부는 목자, 후반부는 의로운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비유가 있는데 곧 선한 목자의 비유,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비유입니다. 요한복음 비유의 독특함은 예수님이 ‘나는 ~이다’라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비유를 요한복음에서 하셨는데 본문 말씀을 통하여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암흑한 시대, 도무지 빛이라고는 없는 이 시대에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저 무너지는 듯 해도 하나님은 무너뜨리지 않고 다시 참 목자를 주시고 의로운 가지를 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거짓 목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목자로 오셨습니다. 본문 1절은 양 떼를 멸하여 흩어지게 하는 목자, 2절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라고 하는데 양 떼를 흩트리고 돌보지 않은 목자에 대해 말합니다. 요한복음 10장의 비유에 보면 삯군 목자가 나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삯군 목자는 돈을 위해 양을 치는 자입니다. 털을 얻고 고기를 얻기 위함입니다. 본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이런 자들이 지나가고 여호와께서 새로운 목자를 주신다고 합니다.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3-4). 오실 목자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에 보면 거짓 목자의 모습을 잘 전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7:10-11). 또한 겉모습은 잘 치장했으나 속은 말라서 죽어 가고 있는 양의 모습을 말합니다. “목자들은 어리석어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하지 못하며 그 모든 양 떼는 흩어졌도다”(렘 10:21). 또한 예레미야에는 백성들의 두 가지 죄를 말하는데 생수의 근원되는 여호와를 버린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 웅덩이는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였습니다. 무엇보다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 평강을 전했습니다. 양들을 그냥 두면 옆의 풀이라도 먹을 텐데 풀이 없는 곳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아닌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정서적으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여 전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예레미야는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 백성은 잃어 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렘 50:6). 


3. 자신을 대속의 어린양으로서 주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양을 주신 선한 목자입니다. 만군의 주이자 하나님이신 분이 종으로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이 모습을 다음처럼 묘사했습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주님을 베드로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으로, 이사야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각각 전했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는 자기 몸을 양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대속하신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되시지 않고서는 우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가 종이 되셔서, 목자가 양이 되신 그 분이 바로 메시야입니다. 본문은 오실 메시야의 예언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것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인침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메시야라는 말은 신약으로는 그리스도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세례 받으러 온 예수님을 만나고 분명히 분별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입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메시야를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마을에 가서 물동이를 던져 놓고 전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전도한 것입니다. ‘
     메시야가 오신 날입니다. 메시야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날이 바로 성탄인 것입니다. 성탄은 메시야가 왔다는 것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 선한 목자, 자기 몸을 양으로 드리는 목자가 유다 지파에서 왕으로, 대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야 사상입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 그 시대는 이두매 족속 헤롯이 왕이었습니다. 유다 지파에서 왕이 나와야 하는데 말입니다. 안나스와 가야바 대제사장은 피를 짜 먹는 악한 자들입니다. 성전의 제물로 장사를 했습니다. 자기 목장을 만들어 상행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계실 때는 선지의 계시가 말라기 이후로 끊어진 시대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도 왕도 제사장도 없는 시대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 참 선지자요 참 제사장이요 참 목자로, 우리의 의로운 가지로 오신 것입니다. 이 목자가 우리에게 한 목자로 오신 것입니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겔 37:24). 목자가 둘이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을 기르는 여러 목자라고 했으나 한 목자입니다. 스가랴서에서도 귀한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슥 11:16-17). 거짓 목자들에게는 징계가 내려진다는 말입니다. 팔이 마르고 오른쪽 눈이 멀어버린다고 합니다. 진정한 목자가 오면 말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 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가 살 곳이 있으리니 그의 양 떼를 눕게 할 것이라”(렘 33:12). 시편 23편이 생각나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눕게 한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눕는 것은 많이 먹어서 편하니 눕는 것입니다. 파리하게 죽어 가는 양 떼에 괜찮다고 말만 하면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양 떼를 눕게 한다는 것은 진정한 꼴을 먹고 진정한 쉼과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목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렘 33:15). 23장에도 나오고 33장에도 나옵니다. 이어 나오는 16절은 “우리의 의”라고 합니다.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렘 33:16). 


4. 메시야: 제사장, 왕, 선지자

     그런데 예루살렘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의로운 가지에 접붙여야 의롭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이슬람이나 유대교나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똑같습니다. 유대교도 예수를 사람 취급하고 이슬람도 선지자 중 하나로 취급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바로 복음이 들어가야 한다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17절에는 영원한 왕이 오신다고 하며, 18절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오실 분은 왕이고 제사장인 것입니다.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메시야인 것입니다. 말씀이자 진리이자 빛인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한 사람이 겸직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실 메시야, 즉 그리스도는 영원한 왕이요 영원한 제사장인 것입니다. 헤롯이 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왕이신 줄 믿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제사장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사장인 줄 믿습니다. 구약시대는 제사장을 통해 기도했으나 신약시대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제를 통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천하디 천한 곳으로 나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에게 왕좌와 규와 홀이 주어지고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광의 왕으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하늘 참 성소에 올라가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언입니다. 이 목자가 오늘 다시 23장의 후반부에 보면 “의로운 가지”라고 선포됩니다.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와 같이 예레미야 본문의 말씀이 메시야를 전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메시야 사상은 메시야가 이를 때가 있다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이른 것입니다. 
     유대교 사람들은 아직 메시야가 오지 않았으나 아직 예레미야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시대, 성취된 시대를 사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시편 119편, 미가서 5장의 예언이 성취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 목자가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꼴을 먹여 주시는 목자가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누워서 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 외에는 우리에게 쉼이 없습니다. 다른 것을 원망하지도 구하지도 마십시오. 


5. 우리를 자기에게 접붙여 주시는 의로운 가지, 예수 그리스도

     때가 되어 의로운 가지를 일으킨다는 말씀은 막연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한복음은 이것을 명확히 합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1-8).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도 잘려야 하고 우리도 잘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잘리면 죽습니다. 잘려서 접이 붙어야 합니다. 세상과 단절하려고 하는 방법은 다르게 없습니다. 세상의 사망의 권세에서 생명을 얻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잘려서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렘 23:7-8). 더 이상 출애굽의 역사가 아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홍해의 물은 세례의 표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예수님의 살의 표입니다. 출애굽은 예표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죽으셔야 하는데 죽으실 수 없는 분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죽으신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로서는 자기 자신을 제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그 죽음을 이기고자 하신 것입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유일한 중보자가 계시니 곧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그가 바로 가지로 오셨습니다. 


6. 결론

     이번 설교와 함께 내일 성탄 예배, 다음 주 연말 및 신년 예배의 설교제목을 생각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내년의 붙잡을 말씀으로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라는 골로새서 2장 19절 말씀을 정해 보았습니다. 의로운 가지는 살아 있으며 가을에 열매를 맺는 가지입니다. 진리는 제자리에 있으면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진리는 제자리에 있으니 열매를 맺습니다. 의로운 가지는 생명의 가지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올곧게 제자리에 있어야 큰 뿌리와 작은 뿌리를 내립니다. 큰 뿌리뿐 아니라 작은 뿌리가 물과 양분을 흡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습니다. 2024년 십자가지기교회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란다는 말씀을 붙잡고 새기기 바랍니다. 성탄은 우리 주님이 우리 목자가 되시고 우리 의로운 가지가 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목자는 생명의 피의 목자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목자입니다. 의로운 가지라 하면 그저 장식이 아닙니다. 잘라서 접붙이는 가지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자기 몸을 인자가 대속물로 드리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