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7 | 주일낮예배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70 | 근심이 기쁨이 되는 변화의 영 | 요 16:16-24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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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07일 주일낮예배 설교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70


근심이 기쁨이 되는 변화의 영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요한복음 16:16-24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녹취록



1.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오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음성을 다 들으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다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고 시공간에 제한되지 않으시기에 만질 수도, 포용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하늘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듣고, 얼굴을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에서 가장 귀한 약속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그 임마누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약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가 다락방에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미 여러 차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근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성찬을 베푸시며 “이 잔은 내 피요, 이 떡은 내 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십자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떠나실 뿐 아니라 다시 오신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부활을 생각하며 위로받을 수 있었지만, 주님은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도 주님은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하시며,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부활, 오순절 성령 강림, 그리고 마지막 재림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성령 강림을 포함합니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는 성령에 대한 약속이 계속 이어집니다.
성령이 오시면 더 이상 주님을 육안으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주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때부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영이며,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는 양자의 영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의 큰 주제는 성령이 임하면 기쁨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님이 친히 행하십니다.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십니다. 이는 스스로 진리를 증언하시는 분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근심하겠으나 다시 보리라
 
주님은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곡함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깊은 애통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을 앞두고 이러한 슬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떠나신다고 하니 제자들의 슬픔은 더욱 컸습니다.
반면 세상은 기뻐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세상은 조롱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생명이 건강하게 자라며 열매 맺는 상태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수고하는 기쁨, 베푸는 기쁨, 참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귀한 기쁨은 연단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고 빚으시는 과정 속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반대로 욕심과 악에서 나오는 기쁨도 있습니다. 오늘 세상이 기뻐한다는 것은 그런 기쁨입니다.
주님은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으며, 그 근심 뒤에는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해산하는 여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출산의 고통은 크지만 아이를 낳으면 그 기쁨으로 인해 고통을 잊게 됩니다. 제자들의 근심도 그러할 것입니다.
근심이라는 헬라어 ‘리페’에는 아직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까지 이르지 못했기에 생기는 거룩한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좁은 문과 좁은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근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십니다.
 
 
3. 겟세마네의 근심과 새 생명을 낳는 기도
 
‘리페’라는 단어는 겟세마네에서도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도 근심 가운데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자리에서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근심은 단순히 죽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낳기 위한 대속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해산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산모가 생명을 낳기 위해 고통을 겪듯이 주님은 새 생명을 낳기 위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를 “애써 기도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근심도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과 성령 강림, 그리고 재림 모두를 포함합니다. 특히 성령이 임하면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 기쁨은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은 사랑과 기쁨과 화평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결국 보혜사 성령에 대한 약속입니다.
 
 
4. 성령은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변화의 영
 
성령은 변화의 영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사람은 변화됩니다. 사도 바울도 그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변화에 대한 근심은 하되 세속적인 두려움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근심을 품어야 합니다. 좁은 길을 가며,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께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근심은 거룩한 근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해 때로 좁은 길을 걷게 하십니다.
사라를 열국의 어머니로 바꾸셨고, 한나의 눈물을 찬양으로 바꾸셨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이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높이시고,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며, 모든 상황을 변화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를 빚어 가시며, 우리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하십니다.
 
 
5.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근심과 빼앗을 수 없는 기쁨
 
변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막기 위해 두신 것이 아니라 가르시기 위해 두셨습니다.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도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 역시 절망의 자리에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처럼 보이는 상황도 변화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 때문에 지나치게 낙심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근심이 있습니까? 그 근심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근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근심은 결국 기쁨으로 변화됩니다.
성령은 변화의 영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듬고 익히시며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의 근심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근심은 결국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근심을 충만한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