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9 | 주일낮예배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65 |열매 맺는 포도나무와 가지 | 요 15:1-8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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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19일 주일낮예배 설교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65
열매 맺는 포도나무와 가지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요한복음 15:1-8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녹취록
1. 관계의 본질과 믿음으로 맺어지는 관계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 그렇게 이해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별히 “참 포도나무는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가지”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이것은 곧 관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관계에 대한 말씀이 매우 많습니다. 누가 제 이름을 부릅니까? 보통은 다른 사람이 부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자식이 부르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존재도 자식입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라고 부르는 것은 부모입니다. 이웃에 사는 분들을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지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성경 전체를 보면 결국 관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관계의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모습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모든 관계의 깊은 샘과 원천, 진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시고,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 생명이시며,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씀하시고, 아들은 그 말씀 자체이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성령은 그 말씀 가운데 만물을 이루십니다. 모든 것이 관계이며, 그 관계의 완전한 모습이 바로 삼위일체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십니다. 성자를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관계를 이루신 것입니다.
관계라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저는 어거스틴을 좋아하는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관계’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영어로는 relation, 라틴어로는 relatio라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관계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부부 관계, 친구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관계로 인해 고통과 슬픔을 겪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는 관계의 부정적인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관계가 훨씬 더 많고 귀합니다. 당시에는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어도 지나고 보면 ‘백 가지 중 하나였구나, 아흔아홉은 좋았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저 역시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 팽이를 만들어 주시고, 시골에 계시면서도 제가 부탁하면 책과 참고서를 사다 주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관계가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주님은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선한 목자의 비유도 나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고 우리는 양입니다. 목자는 양의 음성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또 주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으면 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모두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만 하면, 주님이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을 때,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분을 나의 길, 나의 진리, 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또 주님이 “내 살은 양식이요 내 피는 음료라”고 하셨을 때,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결국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믿음으로 형성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가 되시고, 형제가 되시며,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2. 포도원과 극상품 포도나무, 그리고 생명의 열매
포도나무와 가지는 하나의 나무입니다. 가지는 반드시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며, 그 연결을 통해 물과 양분이 공급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 또한 가지 없이는 그 존재 의미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습니다. 가지를 통해 생명의 흐름이 이어질 때 비로소 나무는 살아 있게 됩니다.
포도나무는 포도원에 있으며,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아버지를 농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참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성경에서는 때로 우리를 포도원 일꾼으로, 때로는 양으로, 또 때로는 가지로 비유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특별히 가지의 관점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장 1절부터 7절과 요한복음 15장 1절부터 8절의 말씀은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포도원의 노래’가 나오는데, 기름진 산에 땅을 일구고 돌을 제거한 뒤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음에도 불구하고 들포도를 맺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최선의 조건 속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열매가 맺힌 상황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을 때에만 그 존재 가치가 드러납니다. 목재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하지 않고, 풍성한 그늘을 제공하지도 못합니다. 오직 포도를 맺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포도 열매와 그 즙은 매우 귀하여 생명과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주님께서도 성찬에서 포도즙을 새 언약의 피로 말씀하셨습니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는 깊은 뿌리를 통해 수분을 끌어올리고, 이를 열매로 맺습니다. 따라서 포도 열매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사람들이 포도송이를 메고 올 정도로 크고 풍성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영적인 의미뿐 아니라 실제적인 풍요로움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포도나무의 비유를 드신 것은 생명과 그 귀중함을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포도나무는 생명의 나무이며, 가지는 반드시 그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고, 농부는 그 열매를 통해 가지를 판단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려 나가는데, 이는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전지 과정입니다.
본문 2절에 따르면,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가지를 손질하여 병든 부분을 제거하고 해충을 없애듯이, 생장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무는 공기가 잘 통하고, 수분과 양분의 흐름이 원활해지며,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향기가 살아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듯이, 생명 역시 본질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죄나 불필요한 근심, 과도한 욕심, 시기와 같은 것들이 마음에 머물게 되면 생명의 흐름이 막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마치 피부가 호흡하듯이 우리의 심령도 생명 가운데서 호흡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유지되고 자라가게 됩니다.
3.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심과 이미 주어진 구원
함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느니라.” 여기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 곧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에는 본질적인 교통과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분의 의와 공로, 은혜가 우리에게 흐르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그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이 극상품 포도나무가 맺는 열매는 생명의 열매이며, 곧 영생의 열매입니다.
이어지는 3절에서는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던 중에 ‘말씀’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말’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로고스’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깨끗하게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13장 10절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정결함을 얻은 자에게는 부분적인 정결만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미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 존재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거듭났으며,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이들이 접붙임을 받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접붙임을 받은 이들이 더욱 견고히 서서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며, 이제 그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무에 물과 양분이 흐르듯이, 우리 안에는 말씀이 흐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로고스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할 때의 그 말씀입니다.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그 말씀이 참빛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를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3절의 의미는 우리가 이미 이 말씀을 영접함으로써 깨끗하게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사건,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 사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미 정결하게 된 것입니다.
이어 주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우리도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는 접붙임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접붙임은 잘림을 전제로 합니다. 접붙임을 받는 가지도, 접붙여지는 나무도 모두 잘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시 옛 삶에서 끊어져야 하며,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옛 상태에 머물러 들포도만 맺는 삶은 생명 없는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극상품 포도나무에 붙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옛 것이 반드시 끊어져야 합니다. 타락한 본성에 속한 옛 사람은 결국 죽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옛것에서 단절되어야 합니다. 끊어짐 없이 거듭남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잘려진 상태로 머물면 결국 말라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 끊어짐은 동시에 생명의 시작이 됩니다. 잘려진 가지가 좋은 나무에 접붙여질 때 비로소 살아나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 것이 끊어지고 새로운 생명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접붙임은 지체되어서는 안 됩니다. 잘린 가지는 즉시 접붙여져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온전한 나무에는 접붙임이 이루어질 수 없듯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 몸을 휘장에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주님의 몸이 찢어짐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4. 동여맴의 간절함과 주님께 붙어 있는 삶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잘라낸 후에는 반드시 동여매어야 합니다. 접붙임의 과정에서 나무를 묶어 단단히 고정시키듯이, 가지는 반드시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바로 이 ‘붙어 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시며,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은 반드시 연결을 통해 유지됩니다.
이 연결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거룩한 것과 신령한 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려짐은 죽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옛것이 끊어질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잘려짐 이후에는 반드시 붙어야 합니다. 이 ‘동여맴’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간절함을 의미합니다. 붙어 있으려는 마음, 떨어지지 않으려는 갈망, 그것이 신앙의 본질적인 태도입니다.
기도가 간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붙기 위함입니다. 그 간절함 속에는 ‘이것 외에는 생명이 없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이라는 확신, 그것이 참된 간절함입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연결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절된 삶이 아니라 이어진 삶입니다. 땅의 삶과 하늘의 생명이 연결된 상태, 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연결을 유지하는 힘이 바로 간절함입니다.
본문의 마지막에서는 열매를 많이 맺을 때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흩어져 자라는 것이 아니라, 위로 향하여 붙어 있는 가지처럼 하나님께 연결된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연결 속에서 비로소 생명이 자라고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주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연결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주님과의 단절은 곧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은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본질은 주님과의 연결에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상한 심령과 애통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애통함은 곧 간절함이며, 간절함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신앙이 이루어집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이러한 간절함을 보여 줍니다. 보지 못하던 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갔고, 오랜 질병으로 고통받던 여인도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주님께 붙고자 하는 간절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시 날마다 하나님과 연결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나, 언제나 주님과 이어져 있고 접붙여져 있다는 의식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풍성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5. 보혜사 성령, 임마누엘과 진리와 은혜의 역사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접붙임의 관계입니다. 이는 죽었던 가지가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옛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이전에는 돌감람나무와 같은 삶, 들포도나무와 같은 삶을 살았으나, 이제는 접붙임을 통해 참감람나무에 속하게 되었고, 참 포도나무에 연결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은 오직 주님과의 연결 속에서 유지됩니다. 다른 것이 아무리 많아 보여도, 주님과의 연결이 없다면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반대로, 비록 미약해 보일지라도 주님과 이어져 있다면 그 안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연결되어 신령한 은혜의 흐름 속에 있어야 합니다. 마치 나무에 물관과 체관을 통해 물과 양분이 흐르듯이, 우리 안에도 영적인 생명의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연합이며 하나 됨입니다.
이러한 연합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욱 깊이 연결되며, 임마누엘의 영, 곧 함께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게 됩니다.
본문 6절에서는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버려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도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삶은 결국 생명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비록 세상에서의 평가나 칭찬을 다 얻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마음을 두고 살아갈 때, 그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어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는 임마누엘의 영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존재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이며, 실제적인 영적 현실입니다.
둘째,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며”는 진리의 영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그 말씀 가운데 거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셋째,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은혜의 영, 곧 능력의 영을 의미합니다. 참된 능력은 은혜 안에서 주어지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7절에 나오는 “내 말”입니다. 이는 3절에서 사용된 ‘로고스’와 구별되는 ‘레마’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절의 말씀은 우리가 영접하여 생명을 얻게 된 본질적인 말씀이라면, 7절의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지속적으로 들려주시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즉,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때마다 위로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음성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살아 있는 교통 속에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단순한 구조적 연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접붙임은 외형적인 결합이 아니라, 생명이 흐르는 실제적인 연합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는 끊임없이 흐름이 있으며, 그 안에는 지속적인 생명과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그 안에 거할 때,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신앙이며,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입니다.
2026년 04월 19일 주일낮예배 설교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65
열매 맺는 포도나무와 가지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요한복음 15:1-8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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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계의 본질과 믿음으로 맺어지는 관계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 그렇게 이해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별히 “참 포도나무는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가지”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이것은 곧 관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관계에 대한 말씀이 매우 많습니다. 누가 제 이름을 부릅니까? 보통은 다른 사람이 부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자식이 부르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존재도 자식입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라고 부르는 것은 부모입니다. 이웃에 사는 분들을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지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성경 전체를 보면 결국 관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관계의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모습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모든 관계의 깊은 샘과 원천, 진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시고,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 생명이시며,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씀하시고, 아들은 그 말씀 자체이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성령은 그 말씀 가운데 만물을 이루십니다. 모든 것이 관계이며, 그 관계의 완전한 모습이 바로 삼위일체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십니다. 성자를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관계를 이루신 것입니다.
관계라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저는 어거스틴을 좋아하는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관계’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영어로는 relation, 라틴어로는 relatio라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관계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부부 관계, 친구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관계로 인해 고통과 슬픔을 겪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는 관계의 부정적인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관계가 훨씬 더 많고 귀합니다. 당시에는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어도 지나고 보면 ‘백 가지 중 하나였구나, 아흔아홉은 좋았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저 역시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 팽이를 만들어 주시고, 시골에 계시면서도 제가 부탁하면 책과 참고서를 사다 주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관계가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주님은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선한 목자의 비유도 나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고 우리는 양입니다. 목자는 양의 음성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또 주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으면 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모두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만 하면, 주님이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을 때,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분을 나의 길, 나의 진리, 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또 주님이 “내 살은 양식이요 내 피는 음료라”고 하셨을 때,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결국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믿음으로 형성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가 되시고, 형제가 되시며,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2. 포도원과 극상품 포도나무, 그리고 생명의 열매
포도나무와 가지는 하나의 나무입니다. 가지는 반드시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며, 그 연결을 통해 물과 양분이 공급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 또한 가지 없이는 그 존재 의미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습니다. 가지를 통해 생명의 흐름이 이어질 때 비로소 나무는 살아 있게 됩니다.
포도나무는 포도원에 있으며,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아버지를 농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참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성경에서는 때로 우리를 포도원 일꾼으로, 때로는 양으로, 또 때로는 가지로 비유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특별히 가지의 관점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장 1절부터 7절과 요한복음 15장 1절부터 8절의 말씀은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포도원의 노래’가 나오는데, 기름진 산에 땅을 일구고 돌을 제거한 뒤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음에도 불구하고 들포도를 맺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최선의 조건 속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열매가 맺힌 상황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을 때에만 그 존재 가치가 드러납니다. 목재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하지 않고, 풍성한 그늘을 제공하지도 못합니다. 오직 포도를 맺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포도 열매와 그 즙은 매우 귀하여 생명과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주님께서도 성찬에서 포도즙을 새 언약의 피로 말씀하셨습니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는 깊은 뿌리를 통해 수분을 끌어올리고, 이를 열매로 맺습니다. 따라서 포도 열매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사람들이 포도송이를 메고 올 정도로 크고 풍성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영적인 의미뿐 아니라 실제적인 풍요로움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포도나무의 비유를 드신 것은 생명과 그 귀중함을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포도나무는 생명의 나무이며, 가지는 반드시 그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고, 농부는 그 열매를 통해 가지를 판단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려 나가는데, 이는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전지 과정입니다.
본문 2절에 따르면,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가지를 손질하여 병든 부분을 제거하고 해충을 없애듯이, 생장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무는 공기가 잘 통하고, 수분과 양분의 흐름이 원활해지며,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향기가 살아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듯이, 생명 역시 본질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죄나 불필요한 근심, 과도한 욕심, 시기와 같은 것들이 마음에 머물게 되면 생명의 흐름이 막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마치 피부가 호흡하듯이 우리의 심령도 생명 가운데서 호흡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유지되고 자라가게 됩니다.
3.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심과 이미 주어진 구원
함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느니라.” 여기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 곧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에는 본질적인 교통과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분의 의와 공로, 은혜가 우리에게 흐르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그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이 극상품 포도나무가 맺는 열매는 생명의 열매이며, 곧 영생의 열매입니다.
이어지는 3절에서는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던 중에 ‘말씀’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말’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로고스’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깨끗하게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13장 10절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정결함을 얻은 자에게는 부분적인 정결만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미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 존재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거듭났으며,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이들이 접붙임을 받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접붙임을 받은 이들이 더욱 견고히 서서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며, 이제 그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무에 물과 양분이 흐르듯이, 우리 안에는 말씀이 흐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로고스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할 때의 그 말씀입니다.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그 말씀이 참빛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를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3절의 의미는 우리가 이미 이 말씀을 영접함으로써 깨끗하게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사건,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 사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미 정결하게 된 것입니다.
이어 주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우리도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는 접붙임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접붙임은 잘림을 전제로 합니다. 접붙임을 받는 가지도, 접붙여지는 나무도 모두 잘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시 옛 삶에서 끊어져야 하며,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옛 상태에 머물러 들포도만 맺는 삶은 생명 없는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극상품 포도나무에 붙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옛 것이 반드시 끊어져야 합니다. 타락한 본성에 속한 옛 사람은 결국 죽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옛것에서 단절되어야 합니다. 끊어짐 없이 거듭남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잘려진 상태로 머물면 결국 말라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 끊어짐은 동시에 생명의 시작이 됩니다. 잘려진 가지가 좋은 나무에 접붙여질 때 비로소 살아나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 것이 끊어지고 새로운 생명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접붙임은 지체되어서는 안 됩니다. 잘린 가지는 즉시 접붙여져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온전한 나무에는 접붙임이 이루어질 수 없듯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 몸을 휘장에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주님의 몸이 찢어짐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4. 동여맴의 간절함과 주님께 붙어 있는 삶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잘라낸 후에는 반드시 동여매어야 합니다. 접붙임의 과정에서 나무를 묶어 단단히 고정시키듯이, 가지는 반드시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바로 이 ‘붙어 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시며,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은 반드시 연결을 통해 유지됩니다.
이 연결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거룩한 것과 신령한 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려짐은 죽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옛것이 끊어질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잘려짐 이후에는 반드시 붙어야 합니다. 이 ‘동여맴’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간절함을 의미합니다. 붙어 있으려는 마음, 떨어지지 않으려는 갈망, 그것이 신앙의 본질적인 태도입니다.
기도가 간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붙기 위함입니다. 그 간절함 속에는 ‘이것 외에는 생명이 없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이라는 확신, 그것이 참된 간절함입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연결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절된 삶이 아니라 이어진 삶입니다. 땅의 삶과 하늘의 생명이 연결된 상태, 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연결을 유지하는 힘이 바로 간절함입니다.
본문의 마지막에서는 열매를 많이 맺을 때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흩어져 자라는 것이 아니라, 위로 향하여 붙어 있는 가지처럼 하나님께 연결된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연결 속에서 비로소 생명이 자라고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주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연결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주님과의 단절은 곧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은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본질은 주님과의 연결에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상한 심령과 애통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애통함은 곧 간절함이며, 간절함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신앙이 이루어집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이러한 간절함을 보여 줍니다. 보지 못하던 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갔고, 오랜 질병으로 고통받던 여인도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주님께 붙고자 하는 간절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시 날마다 하나님과 연결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나, 언제나 주님과 이어져 있고 접붙여져 있다는 의식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풍성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5. 보혜사 성령, 임마누엘과 진리와 은혜의 역사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접붙임의 관계입니다. 이는 죽었던 가지가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옛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이전에는 돌감람나무와 같은 삶, 들포도나무와 같은 삶을 살았으나, 이제는 접붙임을 통해 참감람나무에 속하게 되었고, 참 포도나무에 연결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은 오직 주님과의 연결 속에서 유지됩니다. 다른 것이 아무리 많아 보여도, 주님과의 연결이 없다면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반대로, 비록 미약해 보일지라도 주님과 이어져 있다면 그 안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연결되어 신령한 은혜의 흐름 속에 있어야 합니다. 마치 나무에 물관과 체관을 통해 물과 양분이 흐르듯이, 우리 안에도 영적인 생명의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연합이며 하나 됨입니다.
이러한 연합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욱 깊이 연결되며, 임마누엘의 영, 곧 함께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게 됩니다.
본문 6절에서는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버려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도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삶은 결국 생명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비록 세상에서의 평가나 칭찬을 다 얻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마음을 두고 살아갈 때, 그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어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는 임마누엘의 영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존재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이며, 실제적인 영적 현실입니다.
둘째,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며”는 진리의 영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그 말씀 가운데 거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셋째,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은혜의 영, 곧 능력의 영을 의미합니다. 참된 능력은 은혜 안에서 주어지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7절에 나오는 “내 말”입니다. 이는 3절에서 사용된 ‘로고스’와 구별되는 ‘레마’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절의 말씀은 우리가 영접하여 생명을 얻게 된 본질적인 말씀이라면, 7절의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지속적으로 들려주시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즉,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때마다 위로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음성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살아 있는 교통 속에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단순한 구조적 연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접붙임은 외형적인 결합이 아니라, 생명이 흐르는 실제적인 연합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는 끊임없이 흐름이 있으며, 그 안에는 지속적인 생명과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그 안에 거할 때,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신앙이며,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