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첫 길, 부모 경외 | 레 19:1-4 | 문병호 목사 | 어버이 주일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20508

조회수 532


성화의 첫 길, 부모 경외 | 레 19:1-4 | 문병호 목사 | 어버이 주일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20508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녹취록>



1. 거룩을 명하시는 분은 거룩하시다


해마다 어버이 주일은 이렇게 어버이의 사랑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이 때가 가장 설교하기 힘든 때입니다. 부모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매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귀하지만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습니다. 스스로 도는 팽이가 없습니다. 누군가 받들고 힘을 들여서 움직이는 것인데 우리는 철이 없을 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돌아서 후회하곤 합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 이제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이 이러하므로 우리가 부모의 가르침이나 사랑을 더 마음에 새기고 보람있게 살게 됩니다. 그것이 또한 효도가 아닌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시면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을 보이십니다. 율법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지 먼저 밝히고 우리를 향한 그의 뜻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을 명령하시고 거룩하시므로 거룩을 명령하시고 의로우시므로 의로움을 명령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거룩하라는 명령은 참으로 귀합니다. 명령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포기하지 않음이요, 기대한다는 뜻이요, 부족하면 이끄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거룩에 대한 명령을 우리가 성경에서 많이 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결국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닮아가게 함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닮아갈 수 없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레 20:7-8). 제가 이 말씀을 보고 크게 붙들렸습니다. 명령하시는 분이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명령하시는 분은 그 분의 어떠하심을 따라 명령하시고 그 분이 친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은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라 명령하시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국은 명령하시는 분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명령에는 어떠하심이 드러나고 그 명령은 친히 이루시는 그것이 바로 언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이로되 약속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그는 네 하나님의 음식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레 21:8). 레위기는 명령만 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을 명하시는 거룩하신 분이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면 명령하심으로 우리가 그 명하시는 은혜에 들어가게 되는 또한 알게 되는 것입니다.



2. 제4계명과 제5계명


본문은 크게 세 가지를 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 그리고 헛된 것들에게 향하지 말며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곧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별도로 있는 것 같아도 다 연결되어 있는 한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제 4계명입니다. 이것은 사실 시내산에서 처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3). 안식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쉬는 날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 품에 머무는 것이 안식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기도하고 예배하고 말씀 드리는 날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품에 쉬는 것입니다. 그 완성이 오늘날 부활입니다. 부활의 날에 새 생명을 주시므로 품을 떠났던 사람들이 품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요,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생명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주님의 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은 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창세기에 또 하나의 규례가 주어지는데 제 5계명, 곧 부모에 대한 규례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규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 명령이 창세기에 주어집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부부에 대한 명령이 주어진 후 자녀와 부모, 즉 효도에 대한 계명이 주어집니다. 결혼 명령이 우선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품에 들지 않고 죽은 피조물, 유한한 것에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과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한 가지 내용과 같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계명, 예배의 계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계명과 함께 부모에 대한 경외, 공경의 계명으로 성화의 명령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쫓아 거룩하게 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 사물에 깃들지 말고 하나님 품에 깃들라는 것, 그리고 부모 공경의 계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계명은 우상숭배 계명을 포괄하는 큰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그 형상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거룩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전쟁이나 큰 일을 앞두고 안식일 준수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본질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지어 안식하게 함은 바로 우리의 피조물 본질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 경외의 게명이 함께 주어지는데, 크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으로 크게 주어진 두 강령에서 전자의 핵심은 안식일 준수와 후자의 핵심은 부모 경외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멀리하는 자가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 두 계명은 영원한 규례입니다. 시내산의 율법이 부여되기 전, 창세기, 타락 전의 율법입니다. 영원한 법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본질이 되는 법입니다.



3. 이스라엘


본문에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온 회중의 표를 의미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불린 것이 '얍복강에서'입니다.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브니엘, 그리고 여호와와 겨루어 이겼다는 이스라엘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기도하면 말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이 이길 수 없습니다.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이름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움켜쥐고 장자권을 가지려는 인간적인 본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힘과 꾀를 믿고 아비를 속이고 형을 속인 것 등이 일거에 깨진 것이 얍복강의 일입니다. 움켜쥐는 것이 아닌 것을, 힘줄을 꺾어 말씀하시고 기도하고 의지하면 말씀대로 살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처럼 거룩하라는 명령을 받을 자는 사실 인간 중에 없습니다. 바로 은혜, 언약의 약속을 베푸시겠다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함이라. 거룩은 바로 구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구별해서 드림으로 하나님께 참여하는 것이 거룩의 개념입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림으로 그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함을 닮아가는 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품을 내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끝내 비추는 것이지 내 자질로 설 수 없습니다. 내 자질로는 우리가 견딜 수 없습니다. 끝내 가룟 유다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는 자기 의가 많았던 자입니다. 그리고 그 자기 의를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자신의 품에 편을 내 주는 것입니다. 비출 때 거룩함이 있지 내가 스스로 거룩하거나 누구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절 본문은 말합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환도뼈를 쳐서 힘줄을 꺾으시고 이겼다고 해주신 것, 그 이름을 가진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이 택함 받은 백성 모두에게 주신 거룩의 명령이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거룩을 명령하시는 하나님이 거룩을 이루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자리를 내어 우리로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납작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야곱의 씨름입니다. 바짝 붙어 있는 것입니다. 본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말씀 가운데 다른 말씀을 봐야 합니다. 2절 없이 3절을 보면 공로주의, 자질주의가 됩니다. 성경은 항상 은혜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고 그 이후 명령이 있습니다.



4. 부모를 경외하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 경외라는 말은 사실상 하나님께 씁니다. 경외라는 말은 두려워하는 가운데 이끌림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드리러 가는 것도 하나님이 이끄셔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외라는 단어를 부모에게 씁니다. 경외라는 단어는 자주 안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야레라고 하는데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어떤 것인지요. 단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깜짝 놀라는 두려움입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 경외라는 그런 영역입니다. 경외라는 것은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부모와 자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사업에서 경외한다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영어로 piety라는 단어가 경건도 되고 효도도 됩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이라는 말이 부모 앞에 효도라는 말도 된다는 것은 곧 부모와의 관계가 하나님이 주신 관계를 의미합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이요 태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부모를 세우면 경외라는 말을 쓸 수 없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이 은혜로 있게 한 분이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부모를 공경하라, 즉 경외를 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부모도 부모입니다. 그것이 5계명입니다. 부모는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믿는 부모든 믿지 않는 부모든 그렇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엡 6:1-2).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주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붙들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하라고 한 것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 공경과 하나님 섬기는 것이 상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부모에게 순종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십니다. 부모에게 순종한다고 교회를 갈 수 없다는 것은 전제 자체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공경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든 길을 여십니다. 그 길을 우리가 다 알 수 없으나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는 말씀을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주신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식이 헤아려서 부모를 오라 가라 하면 안 됩니다. 옛날 부모는 유식하고 요새 부모는 무식해서 부모를 오라가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부모는 더 유식해서 부모 말 들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는 바깥에 나가 보면 자식이 부모를 좌지우지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부르면 백 번을 불러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를 부르면 일 초만에 가는데 말입니다. 부모에 대한 경외의 명령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저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부모라는 것과 그 가운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입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원어로 짐이 되다, 무겁다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부모를 업으라는 말입니다. 부모를 그저 공경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로 삼고 짐으로 엄중하게 등에 메라는 의미입니다.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를 떠나여 가정을 이룹니다. 그런데 부모를 떠나는 것은 버려두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업으라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나를 업어 키웠으면 이제는 내가 부모를 업어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의미입니다.



5. 약속이 있는 첫 계명


자연은 묘합니다. 잎이 어릴 때는 그걸 먹을 만한 애벌레가 있고, 애벌레가 자라면 잎도 진해집니다. 자녀가 업을만 하면 결혼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그 때가 결혼의 때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업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자녀 교육이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성경대로 하는 교육입니다. 한국은 끝까지 고기를 부쳐줍니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그런데 왜 또 한국이 이렇게 발전했는지 또 의아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이런 문화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만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잘 살면 부모에게 조금 더 잘하면 안좋겠나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공경, 부모를 업으라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6장 2절 역시 공경이라는 말이 쓰이는데, 원어로 보면 부모의 가치를 높이고 존경하고 공경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에게 조금 더 순수한 가치를 두고 강의 수원이 되는 옹달샘처럼 근원이 되는 것으로 높이라는 의미입니다. 따질 사람은 세상에 많습니다. 그러나 예 할 사람은 부모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부모에게 예 하십시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이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펴 주십니다. 부모에게 죽는 시늉이라도 하라는 우리 말처럼 부모 공경 계명은 특별한 계명 입니다. 세상에서는 시시비비를 따지지만 부모 계명은 무조건 따르라는 것입니다. 내 신이 조금 헐겁고 옷이 허름하더라도 부모는 잘 입히라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무얼 입더라도 빛이 납니다. 양재천에 가면 허름하게 입고 부모를 휠체어나 카트에 태우고 허겁지겁 모시는 사람을 봅니다. 그런 부모 모시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아브라함에게 하신 세 약속, 후손의 복, 땅의 복, 복의 근원이 되는 복, 이 세 가지고 부모 공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유일하게 제 5계명에 대해서만 이렇게 복이 덧붙여 있습니다.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3). 부모 효도에 대한 복인 것입니다. 그리심산의 축복과 에발산의 저주에서 그리심산의 복이 전부 부모 공경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이 5계명을 말씀한 것입니다. 한국의 성도들 모두 효자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게 전도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구약에 보면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돌로 치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도 부모에게 공경하지 않는 자들은 금수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개혁 교회가 참 부모 효도를 강조합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같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발산의 열두 저주가 나옵니다. 신명기 27장인데, 첫번째 저주는 우상을 만드는 것에 대해, 두 번째 저주는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것에 대해 주어집니다. 저주는 사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에서 내침을 받는 것이 저주인데 이것은 죽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6. 결론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청종은 듣고 따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부모는 우리의 기쁨의 근원입니다. 부모님 계실 때 잘 하십시오. 뭘 하나 사도 그때 즐거운 것입니다. 저는 줄 사람이 없으니 뭘 사도 재미가 없습니다. 부모님 계시니 길 가다 나물이라도 하나 사서 무쳐드리는 것입니다. 부모가 계시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래서 무조건 부모에게 잘 해보자, 그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라는 것, 그리고 그러면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리라는 것을 우리 교회는 모두 마음에 새겨 보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