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녹취록>
1. 자기 자신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일
오늘은 로마서 계속되는 강해 말씀을 잠시 그치고 아직 단장이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새로 옮긴 예배당에서, 자주 보았던 포도나무와 가지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한몸 된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다. 신랑으로 주시고 남편으로 주시고 형으로 주시고, 그래서 우리 자신을 사셨습니다. 이에 대해 에베소서 2장 5절은 향기로운 제물,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렸다고 하며 갈라디아서 1장 4절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다고 합니다. 또한 디도서 2장 4절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은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구원을 이루셨다고 합니다.
교회는 터 위에 여러 모양의 건물로 지어지지만 본질은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주시고 피값으로 사신 의 위에 세워지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니,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들을 주셔서 아들의 피값으로 세운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도 우리 자신으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지상의 삶 가운데 최고 목표로 삼을 것은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제 곧 봄이 와서 이곳 근처 양재천에 가보면 잠자리도 많이 날고 여름에는 매미도 울게 될 것입니다. 모든 곤충이 오래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노래하는 것은 지어짐을 기뻐하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매미는 매미 자신으로 잠자리는 그 자신으로 기뻐하여 날아다니는 것에서 많은 교훈을 받습니다. 우리가 시냇물가에 앉아 기뻐하는 것은 그 시냇물 옆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물 자체로 인함입니다. 모든 만물이 그 스스로 감사하고 기뻐하는데 우리야말로 나의 나된 것으로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주님 자신을 주셔서 우리 자신을 사셨으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함은 바로 자기 자신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부속품입니다. 우리 자신이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습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주신 이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니 아들과 함께 우리가 모든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2.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열매 맺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고린도전서 12장 27절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서 6장 5절과 14장 8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하여 우리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지상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왜 크리스천이고 오늘 이렇게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많은 것으로 나를 드러낼 일, 또 기쁜 일이 있지만, 이 땅의 삶의 본질은 예수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수액과 진액을 받아 자랍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아 떨어졌던 가지가 다시 접붙임을 받아 생명을 얻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그 자양분으로 살아갑니다.
본문 말씀은 특히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겟세마네에 기도하러 가시기 전에 성찬을 제정하시고 거행하신 후 제자들에게 전해주신 말씀입니다. 본문 5절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 열매가 많습니다. 천국 열매를 맺습니다. 그를 떠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즉, 본문 4절은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열매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있습니다. 본문 이전에 나오는 요한복음 15장 3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부모의 눈에는 자식이 아무리 더러워도 깨끗합니다. 이웃 사람의 눈에는 티 하나만 묻어도 더러워보이지만 말입니다. 이미 우리가 깨끗함을 받았으니, 정결한 그릇으로 택함을 받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5절 말씀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슨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일어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거할 기회가 되면 그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3. 기쁨과 감사와 기도: 기도의 중요성
저도 최근 몇 주간 거의 매일 아침에 인부들이 오시는 시간에 이 공사 현장에 왔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가장 먼저 옵니다. 보통 7시 50분쯤 작업을 시작합니다. 사실 지금 이렇게 지어졌으니 아름다워 보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지어지는 과정이야말로 얼마나 감사합니까? 어떤 결과물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과정도 감사합니다. 드러난 것으로만 보면 천이 그냥 천으로 보일 뿐이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올올이 짜여야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것 같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물관과 체관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가 닿을 수 없습니다. 양은 목자를 가지는 나무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상만 봐도 주님은 그 속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나눈 것처럼 우리가 할 것은 괜히 기뻐하고 괜히 감사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려면 괜히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별다른 일 없으면 기쁜 것입니다. 그 기쁨을 놓치지 마십시오. 내가 실없이 웃는다고 느끼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일이 많은데도 내가 노래하고 있다면 그것이 변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일이 없어도 고민하고 침잠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 우리를 이기게 하십니다. 또한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신 명령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교회는 기도의 터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곳에서 다른 것이 아닌 얼마든지 크게 기도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크게 기도해도 괜찮습니다. 찬송해도 괜찮습니다. 주중에라도 다니시면서 나의 제일 처소는 우면동의 우면산 밑에 교회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 집이 아현동에도 세곡동에도 사당동에도 있지만, 제일 처소는 우면동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어디 가든지 이곳에 들러 소리내서 기도하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기도 처소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제가 우리 집에서 대낮에 ‘주여' 소리지르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와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나의 나된 것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본질, 그 기쁨과 감사가 성도의 본질인데 그것과 함께 있는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린 새가 입을 벌리면 어미 새가 음식을 넣어 주듯 말입니다. 물론 아기 새는 본능적으로 입을 벌리지만 우리 성도도 그래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입을 벌려야 하나님이 먹여 주십니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양분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거듭나서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는데 본문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3절은 '너희는 내가 일러준대로 이미 깨끗하여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깨끗하게 보십니다. 부모는 자식을 깨끗하게 봅니다. 그러므로 5절에서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하는데 깨끗하다'고 했으니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7절, '바로 내가 너희 안에 거하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 구하는대로 이루시리라'고 합니다.
4. 말씀을 듣고 기도함
우리는 말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말로 깨끗함을 받았으니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무엇이든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교회의 비밀을 잘 아는 분이 믿음이 깊은 사람입니다. 우리 십자가지기교회의 비밀을 잘 아는 사람이 믿음이 깊은 사람입니다. 성도는 살아가면서 이 교회의 비밀이 큰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2)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교회 안에서 자라가는 그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터인데 마음껏 뛰놀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이 터가 기도로 꽉 차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깊어지는 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껏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다가 뒷산에 가서 또 기도하십시오. 그런 터가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와서 그렇게 살다 가면 되는 것이지 무슨 가치가 더 있습니까? 기도는 아기 새가 입을 벌리는 본질에 속한 것입니다. 기도해서 성도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도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서 공로로 성도가 되지 않지만 성도는 필히 기도해야 합니다.
범사에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자라가려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데 특히 그 기도의 비밀이 교회에 크게 역사합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고 합니다. 이곳은 벧엘 하나님의 집입니다. 내 아버지의 기도하는 처소입니다. 교회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곳입니다. 내 명예, 유익, 편의를 구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 하나님의 집입니다. 기도할때 하늘의 사닥다리가 내려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훌륭한 교회인 이유는 말씀을 들으니 믿는 사람이 더한 것, 즉 말씀을 들은 것과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하기에 힘쓰고 떡을 떼기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기를 원합니다. 수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이 시대를 끌어안고 기도하고 우리 교회에서 순교자, 엘리야, 사무엘, 다니엘이 나오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소문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된 것이 아니라 믿으니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수고입니다. 은밀히 은밀히 서로 위하여 기도하는 사랑의 수고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소망의 인내입니다.
5. 말씀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런 칭찬을 받았는데, 그들이 교회 강단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이 강단에 서는 사람의 말이 사람의 말로 들려서도 안되고 전하는 사람도 사람의 말로 전해서는 안됩니다. 깊이 울려퍼지는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 강단의 말씀이 교회의 시작입니다. 말씀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웁니다. 신앙고백과 말씀이 교회의 반석입니다. 우리 십자가지기교회는 처처에서 전화가 옵니다. 불란서 파리의 어느 교회가 소속 교단을 기장 측에서 합동 측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서 우리 교회 설교를 듣는다고 합니다. 또 정읍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시골의 개척교회인데 설교를 계속 듣는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이 이 앞에 상문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합니다. 교회가 작아 헌금을 못하지만 한 번 말씀을 모시고 듣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를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정말 두렵습니다. 귀한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부족함이 많습니다. 인격적, 기질적, 태생적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러나 종의 연약한 입술을 들어 전하더라도 나귀나 돌이라도 사용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말씀을 듣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강단에 전해지는 말이 어느 목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말씀을 듣고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교회의 본질입니다. 자선, 구제, 선행을 열매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말씀이 없이 구제하는 것은 봉사단체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없는 기도는 자기 암시, 체면 세우기 뿐으로 헛것만 보입니다. 자기 의만 따지게 됩니다. 아침 저녁으로 묵상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다윗의 시편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강단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그것으로 기도하여 하나님께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가정예배로 시작되었지만, 회당에서 전하게 되고 귀부인이 믿고 로마군인들조차도 믿게 된 것입니다.
6. 믿음이 응시한 보화를 기도로 캐내라
우리가 이 터에서 이렇게 조용히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밖에는 많은 영혼들이 있고 더 많이 모여들 것입니다. 사람이 있어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있으므로 사람이 모여듭니다. 제가 예전에 사람 있는 곳에 가서 설교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의나 설교 청빙을 받으면 사람이 몇명인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다가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말씀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이 터로 모이는 것입니다. 교회의 입지와 사람의 수가 아니라, 교회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지기교회 말씀을 듣기 위해 이사오고 동네가 말씀으로 부흥되고 청교도시대와 같이 교회가 부흥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믿음이 응시한 보화를 기도로 캐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응시한 보화는 말씀이 있어야 찾아냅니다. 말씀이 있어야 믿음의 눈이 열립니다.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사무엘의 미스바의 대 성회와 엘리야의 갈멜살의 대 성회와 에스라의 대 성회는 다 큰 기도회였지만,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 들을 때 일어났습니다. ‘에바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 때 기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들음이 없이 기도하니 기도가 힘듭니다. 힘든 것은 자기 의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자기 의를 내세우면 어찌합니까? 기도에 자질이 없고 잘함 못함이 없습니다. 아기 새가 입을 벌리는 것을 공로라고 하지 않습니다. 말씀 듣고 귀가 열리고 기도해서 평양 대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사경회입니다. 이 터에서 금요기도사경회를 할 것인데 말씀 듣고 기도하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가 기도합니다. 성경 덮어놓고 기도하면 안됩니다. 우리 성도들께서 함께 말씀 읽기를 바랍니다. 말씀 읽는 것이 힘든 것도 자기 의 때문입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십시오.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 줄 읽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말씀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그러면 교회의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교회의 비밀은 말씀에 있습니다. 바로 두 세 사람이 모여 기도할 때 그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식물은 그저 자라지 않고 서로 마디가 상해야 자랍니다.
7. 기도의 세 요소: 말씀묵상, 간절한 기도, 미리 된 줄 아는 감사
오늘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그 예수 안에 거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면 진리의 영을 주시므로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구하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기도하십시오. 믿음의 보화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농부가 밭을 갈다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밭을 가는 것은 바로 성경 읽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화를 발견하면 전 재산을 팔아서 밭을 사는데, 기도가 바로 전재산을 파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일억, 십억, 백억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재산을 팔아 보화를 사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의 부요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에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고 서원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강해 하면서 얻은 교훈입니다.
본문 말씀은 제가 6년 간 십자가지기교회 이태원에서 설교한 것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 것을 모은 것입니다. 시편에 바로 다윗이 이 기도의 세 요소를 보이는데 첫번째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터에 와서 이 강단에 와서 받는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고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고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 잡니까, 잠깐 기도하고 주무십시오. 그날 은밀하게 말입니다. 빨리 자고 싶거든 오후에 미리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저녁에 편안히 자면 됩니다. 생색내지 말고 남 모르게 하십시오. 이곳에 와서 꼭 그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 좋게 그려지는 것이 많습니다. 봄날 산에도 가고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십시오. 말씀 보는 것에 이어 그리고 두번째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함이 떨어지면 하나님이 간절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니 미리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간절하게 하십니다. 제가 항상 그 생각을 합니다. 간절하게 기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럴 거리를 주십니다. 불쌍히 보여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말입니다. 우리 간판 하나 붙일 데가 없어 힘들었는데 이제 두 개를 붙여야 한다고 돈 걱정하고 있습니다. 피아노도 놓을 자리가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피아노 종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우십니다. 그리고 세번째가 중요합니다. 미리 된 줄 알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간절히 기도하되 미리 된 줄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8. 우리 교회가 기도의 터가 되기를 축언함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가지요 예수님은 포도나무입니다. 교회는 그 비밀이 큽니다. 우리 성도님들 즙이 넘치고 과육이 풍부한 열매를 맺는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배당 이전으로 인해 집으로부터 교회가 멀어지는 가정도 가까워지는 가정도 있는데, 오히려 먼 걸음이 우리를 더 풍성하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이곳에 와서 기도하지 않으면 이 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터의 의미는 마음껏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톤을 높여 설교하지만 이태원에서 높이는 것과는 질이 다릅니다. 마음이 편합니다. 지하라서 마음껏 외칠 수 있는데 양쪽에 큰 계단이 있어서 지하 같지 않습니다. 바람도 잘 통하고 말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귀하게 주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우리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시고 힘든 일이 있고 어려운 일, 좋은 일이 있으면 차타고 우면동 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십시오. 유아실 가면 여름에도 금방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집니다. 그저 저는 이 터에 와서 여러분들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다 주무시고 가셔도 됩니다. 이 터에서 기도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이실까보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셔서 우리 교회 예배당이 잘 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사람 이름을 대면 그렇지만, 여호와 이레입니다. 일당 만명입니다. 다 여호와의 이레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설계도 하는 분 계시지 법이면 법 융자면 융자 다 있습니다. 일당 만입니다. 우리가 직접 공사를 주관해서 이 정도면 대단한 것입니다. 물론 너무 애쓰시는 분이 계시지만 말입니다. 어제 보니 공업용 청소기를 빌려와서 싹 치우니 깨끗해졌습니다. 김범서 집사님이 말입니다. 다 이렇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정말 한가지 한가지 따지면 힘듭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자녀들도 잘 자라면 좋겠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로 큰 은혜가 있어서 한국교회를 살리고 이곳에서 기도의 용사, 믿음의 큰 일꾼, 순교자와 선교사가 나오고 큰 목사가 나오는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이 시대를 선도하고 교회를 살립니다. 안나와 시므온 같이 평생 아무 특별한 일 없이 기도하며 살다가도 성경이 기록되는 일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저부터 깨서 기도하도록 애쓰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여호와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20180121] [주일낮예배] 교회의 본질 (요15:4-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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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