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녹취록>
1. 신령한 감사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살아가는 모든 것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신령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신령하다, 혹은 영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예배,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고 로마서와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비록 부족한 우리가 노래하지만 찬미는 신령한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도 신령한 감사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감사하나, 우리가 하는 것은 신령하고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감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구원의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고 천국 백성되어 이 땅에서 신령한 꼴을 먹는 가운데서의 감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령한 감사의 영역은 항상 성도들에게 따로 특별히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 이치로 보면 우리가 못 미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보다 덜 가지고 덜 누릴 수도 있고 지위가 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언약의 백성으로서 누리는 감사는 신령합니다. 옥중에서도 찬송하며 주님의 명령을 붙들고 땅끝까지라도 가는 것입니다. 시편 후반부는 거의 다 찬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편 118편은 첫 절과 마지막 절을 감사의 찬미로 노래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날마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합니다. 루터의 말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악인이자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살아갈 때 금방 천국의 기쁨을 맛보지만 곧 아픔과 슬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듭난 백성이지만 육체적인 소욕이 남아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보시고 온전하고 선하다 보시는 그 삶을 감사의 영역에서 천국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2. 감사와 소망
소망이 있으면 우리의 삶이 헛되지 않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의 눈은 빛이 납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눈에 빛이 없습니다. 소망은 감사가 있는 자에게 있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그저 주어지고 더 많이 쉬고 자고 할 때 주어지는 편안함이 아닙니다. 성도의 감사는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먹이를 찾듯 말입니다. 감사가 있으면 소망이 있고 소망이 있으면 바라게 되고 그것이 믿음이요, 그럴 때 기도하게 되고 그 가운데 신령한 만나, 꼴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3. 감사와 신령한 기쁨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닌, 내가 무엇을 바라고 감사하고 사느냐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의 절대치가 아닌 그때 그때 우리가 하는 것이 주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짐을 아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 안에서’라는 말 없이 기뻐하라고 하면 우리에게 부담이자 억지요, 억압과 강요입니다. 육체가 아파 인상을 찡그릴 때 사람들은 두번은 이해해도 세 번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혼이 아픈 사람은 더 인상을 찡그립니다. 그러나 본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러므로 고백이요 믿음, 감사입니다. 억지나 강요나 부담이 아닙니다. 주님이 다 이루셨으니 주 안에 있으면 기뻐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주 안에서 이루는 기쁨이 있으면 아무도 우리에게서 기쁨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금은보화에 비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기쁨, 어떻게 보면 모든 보화를 팔아 그것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령한 기쁨입니다. 신령한 감사, 기쁨, 은혜, 예배, 삶,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함을 받고 모든 것을 누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향을 내듯 바로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 가운데서 그가 이루신 것을 만민 중에 알게 하는 것입니다. —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시 105:1). 우리의 감사의 조건은 본문 4절의 말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저에게 기뻐하라고 한다면 저는 그것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주 안에서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를 한 번 더 말하는 것입니다. 주가 다 이루신 것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는 데살로니가전서에도 동일하게 나옵니다.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은혜를 기뻐하는 것이므로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룬 것을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주님이 이룬 것을 주 안에서 기뻐하기 때문에 감사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는 것에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함께 따라옵니다. 내가 이룬 것을 기뻐한다면 감사보다는 교만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주가 이루신 것, 주의 은혜로 기뻐한다면 즉시 감사가 들어옵니다. 그것이 균형입니다. 그것이 고상함이며 우리 인격의 수준입니다.
2) 감사와 찬양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한다면 판단이 들어오고 무엇을 받아야 하니 인상이 찡그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하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전부 주님이 주신 것이므로 찬양의 도구가 되고 여호와의 증인이 됩니다. 최근 몇번 나눈 것처럼 천국에서 신령한 삶을 사는데 신령한 몸이라는 것은 전적인 은혜로 그것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이자 몸입니다. 그러니 천국에서는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는 덜 감사하니 덜 신령하고 덜 기뻐하고 덜 찬미합니다. 내가 전적인 은혜와 감사의 기쁨을 증거하고 드러낸다면 그것이 신령한 것입니다. 나의 노력과 성장, 모든 것은 그 밑에 있는 것입니다.
3) 감사와 기도
그러니 항상 기뻐하면 여호와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고 시편의 말씀처럼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만민 가운데 선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뻐함과 범사에 감사함과 기도가 따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을 읽을 때 그 뒷 부분은 따로 떼어놓고 잊어버립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를 강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내셔서 아들을 주신 이가 그와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데살로니가전서와 로마서의 이 두 말씀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4)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하라
우리가 좋은 잠자리에서 자도 기쁨과 감사가 없다면 허무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처럼 믿음으로 여호와를 송축한다면 감옥 가운데 있을지라도 가장 즐거운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하루를 사는 가운데 신령한 영역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육신이 바쁘고 분초를 아껴 사는 것이 현대인의 삶입니다. 올 한 해도 얼마나 많이 바쁘게 지내셨습니까? 그러나 하루 하루의 삶 가운데 신령한 영역의 기쁨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군데군데 나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찢고 흔들 때 나에게 은밀히 들어오는 기쁨입니다.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이므로 항상,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두 신상에 절할 때 죽게 되었다고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창문을 열고 감사하는 담대함이 다니엘에게 생깁니다. 우리가 투명하게 하루에 몇분이라도 투명하게 신령한 감사, 신령한 기쁨, 신령한 하나님 앞에서의 간구,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5) 은혜에 감사하라
바울은 즐거워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만큼 고난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즐거워했습니다. —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롬 4:6).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룬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2). 또한 말합니다. —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 아마 이 즐거움이 없으면 사도 바울은 주의 일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낙천주의가 아닙니다. 은혜의 감사입니다. 은혜에 대한 전적 감사가 있으면 어디선가 우리 안에 즐거움이 생기고 소망이 생깁니다. 아무 일이 없어도 하루가 소망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소망이 넘치는 수준으로는 안됩니다. 절대적 소망, 아무 일이 없어도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 일이 없어도 불평하고, 겨울되면 봄 걱정하고, 봄 되면 여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렇게 소망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정죄하는 선포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헵시바'라 부른다고 말합니다(사 62:4). 헵비사는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에 대해 혼이 나지만, 기쁨을 그들에게 둔다는 것입니다. '쁄라'는 결혼한 여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을 기쁨의 땅으로 삼고 신부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6) 아픔 후에 감사하라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합니다. 정말 묘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배앓이라도 하고 나면 그것이 나은 후 이상한 평화가 오고 가장 곤히 잠을 잡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 아픔 후 감사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은 압니다. 아팠다가 낫는다고 정상인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정상인에게는 없는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몸이 아팠다가 회복되면 내 몸이 평화롭고 안온하고 잠도 깊이 잘 때 감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파 보니 건강한 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한다고 합니다.
4. 감사와 주님 자랑
감사는 주님을 또한 자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약한 것, 근심 걱정을 버리려면 주님을 자랑하면 됩니다. 내 자랑하면 불평이 시작됩니다. 화살이 날아옵니다. 모든 것이 내 자랑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을 자랑하면 됩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여기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모든 것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이런 자랑은 천국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세상 자랑은 다 자랑하는 순간 땅에서 소멸합니다. 그리스도를 자랑해 보십시오. 내가 문서를 잘 썼으면, 주님이 하셨다고 주님을 자랑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더 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 자고함이 아닌 평화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옮긴지 일 년이 되가는데 주님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목사님들께 말씀했습니다. 목수가 정말 놀랍다고, 얼마나 목재를 저렇게 반듯하게 펴는지 말입니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추수감사의 때에 올 한 해의 삶을 주님이 다 하셨다고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오곡백과, 온갖 귀한 것은 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면 마음에 화평이 생깁니다.
5. 감사와 주님께 영광
그리고 주님께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주님을 감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즉 기쁨과 그리스도의 자랑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깃든다고 정리하고자 합니다.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강단 앞에 곡식을 두고 예배하는 것이 아무 일이 아닌 것 같으나 전쟁 중에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처럼 산불이 나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평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 “너희가 바로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기도하는 자입니다. 내가 했다고 하면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여기에도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이 다 하셨고, 우리는 이에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함은 그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도와 간구는 우리의 표현이고 우리의 본질은 감사함입니다. 저는 감사함이 인간의 수준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천재고 재벌이라도 불평하는 사람은 저 밑의 수준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최고 수준입니다. 감사 안에는 다 들어 있습니다. 인격과 품위와 고상함이 들어있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기뻐할 것이요, 주님을 자랑할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입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한 해 동안 많은 것을 누렸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나누고 있습니다.
6. 하나님을 기억하라
—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3). 여기에 본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안 하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 감사를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힘들도 어렵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감사합니다. 이 감사가 우리 안에 깃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은 항상 감사를 노래해야 합니다. 감사는 그러므로 가장 빈번한 시편의 주제가 됩니다. 다윗이 쫓겨다니면서도 감사의 시를 가장 많이 지은 것입니다. 소도 나귀도 임자를 알고 주인을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나를 먹이느냐 말입니다. 꼴과 음료와 신령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 감사와 관용
이것이 있으면 우리가 관용도 하게 됩니다. 본문 5절의 말씀입니다. 감사가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판단입니다. 나의 신앙생활의 시금석은 감사입니다. 그것으로 나를 시험해 보면 됩니다. 신령한 감사입니다. 여호와께서 다 행하셨다는 고백입니다.
8. 결론
우리 성도님들께서 일 년, 한 달, 한 주의 삶이 이 신령한 질서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고 구하셨다는 감사 위에 있기를 원합니다. 다른 것, 하부적인 것에 매이지 말고, 감옥에 가서라도 감사할 수 있고, 그래서 신령한 기쁨과 자랑과 송영이 있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1118][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감사의 원리 (빌 4:4-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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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
1. 신령한 감사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살아가는 모든 것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신령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신령하다, 혹은 영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예배,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고 로마서와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비록 부족한 우리가 노래하지만 찬미는 신령한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도 신령한 감사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감사하나, 우리가 하는 것은 신령하고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감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구원의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고 천국 백성되어 이 땅에서 신령한 꼴을 먹는 가운데서의 감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령한 감사의 영역은 항상 성도들에게 따로 특별히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 이치로 보면 우리가 못 미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보다 덜 가지고 덜 누릴 수도 있고 지위가 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언약의 백성으로서 누리는 감사는 신령합니다.
옥중에서도 찬송하며 주님의 명령을 붙들고 땅끝까지라도 가는 것입니다. 시편 후반부는 거의 다 찬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편 118편은 첫 절과 마지막 절을 감사의 찬미로 노래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날마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합니다. 루터의 말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악인이자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살아갈 때 금방 천국의 기쁨을 맛보지만 곧 아픔과 슬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듭난 백성이지만 육체적인 소욕이 남아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보시고 온전하고 선하다 보시는 그 삶을 감사의 영역에서 천국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2. 감사와 소망
소망이 있으면 우리의 삶이 헛되지 않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의 눈은 빛이 납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눈에 빛이 없습니다. 소망은 감사가 있는 자에게 있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그저 주어지고 더 많이 쉬고 자고 할 때 주어지는 편안함이 아닙니다. 성도의 감사는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먹이를 찾듯 말입니다. 감사가 있으면 소망이 있고 소망이 있으면 바라게 되고 그것이 믿음이요, 그럴 때 기도하게 되고 그 가운데 신령한 만나, 꼴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3. 감사와 신령한 기쁨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닌, 내가 무엇을 바라고 감사하고 사느냐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의 절대치가 아닌 그때 그때 우리가 하는 것이 주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짐을 아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 안에서’라는 말 없이 기뻐하라고 하면 우리에게 부담이자 억지요, 억압과 강요입니다. 육체가 아파 인상을 찡그릴 때 사람들은 두번은 이해해도 세 번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혼이 아픈 사람은 더 인상을 찡그립니다. 그러나 본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러므로 고백이요 믿음, 감사입니다. 억지나 강요나 부담이 아닙니다. 주님이 다 이루셨으니 주 안에 있으면 기뻐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주 안에서 이루는 기쁨이 있으면 아무도 우리에게서 기쁨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금은보화에 비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기쁨, 어떻게 보면 모든 보화를 팔아 그것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령한 기쁨입니다.
신령한 감사, 기쁨, 은혜, 예배, 삶,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함을 받고 모든 것을 누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향을 내듯 바로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 가운데서 그가 이루신 것을 만민 중에 알게 하는 것입니다. —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시 105:1).
우리의 감사의 조건은 본문 4절의 말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저에게 기뻐하라고 한다면 저는 그것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주 안에서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를 한 번 더 말하는 것입니다. 주가 다 이루신 것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는 데살로니가전서에도 동일하게 나옵니다.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은혜를 기뻐하는 것이므로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룬 것을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주님이 이룬 것을 주 안에서 기뻐하기 때문에 감사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는 것에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함께 따라옵니다. 내가 이룬 것을 기뻐한다면 감사보다는 교만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주가 이루신 것, 주의 은혜로 기뻐한다면 즉시 감사가 들어옵니다. 그것이 균형입니다. 그것이 고상함이며 우리 인격의 수준입니다.
2) 감사와 찬양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한다면 판단이 들어오고 무엇을 받아야 하니 인상이 찡그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하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전부 주님이 주신 것이므로 찬양의 도구가 되고 여호와의 증인이 됩니다. 최근 몇번 나눈 것처럼 천국에서 신령한 삶을 사는데 신령한 몸이라는 것은 전적인 은혜로 그것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이자 몸입니다. 그러니 천국에서는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는 덜 감사하니 덜 신령하고 덜 기뻐하고 덜 찬미합니다. 내가 전적인 은혜와 감사의 기쁨을 증거하고 드러낸다면 그것이 신령한 것입니다. 나의 노력과 성장, 모든 것은 그 밑에 있는 것입니다.
3) 감사와 기도
그러니 항상 기뻐하면 여호와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고 시편의 말씀처럼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만민 가운데 선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뻐함과 범사에 감사함과 기도가 따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을 읽을 때 그 뒷 부분은 따로 떼어놓고 잊어버립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를 강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내셔서 아들을 주신 이가 그와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데살로니가전서와 로마서의 이 두 말씀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4)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하라
우리가 좋은 잠자리에서 자도 기쁨과 감사가 없다면 허무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처럼 믿음으로 여호와를 송축한다면 감옥 가운데 있을지라도 가장 즐거운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하루를 사는 가운데 신령한 영역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육신이 바쁘고 분초를 아껴 사는 것이 현대인의 삶입니다. 올 한 해도 얼마나 많이 바쁘게 지내셨습니까? 그러나 하루 하루의 삶 가운데 신령한 영역의 기쁨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군데군데 나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찢고 흔들 때 나에게 은밀히 들어오는 기쁨입니다.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이므로 항상,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두 신상에 절할 때 죽게 되었다고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창문을 열고 감사하는 담대함이 다니엘에게 생깁니다. 우리가 투명하게 하루에 몇분이라도 투명하게 신령한 감사, 신령한 기쁨, 신령한 하나님 앞에서의 간구,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5) 은혜에 감사하라
바울은 즐거워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만큼 고난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즐거워했습니다. —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롬 4:6).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룬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2). 또한 말합니다. —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 아마 이 즐거움이 없으면 사도 바울은 주의 일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낙천주의가 아닙니다. 은혜의 감사입니다.
은혜에 대한 전적 감사가 있으면 어디선가 우리 안에 즐거움이 생기고 소망이 생깁니다. 아무 일이 없어도 하루가 소망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소망이 넘치는 수준으로는 안됩니다. 절대적 소망, 아무 일이 없어도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 일이 없어도 불평하고, 겨울되면 봄 걱정하고, 봄 되면 여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렇게 소망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정죄하는 선포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헵시바'라 부른다고 말합니다(사 62:4). 헵비사는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에 대해 혼이 나지만, 기쁨을 그들에게 둔다는 것입니다. '쁄라'는 결혼한 여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을 기쁨의 땅으로 삼고 신부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6) 아픔 후에 감사하라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합니다. 정말 묘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배앓이라도 하고 나면 그것이 나은 후 이상한 평화가 오고 가장 곤히 잠을 잡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 아픔 후 감사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은 압니다. 아팠다가 낫는다고 정상인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정상인에게는 없는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몸이 아팠다가 회복되면 내 몸이 평화롭고 안온하고 잠도 깊이 잘 때 감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파 보니 건강한 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한다고 합니다.
4. 감사와 주님 자랑
감사는 주님을 또한 자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약한 것, 근심 걱정을 버리려면 주님을 자랑하면 됩니다. 내 자랑하면 불평이 시작됩니다. 화살이 날아옵니다. 모든 것이 내 자랑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을 자랑하면 됩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여기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모든 것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이런 자랑은 천국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세상 자랑은 다 자랑하는 순간 땅에서 소멸합니다. 그리스도를 자랑해 보십시오. 내가 문서를 잘 썼으면, 주님이 하셨다고 주님을 자랑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더 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 자고함이 아닌 평화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옮긴지 일 년이 되가는데 주님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목사님들께 말씀했습니다. 목수가 정말 놀랍다고, 얼마나 목재를 저렇게 반듯하게 펴는지 말입니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추수감사의 때에 올 한 해의 삶을 주님이 다 하셨다고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오곡백과, 온갖 귀한 것은 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면 마음에 화평이 생깁니다.
5. 감사와 주님께 영광
그리고 주님께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주님을 감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즉 기쁨과 그리스도의 자랑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깃든다고 정리하고자 합니다.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강단 앞에 곡식을 두고 예배하는 것이 아무 일이 아닌 것 같으나 전쟁 중에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처럼 산불이 나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평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 “너희가 바로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기도하는 자입니다. 내가 했다고 하면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여기에도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이 다 하셨고, 우리는 이에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함은 그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도와 간구는 우리의 표현이고 우리의 본질은 감사함입니다. 저는 감사함이 인간의 수준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천재고 재벌이라도 불평하는 사람은 저 밑의 수준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최고 수준입니다. 감사 안에는 다 들어 있습니다. 인격과 품위와 고상함이 들어있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기뻐할 것이요, 주님을 자랑할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입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한 해 동안 많은 것을 누렸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나누고 있습니다.
6. 하나님을 기억하라
—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3). 여기에 본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안 하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 감사를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힘들도 어렵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감사합니다. 이 감사가 우리 안에 깃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은 항상 감사를 노래해야 합니다. 감사는 그러므로 가장 빈번한 시편의 주제가 됩니다. 다윗이 쫓겨다니면서도 감사의 시를 가장 많이 지은 것입니다. 소도 나귀도 임자를 알고 주인을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나를 먹이느냐 말입니다. 꼴과 음료와 신령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 감사와 관용
이것이 있으면 우리가 관용도 하게 됩니다. 본문 5절의 말씀입니다. 감사가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판단입니다. 나의 신앙생활의 시금석은 감사입니다. 그것으로 나를 시험해 보면 됩니다. 신령한 감사입니다. 여호와께서 다 행하셨다는 고백입니다.
8. 결론
우리 성도님들께서 일 년, 한 달, 한 주의 삶이 이 신령한 질서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고 구하셨다는 감사 위에 있기를 원합니다. 다른 것, 하부적인 것에 매이지 말고, 감옥에 가서라도 감사할 수 있고, 그래서 신령한 기쁨과 자랑과 송영이 있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