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5 | 주일낮예배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74 |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 | 요 17:6-19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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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05일 주일낮예배 설교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74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요한복음 17:6-19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녹취록



1.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입니다
 
오늘은 7월 첫째 주 예배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세월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우리를 헤아리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때”, 곧 카이로스의 호라, 하나님의 시간으로서의 때를 함께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때가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비극입니다. 십자가로 가시는 길은 인간의 눈에는 비극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비극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화평을 주노라, 기쁨을 주노라, 사랑을 주노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끝까지 그것을 비극으로 여겼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달려가시려 할 때, 그들의 마음에는 “그리 마옵소서” 하는 생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로 가신 것은 실패나 비극이 아니라, 그 일을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죽으시러 오셨고, 십자가에 달리시러 오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고 제자 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절부터 5절까지는 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아들의 영화이므로, 주님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6절부터 19절까지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이 공생애 동안 세우신 열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는 배반하였고, 이제 열한 제자가 남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현실적으로 이 열한 제자를 위한 기도입니다. 20절부터 26절까지는 앞으로 믿게 될 사람들, 곧 교회를 위한 기도이며, 크게 보면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본문은 길고 내용도 많아 읽어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길고 상세하게 기록된 것은 그만큼 제자들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무리는 예수님 손에 무엇이 들렸는지, 예수님의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제자는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 예수님 자신에게 관심을 둡니다. 오늘 말씀은 이 열한 제자를 향한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제자도가 무엇인지, 제자라고 불리는 자의 자격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게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주님께서 공생애 동안 하나하나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단지 주님을 따라다니며 배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가르침을 세상에 선포하고 사람을 낚는 일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자녀로서의 소명이 있고, 직분자로서의 소명이 있습니다. 자녀로서의 소명은 예수를 따라 구원을 받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직분자로서의 소명은 사도직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사도직은 더 이상 없지만, 사도들은 설교하고 성례를 거행하고 가르치며 치리와 권징을 행했습니다. 이러한 직무는 오늘날 목사에게 주어진 것과 깊이 연결됩니다. 사도 시대는 예수님의 공생애 때라기보다,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하여 사도들이 예수님의 증인으로 땅끝까지 나아간 시대입니다. 그 뒤를 이어 속사도 시대, 변증가 시대, 교부 시대가 이어졌습니다. 사도 시대는 이 모든 시대의 초석입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공생애를 함께 경험했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으며,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을 기록했고,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들,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의 이름 위에 교회가 선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받고 기록한 말씀 위에 교회가 선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이 제자들을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세상 중에서”라는 말은 세상에 속하여 살던 사람들 가운데서 아버지께서 그들을 불러내어 아들에게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어부로, 세리로, 각자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지만 아버지께서 그들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던 사람들을 아들의 것으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삶은 인간적인 결심이나 단순한 종교적 열심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제자는 세상 중에서 아버지께서 불러내어 아들에게 주신 사람입니다. 세상에 속해 살던 사람을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셨고, 아들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제자의 출발입니다.
 
 
2. 아버지의 것이며 세상에 속하지 않은 제자
 
제자의 첫 번째 특권은 그들이 아버지의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6절과 9절에 보면 제자들은 아버지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들이 아들에게 맡겨졌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것은 다 아들의 것이며, 그중 가장 귀한 것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나는 하나님의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자입니다.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의를 이루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제자들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4절과 16절에서 주님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기도하십니다. 6절에서는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고 하셨고, 이제 14절과 16절에서는 그들이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세상에 남아 있지만 세상의 소속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 15절에서도 주님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두십니다. 그러나 죄악에 빠지지 않게, 실족하지 않게 기도하십니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제자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않으면 우리의 소속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천국 시민의 소속을 갖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떠나 도피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장에서 살고, 현실의 자리에서 삽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여 살지는 않습니다. 제자들은 그물과 배를 버리고, 친척과 아버지를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택하시고 이토록 길게 기도하신 것은 그들이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는 귀한 도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자리에 있는 줄 믿습니다.
 
 
3.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자녀 됨으로 사는 제자
 
세 번째로, 제자는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자입니다. 6절에서 주님은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라고 하십니다. 구약 백성에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라는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납니다. 제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된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만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예수가 아들이심을 알려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와 함께 자녀 되고 예수와 함께 상속자가 됩니다. 로마서 8장 17절의 말씀처럼,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입니다. 제자는 하나님을 단지 창조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 알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무리는 주신 분보다 받은 것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제자는 주신 분을 압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하시는 것도 양식보다 주시는 분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1년 치를 한꺼번에 받으면 주신 분을 잊을 수 있지만, 매일 주시는 은혜를 통해 우리는 주시는 분을 바라봅니다.
소유만 좇으면 아버지 되심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를 압니다. 우리는 단지 무엇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자가 제자입니다. 제자는 기복이나 심리적 만족, 자기 자랑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녀라는 존재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4. 말씀을 받고 말씀을 지키는 제자
 
네 번째로, 제자는 말씀을 받은 자입니다. 14절에서 주님은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말씀을 주셨고, 아들은 그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는 말씀을 맡은 자입니다.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제자는 말씀의 꼴을 먹고 자라야 합니다. 나무가 수분과 양분으로 자라듯, 제자는 말씀으로 자랍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아들이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받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말씀을 받은 자입니다. 말씀은 제자의 생명이며, 제자가 자라나는 양식입니다.
다섯 번째로, 제자는 말씀을 지키는 자입니다. 6절에서 주님은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법을 지키는 식의 행위가 아닙니다. 자녀의 신분으로 은혜를 받아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녀 되는 것은 복이지만, 자녀로 산다는 것은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아버지의 집에 사는 것은 은혜가 있기 때문이고, 그 은혜 가운데 아버지의 말씀에 맞추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땅끝까지 나아갔습니다. 흩어진 교회가 하나의 진리 말씀을 고백하도록 신앙고백이 정형화되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말씀을 맡은 자들은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60절에서 무리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하며 떠났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고백했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말씀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있으면 말씀을 알고 누리게 됩니다. 말씀을 맡고 말씀을 지키는 것이 제자입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은혜로 말씀을 누리는 것입니다.
 
 
5.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제자


여섯 번째로, 제자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자입니다. 10절에서 주님은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하십니다. 지난주 말씀에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영화롭게 되심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제자들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고 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여 영광의 도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자는 아들을 자랑하고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자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고, 제자들은 아들을 영화롭게 합니다. 이것이 영광의 순환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높이고, 예수는 아버지를 높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제자의 삶은 결국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제자의 여섯 가지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제자는 아버지의 것이며,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입니다. 제자는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소유가 아니라 자녀됨을 자랑하는 자입니다. 제자는 말씀을 받고, 말씀을 지키며, 그 말씀을 은혜로 누리는 자입니다. 그리고 제자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백합니다. 나는 무리가 아니요 제자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주님이 무엇을 주시는지만 바라보지 않고, 주님 자신이 누구신지를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하셨는지는 다음 말씀에서 이어지지만, 오늘 우리는 먼저 제자가 무엇인지, 제자의 특권과 은혜가 무엇인지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제자는 세상 중에서 아버지께서 불러내어 아들에게 주신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것이 아들의 것이 되었고,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말씀을 받고 지키며,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기도 가운데 드러내신 제자의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