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1][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부활주일] 부활의 절대 가치 (고전 15:12-19)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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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부활주일] 부활의 절대 가치 (고전 15:12-19)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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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 15: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고전 15: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고전 15: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 15: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 15: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블쌍한 자이리라



<녹취록>



1. 성경대로 부활하심


1) 구약의 말씀을 따른 부활


본문 말씀은 짧지는 않으나 동일한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씀이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다와 거의 같은 말씀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는 말씀도 자주 나옵니다. “...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행 3:15) 그리고 12, 13, 15, 16, 17절에 보면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예수의 부활도 믿지 않을 것이요, 역으로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도 없다고 말합니다. 마치 죽은 자의 부활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났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만일'이라는 말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의미입니다. 부활은 이미 구약 때부터 있어온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부활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예수의 부활도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고전 15:1)이라고 하며 부활을 복음이라고 하고, 예수님이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셨다고 하는데, 신약시대에 "성경대로"라는 것은 구약을 의미합니다. 이 부활 신앙이 없으면 예수의 부활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이미 구약부터 있었는데 다만 부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은 예수님에게서입니다.
구약 백성들은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그가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하실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의 메시아 사상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많이 예언하셨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요나의 표적입니다. 많은 표적을 구하나 다른 표적은 다 지나가는 구름과 같은 것이요 표적은 요나의 표적 하나밖에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다른 표적도 귀합니다만 영생을 누리는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입만 열면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표적은 하나밖에 없으니 요나의 표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사흘만에 다시 토해져서 살아난 것입니다. 구약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예표된 것이요, 히브리서에서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신앙을 정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 믿고 드린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부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에 대해 세 번이나 크게 예언하셨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말씀을 나눴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무리들에게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우상이 가득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그 고백 위에 고백을 세우리라고 하시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언하십니다. 죽고 부활하셔야 교회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잘 몰라서 만류하고 혼나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실 때입니다. 원칙적으로는 높은 산으로만 표현되는 이 산에서 죽음과 부활을 두 번째 예언하십니다. 첫 번째 예언에서 제자가 그리 마옵소서라고 하다가 혼이 나니 제자들이 이번에는 하지 말라고는 안하고 근심합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는데 제자들은 부활이 아닌 죽음만 신경쓰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입니다.


3) 죽어야 다시 사는 도


이처럼 구약과 신약에 따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잘 믿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 사라지는 예수가 영 떠난다고 생각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시체를 찾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아닌 죽음에 속한 것에만 매여 있는 것입니다. 죽어야 산다는 그 도인데, 우리가 죽는 것을 죽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죽어야 사는 도를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썩지 않으면 열매가 맺지 아니한다는 말씀을 듣고도 썩는 과정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근심하는 것입니다.



2. 거듭남의 열매인 부활


거듭나야 다시 사는데 거듭나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요 다시 태어나는 것은 믿음으로 인침을 받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어 첫 열매를 보고 삶 가운데 계속 열매를 맺어 가는데, 마지막 열매는 천국에 부활된 신령한 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약의 유월절이 생명을 부여하는 사건이라면 맥추절과 오순절은 이어지는 열매를 보는 것이요, 수장절은 완성된 열매를 곳간에 들이는 것입니다. 천국 창고에 열매를 들이는 것이 수장절, 초막절입니다. 그 알곡을 드리는 모습이 우리 부활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부활된 모습으로, 신령한 몸으로 천국 창고, 곳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인침은 이 땅에서 구원을 받아 얻습니다. 거룩해집니다. 그러나 거룩함의 완성은 부활입니다. 우리도 예수같이 부활의 열매를 맺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와 물었을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그 완성이 바로 부활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는 그 첫 열매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3.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오늘 20절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합니다. 첫 열매가 되었다는 것은 다음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 다음 열매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두 번째 열매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그렇습니다. 첫 열매는 예수님이요 나머지는 모두 둘째 열매입니다. 부활은 주님 전에도 후에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첫 열매입니다. 부활은 죽었다 살아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죽었다 다시 죽는 나사로의 죽음은 부활이라 하지 않습니다. 엘리야와 에녹처럼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의 사라짐은 예표라 할 수 있을 뿐 부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하셨고 그 첫째 부활을 쫓아 우리도 둘째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부활하는데, 의인의 부활, 생명의 부활, 영광스러운 부활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집니다.



4.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부활


1)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삶


부활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 아담의 죄로 세상에 죄가 들어와 모든 인류가 아담과 함께 죽었습니다. 나는 죽고 죄가 내 안에 살게 된 것입니다. 죄가 내 안에서 지배합니다. 이것이 인류의 비참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첫 사람 아담과 부패하여 함께 죽었는데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내 안의 죄가 죽고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죄가 나를 더이상 지배하지 못합니다. 죄가 나를 끝없이 유혹하지만 이제 나는 죄를 싫어합니다. 우리가 향수니 옛날 것 좋다고 할 때 말은 그렇지 죄에 대한 추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가 죽고 의가 왕노릇하여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 이것입니다. 내 안에서 죄가 죽고 의와 함께 살아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자가 복되고 하나님이 인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내 죄가 죽습니다. 다시는 종노릇 하지 아니합니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 6:7).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더 이상 죄가 왕 노릇하거나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의롭게 됩니다. 이 인침이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자녀 됨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죽고 다시 살아난 우리는 부활의 몸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부활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내가 죽고 죄가 살고 죄가 왕 노릇하여 죄의 종이 되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이 죽어 죄가 죽고 내가 살았는데, 이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인침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참여하여 부활의 둘째 열매가 되는 삶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부활의 몸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 6:8).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5).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우리가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좋다고 생각하는 것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와 가까운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그리워하는 것, 추구하는 것, 동경하는 것조차 내 욕심이거나 죄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옛 것을 가지고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죽는 자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다시 사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고후 4:14). 우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는데 그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살리신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죽인 사람을 살립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무한하고 극진하신 긍휼과 자비로 패역하여 그 아들을 죽인 그 인류를 아들의 값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첫 열매요 우리는 "후속 열매"입니다. 선배님들이 쓴 말입니다. 이 말씀만 붙들면 감사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죄인 중의 괴수인데 그 하나님이 오히려 예수와 함께 나를 살리사 그 첫 열매에 이어 나도 후속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열매가 영적인 열매입니다.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는 열매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열매입니다. 포도나무인 주님께 붙어 맺는 열매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부활의 열매가 영생인 것입니다.


2) 죽음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러므로 십자가의 도는 부활의 도입니다. 십자가가 생명의 지성소, 살 길이 되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되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죽음과 패배의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인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을 깨뜨리자 참 빛이 터져 나옵니다. 기드온이 항아리에 불을 숨겼는데 그것을 깨뜨리니 횃불이 터져 나와 적이 자중지란으로 망합니다. 그들은 죽인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의 그 상한 몸으로 빛이 쏟아져 나와 지진이 일어나고 죽은 자의 무덤이 깨지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 빛이 나오니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집니다. 우리가 레위기에서도 보지만 그 휘장은 칼로도 자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내리니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잘립니다. 우리가 지성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대제사장도 일년에 한번 두려워하여 들어가는 그곳을 우리는 담대하게 새로운 살 길로 들어갑니다.


3) 부활 소망


죽었다가 살아나서 다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되 더이상 죽음에 속하지 않는 것이 부활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되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 것이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필히 부활로 나아갑니다. 거듭난 삶을 살게 됨은 부활의 열매를 맺게 되는 새로운 살 길로 나아가서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 15:23). 부활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죄함 가운데 죽으심으로써 이제는 그 죄를 다 이기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죽음의 값을 치렀으니 예수님은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흔히 이 구절을 난해구절로 여기는데,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이 땅에서 부활을 누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 우리에게는 죽음이 다시 없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이 나를 다시 살립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3-54).

그러므로 성찬식에서 우리는 죽음뿐 아니라 부활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부활절에 거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더 맞습니다. 성찬은 지금 계신 예수님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참여합니다만 그 죽음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성찬 때 그저 쓸쓸하고 막연한 죽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부활하시게 하신다는 그 믿음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이 땅에서 먹고 마시면 우리도 마지막 날에 부활체로 영원히 다시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영화롭고 신령한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 더이상 욕됨이나 부끄러움이나 약함이나 썩을 것이 없습니다. 약한 것을 심어 강한 것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욕된 것을 심어 영광스러운 것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신령한 몸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인생이 헛된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인생은 재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활의 찬송을 올립니다. 부활의 그 소망을 가지고 다시 오시리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팔과 호령소리 가운데 올라가신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 속하지 않는 흠없는 어린 양입니다. 예수님은 흠없는 어린 양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도 부활을 주십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참 사람이자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여전히 참 하나님이시로되 부활의 몸으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육체는 죽일지라도 영혼은 우리조차도 스스로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5. 결론: 부활 신앙으로 살며 부활의 증인이 되라


부활의 신앙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부인합니다. 이 부활의 신앙이 있으므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스가랴서, 미가서, 시편에서 예언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아들로 오셔야 하는데 그저 랍비를 하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물로 주셔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구약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들과 같이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요, 고린도교회에도 부활이 없다는 생각이 팽배하니 바울이 복음의 신앙을 선포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여자들에게 보이고 제자들에게 보이고 오백 형제에게 보이고 야고보에게 보이고 만삭되지 못한 자와 같은 사도에게 보이셨습니다. 이들이 모두 부활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갑니다. 죽은 듯 방불하나 다시 잉태한 사라와 같이 우리는 날마다 죽노라 하지만 그러면서도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되면 날마다 삽니다. 자꾸 이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막연히 부활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막막할 때 절망하는 것이 아닌 부활의 빛을 바라봐야 합니다. 질그릇 같이 깨뜨리면 깨지나, 그 속에 횃불이 들어있는 자가 우리 성도들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의 씨앗이 있습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다 끝난 듯 하나 하나님에게서는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예언된 대로 죽으시고 예언된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도가 없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믿음도 헛것이요 우리가 다 거짓 증언으로 발견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도 그렇게 부활하리라는 부활의 확신도, 우리가 전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도 헛것입니다. 부활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그렇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복음도, 믿음도, 신앙고백도 없고 전도와 선교도 없습니다. 우리는 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문화 선교도 좋지만 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초대교회지만 벌써 부활에 대한 믿음이 식어갑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활신앙은 미래성과 소급성이 있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앞으로의 삶이 헛됩니다. 그리고 부활이 없으면 이전에 죽은 자들도 헛됩니다. 본문 17절, 18절, 19절입니다. 초대교회에 보면 부활의 복음이 전해질 때, 우리가 예수를 죽이고 하나님이 그 예수를 살리셨으며 우리가 그 일에 증인이라고 할 때 많은 사람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었다고 전하니 5천 명이 회개합니다. 남자만 5천 명입니다.

우리는 오늘 오후에 나가서 전도합니다. 그런데 전도가 별것이 아닙니다. 본질은 고백이요 믿음입니다. 전도 훈련 이런 것들이 다 귀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본질은 고백이요 믿음입니다. 가는 곳마다 자주 장사 루디아처럼 모두 다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핵심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도를 전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22). 여기서 "모든 사람"은 믿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본문이 로마서의 말씀과 함께 언약의 가장 중요한 말씀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믿음과 권능이 우리의 삶 전역 가운데 임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