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 요 4:3-42 | 문병호 목사 | 사복음서 병행 강해 29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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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 요 4:3-42 | 문병호 목사 | 사복음서 병행 강해 29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30129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녹취록>



1. 역경의 땅 사마리아


우리 주님께서 유대땅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다가 애논이라는 유대 북방으로 올라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갈릴리로 가시려는데 사마리아를 거치게 됩니다. 갈릴리는 사마리아로 거칠 수도 요단강을 둘러 갈 수도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내려올 때는 주로 사마리아를 거쳐 오는 것이 편하고 유대 땅에서 올라갈 때는 요단강 베뢰아로 둘러가는 것이 편하다고 합니다. 지난 주에 보았던 예수님이 세례를 주신 애논이라는 곳이 사마리아와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소위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말씀을 본문은 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신학적 복음서라고 불릴 만큼 심오한 말씀을 담고 있으나 이만큼 사람 중심의 복음서도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 38년 된 병자 등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이야기,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사람과의 일로 기록한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본문의 배경인 사마리아 수가 성은 영어로 '시카'라고도 부릅니다. 이 수가 성에 야곱의 우물이 있습니다. 나사렛에 대해 말씀을 드릴 때 이스라엘 평원과 북쪽으로는 다볼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샤론의 해변가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 사마리아입니다. 사람들에게 이 땅은 그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여겨지지 않은데 앗수르가 침입하여 괴롭히고 혼족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혈통을 더럽힌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가장 반대한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그 사람들을 성전 재건에 참여시키지도 않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소외되다 보니 성전이 예루살렘이 아닌 그리심 산에 있다고 하여 성전을 따로 짓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의 신앙을 따라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세겜의 계곡은 감람나무가 울창한 곳으로, 사마리아는 땅이 좋은 사실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에 보면 산골 깊은 곳에서는 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곡창지대같이 사람이 많고 땅이 좋은 곳에서 주로 전쟁이 납니다. 사마리아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야곱이 얍복강을 지나서 하나님께 단을 세우기로 약속한 벧엘로 바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숙곳을 지나 세겜 땅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돈을 주고 우물을 팝니다. 벧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시몬과 레위가 세겜 땅 히위 족속을 할례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모두 죽여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때 야곱이 정신을 차리고 벧엘로 올라가자고 합니다. 벧엘은 사실상 남쪽입니다. 벧엘은 비옥한 땅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땅의 기름짐을 따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2.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신 예수님


야곱의 우물은 자연 우물은 아니고 30미터 가량을 파서 낸 곳입니다. 주석에 보면 이 수가성 사람들은 야곱의 우물 외에 수가의 우물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물을 길러 가는 곳이 바로 수가의 우물인데 본문의 여인은 굳이 거리가 먼 야곱의 우물에 그것도 정오에 간 것입니다. 수가성에서 야곱의 우물까지는 10리 정도는 걸어야 하는 거리입니다. 한낮에 이스라엘 땅에서 10리를 걷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여인에게는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 남자가 있는데 남편인지 알 수도 없는 자였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사람이 없을 때 우물을 멀리 길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으로 봤을 때는 숨어다니고 피해다니지만 인간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일단 부정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라는 것 자체가 부정적입니다. 순수하지 않고 혼혈족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피해 정오에 나타난 것은 사람들에 의해 부정한 여인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여인의 속성을 한눈에 알아보십니다. 주님은 사람이시지만 하나님이며 전능하고 전지하시므로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다 피곤해서 다윗의 우물에 앉으셔서 쉬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다 만난 사람이 많습니다. 열두 해 혈루병 환자도 길에서 주님이 옷깃을 만져서 나음을 얻었습니다. 소경 바디메오도 예수님이 예루살렘 가는 길에서, 구레네 시몬도 십자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부른 것은 길 위에서입니다. 길 가다가 세리 마태도 어부 베드로도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연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길 가운데 기억도 할 수 없는 시점에 교회에 간 것 같아도 하나님은 뜻이 있으셔서 예수님을 야곱의 우물로 이끄시고 가장 소외된 사마리아 여인도 그곳으로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이 그것입니다. 



3. 생명수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주님은 그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이 어찌하여 나에게 말하느냐고 말합니다. 딱 보니 어투며 복장이 모두 유대인이었던 것인데 말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평생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찌하여’인 것입니다. 그저 남에게 의지하고 항상 달라고만 하던 그 여인에게 예수님이 무언가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찌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인생 처음으로 남에게 인정을 받고 요청과 부탁을 받은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신학교를 가서 주의 양을 치라고 하셨을 때 '어찌하여'라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 물음에 예수님은 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10). 이 답변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선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오히려 그것을 선물로 주시고자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물이라는 것은 요한, 마태, 마가 복음서에서 계속 나왔습니다. 세례를 물로 주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한 일 역시 구약의 말로 하면 물로 씻은 것입니다. 생수는 영어로 'living water'입니다. 원어도 '살아 있는 물'이라고 하여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단 살아 있는 물은 고이지 않은, 흐르는 물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보면 영생하도록 마르지 않는 물인데, 이 생수라는 것은 생명의 물을 뜻합니다. 이 물을 먹으면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생수라는 것은 또한 구약에서는 흐르는 물에 씻으라고 하여 죄를 씻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여있는 물은 정결례 때 쓰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목마른 가운데 물을 달라고 하시지만 사실상 그 물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두레박에 물을 달라고 하는 그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생수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14절의 ‘그 속에서’는 ’물을 받아 마시는 사람 속에서‘를 의미합니다. 날마다 구원을 받은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넉넉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물은 바로 죄를 씻어 주고 생명을 주시는 물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전제, 부어서 주시는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레 17:11).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생수입니다. 



4. 사마리아 여인의 회심


이 여인은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모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 4:15). 주님이 이에 대해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한 말씀을 더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 귀한 물을 계속 나오게 한다고 하니 그 물을 달라고 하여 마음이 즐거웠는데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니 마음이 불편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하신 일이 가르침의 교본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남편이 없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로 인해 여자가 말합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9). 이것이 신앙입니다. 아직 물만 주는 줄 알았다가 이제 선지자로 바로 알게 된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선지자는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모세입니다. 그러니 모세 오경을 사마리아 오경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사마리아 여인이 선지자로 예수님을 고백한 것은 대단한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이를 듣고 더 깊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 영과 진리라는 말은 성령으로 예배드린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영적 예배니라라고 할 때 '영적'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영과 진리는 같이 읽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진리의 역사가 없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말씀에 따른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도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고 그리심 산에서도 아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다 이루시고 그 영을, 오순절 성령의 감화로 그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이 드리는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이 말을 들은 여자는 25절에서 여자가 메시야, 그리스도가 오시면 이렇게 될 줄로믿는다고 말합니다. 이 고백은 이미 사마리아 사람들의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예수님이 이 여인의 마음에 이 감화와 지식을 주신 것입니다. 이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내가 그라‘고 하십니다. 신약 성경 전체를 통해 메시아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는데 그중 한 번이 바로 이 본문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 메시아가 오시면 예루살렘 성전도 아닌 그리심 산도 아닌 곳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바로 그가 오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품 속에 있기 전에는 영혼의 평안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하나님의 품 속에 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내가 그라’하는 말은 바로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던지고 동네에 뛰어갑니다. 숨어 다니던 삶이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3일만에 복음을 전했는데 사마리아 여인은 순간적으로 물동이를 던지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때까지는 먹고 마실 것에 관심이 있었으나 이제는 물동이를 던지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겉옷을 버리고 소경이 '나사렛 예수여'라고 하며 나가듯 본문도 물동이를 던져놓고 말씀을 전합니다. 



5. 결론 


이제 제자들이 돌아와 잡수기를 청하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금 보게 된 것은 사마리아 지역은 참으로 기구한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전쟁이 많으니 사람들이 거의 다 죽고 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옮겨 두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수치 가운데 역사합니다. 생수의 근원 되신 예수를 만났으니 우리가 수치 가운데 있어도 기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두 가지 죄에 대해 스스로 웅덩이를 팠으니 터진 웅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야곱이 팠습니다. 거기에 좋은 일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판 우물은 터진 웅덩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갈하지 않는 생수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믿는 게 생수를 얻는 것입니다. 내게 오는 자, 나를 믿는 자는 동의어입니다. 주님께 가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무조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기도하고 두드리고 찾아가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면 됩니다. 오는 자는 주리지 아니하고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자다가도 생수가 그 안에서 솟아납니다. 그 믿음으로 나아가는 은해 위에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은혜의 근원이자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