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녹취록
1.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주님께서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이어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곧 오순절 이후 세워질 신약시대 교회와 오늘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당시 제자들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을 제정하시고 이 대제사장적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로마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라고 증거하고, 히브리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중보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7장은 단지 과거에 한 번 드려진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를 위하여 드리고 계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주님의 현재의 기도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느냐보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드리시는 기도는 크게 네 가지로 모아집니다. 하나됨과 영광, 사랑과 지식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떨어져 있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 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고, 영광을 누리게 하시며,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으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하십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말로 말미암아 자신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도들에게 맡겨졌고, 사도들은 그 말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말씀은 단순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로 그 말씀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실 때 그 기도 속에는 오늘 우리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다 알지 못하고,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우리 혼자의 기도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과 그리스도의 중보 안에서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히브리서는 그분의 제사장 직분이 결코 다른 이에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시며 지금도 쉬지 않고 강구하십니다. 이것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위로입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혼자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우리의 상한 심령과 부족한 기도는 그리스도의 중보 안에서 하나님께 올려집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느냐입니다. 잘하는 기도와 못하는 기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있을 뿐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께서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그 기도는 자녀가 아버지를 향하여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이며 자녀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셨고,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요한복음 17장은 우리에게 먼저 기도의 방법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에도, 연약할 때에도,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주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서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중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기도를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됨은 자녀됨이며 존재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첫 번째 내용은 하나됨입니다. 우리는 하나됨이라고 하면 먼저 사람들 사이의 화목이나 연합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됨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됨은 자녀됨이며,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는 존재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됨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억지로 묶어 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으시는 은혜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래 하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는 하나이시며, 성령은 성부의 영이시며 성자의 영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시고, 또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심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실 때에도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영이시며 아들의 영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됨의 근원은 언제나 삼위일체 하나님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하나됨 안으로 우리를 불러들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하나됨은 조직적인 통일이나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됨입니다.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형제자매가 되고, 형제자매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은 존재와 소유를 분명히 구별합니다. 사람은 소유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존재를 먼저 주십니다. 존재에는 이름이 있고 신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오늘 너를 낳았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선언입니다. 또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처럼 우리의 자녀됨은 혈통이나 사람의 뜻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은혜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자녀의 특권입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셨고, 이제 우리도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양자는 단순히 입양된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이면서 동시에 상속자의 권리를 받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났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독생하신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받아 주셨다는 사실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하나됨의 본질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됨은 존재를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소유를 의지하면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지만, 존재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신분 안에서 살아갑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존재의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됨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드시는 견인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시고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우리를 낳으신 분이시며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끝까지 품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를 끝까지 붙드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자녀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됨을 단순한 연합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됨은 자녀됨이며, 존재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며, 그 은혜 안에서 끝까지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이유도 바로 그 자녀를 끝까지 보전하시기 위함입니다.
3. 영광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누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됨을 위하여 기도하신 후 이어서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영광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는 영광이라고 하면 흔히 높임을 받거나 영화로운 모습을 먼저 생각하지만, 요한복음에서 말씀하는 영광은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높여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사역을 끝까지 이루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곧 아들의 영광이었고, 아들이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께서는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우리에게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광은 세상이 말하는 명예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허락하신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자신의 영광 안으로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영광은 먼저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완전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도 많고 좋은 것도 많지만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것을 완전한 것으로 붙들면 결국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완전하시며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예배드린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예배드립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곧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광을 인정하며 그 영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영광은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 차례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음을 말씀합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영광스러운 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자리와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부르시고 각 사람에게 맡기신 일을 주십니다. 성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삶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모든 성도에게 허락되는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시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골로새서는 말씀을 전하는 목적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광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완전하신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셨고, 그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가장 큰 특권입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순종이 영광이었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을 충실히 살아가며 그 뜻을 이루어 갈 때 가장 큰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셨고, 지금도 그 영광 안에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4.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됨과 영광에 이어 사랑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단순한 인간의 감정이나 호의가 아닙니다.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시는 사랑이며, 그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또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셨으므로”라고 말씀하시며, 마지막에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옵시며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마무리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마지막은 결국 사랑으로 끝맺어집니다.
이 사랑은 창세 전부터 있었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있기 전부터 아들을 사랑하셨고,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행위 때문에 시작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주어진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속한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먼저 베푸신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하였으며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십니다. 세상에도 사랑이라는 말은 많이 있지만, 참된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에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만이 참된 사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말씀으로만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설교에서는 이 사랑을 존재의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조금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자녀를 삼으시고 생명을 주셨으며, 상속자의 신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존재를 세워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신분을 바꾸고 우리의 삶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변하기 쉽습니다. 형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감정에 따라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 전부터 시작된 불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로 작정하셨고 끝까지 그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시고 우리보다 더 잘 아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을 단순히 밖에서 베푸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옵시며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고, 주님 자신도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미 기쁨의 임마누엘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사랑의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멀리서 사랑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만들어 내는 삶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을 누리는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향한 사랑을 기도하십니다.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 안에 끝까지 거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사랑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은 바로 그 사랑 안에서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기 위함입니다.
5.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시는 생명의 지식
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참된 지식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씀하는 지식은 단순히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를 많이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은혜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지식입니다.
주님께서는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이 사람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라고 기도를 마치십니다. 주님께서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아버지를 아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은 생명의 지식이며 인격적인 지식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안에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삼으셨음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가장 귀한 지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누리며 살아갑니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며 감사하는 것은 자녀에게만 허락된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길을 걸을 때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만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며, 생명의 지식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나타내셨습니다. 독생하신 아들이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고, 우리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시대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혜입니다.
오늘 말씀을 돌아보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네 가지를 기도하십니다. 하나됨입니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존재의 은혜 안에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며 아버지께서 맡기신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끝까지 품으시고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며, 날마다 그 은혜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생명의 지식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존재를 받았고, 영광을 받았으며,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받았습니다. 성도의 삶은 이것을 만들어 내는 삶이 아니라 날마다 누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존재를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을 아는 생명의 지식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동일한 기도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끝까지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생명의 지식 가운데 자라가게 하시기를 쉬지 않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은혜 안에서 날마다 살아가는 것이 신약시대 성도의 복이며, 요한복음 17장이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축복입니다.
2026년 07월 19일 주일낮예배 설교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76
존재, 영광, 사랑, 지식에서 하나 됨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요한복음 17:20-26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녹취록
1.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주님께서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이어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곧 오순절 이후 세워질 신약시대 교회와 오늘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당시 제자들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을 제정하시고 이 대제사장적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로마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라고 증거하고, 히브리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중보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7장은 단지 과거에 한 번 드려진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를 위하여 드리고 계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주님의 현재의 기도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느냐보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드리시는 기도는 크게 네 가지로 모아집니다. 하나됨과 영광, 사랑과 지식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떨어져 있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 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고, 영광을 누리게 하시며,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으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하십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말로 말미암아 자신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도들에게 맡겨졌고, 사도들은 그 말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말씀은 단순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로 그 말씀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실 때 그 기도 속에는 오늘 우리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다 알지 못하고,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우리 혼자의 기도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과 그리스도의 중보 안에서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히브리서는 그분의 제사장 직분이 결코 다른 이에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시며 지금도 쉬지 않고 강구하십니다. 이것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위로입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혼자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우리의 상한 심령과 부족한 기도는 그리스도의 중보 안에서 하나님께 올려집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느냐입니다. 잘하는 기도와 못하는 기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있을 뿐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께서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그 기도는 자녀가 아버지를 향하여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이며 자녀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셨고,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요한복음 17장은 우리에게 먼저 기도의 방법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에도, 연약할 때에도,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주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서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중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기도를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됨은 자녀됨이며 존재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첫 번째 내용은 하나됨입니다. 우리는 하나됨이라고 하면 먼저 사람들 사이의 화목이나 연합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됨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됨은 자녀됨이며,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는 존재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됨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억지로 묶어 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으시는 은혜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래 하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는 하나이시며, 성령은 성부의 영이시며 성자의 영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시고, 또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심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실 때에도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영이시며 아들의 영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됨의 근원은 언제나 삼위일체 하나님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하나됨 안으로 우리를 불러들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하나됨은 조직적인 통일이나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됨입니다.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형제자매가 되고, 형제자매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은 존재와 소유를 분명히 구별합니다. 사람은 소유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존재를 먼저 주십니다. 존재에는 이름이 있고 신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오늘 너를 낳았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선언입니다. 또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처럼 우리의 자녀됨은 혈통이나 사람의 뜻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은혜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자녀의 특권입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셨고, 이제 우리도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양자는 단순히 입양된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이면서 동시에 상속자의 권리를 받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났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독생하신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받아 주셨다는 사실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하나됨의 본질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됨은 존재를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소유를 의지하면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지만, 존재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신분 안에서 살아갑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존재의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됨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드시는 견인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시고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우리를 낳으신 분이시며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끝까지 품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를 끝까지 붙드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자녀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됨을 단순한 연합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됨은 자녀됨이며, 존재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며, 그 은혜 안에서 끝까지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이유도 바로 그 자녀를 끝까지 보전하시기 위함입니다.
3. 영광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누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됨을 위하여 기도하신 후 이어서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영광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는 영광이라고 하면 흔히 높임을 받거나 영화로운 모습을 먼저 생각하지만, 요한복음에서 말씀하는 영광은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높여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사역을 끝까지 이루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곧 아들의 영광이었고, 아들이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께서는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우리에게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광은 세상이 말하는 명예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허락하신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자신의 영광 안으로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영광은 먼저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완전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도 많고 좋은 것도 많지만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것을 완전한 것으로 붙들면 결국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완전하시며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예배드린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예배드립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곧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광을 인정하며 그 영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영광은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 차례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음을 말씀합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영광스러운 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자리와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부르시고 각 사람에게 맡기신 일을 주십니다. 성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삶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모든 성도에게 허락되는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시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골로새서는 말씀을 전하는 목적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광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완전하신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셨고, 그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가장 큰 특권입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순종이 영광이었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을 충실히 살아가며 그 뜻을 이루어 갈 때 가장 큰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셨고, 지금도 그 영광 안에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4.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됨과 영광에 이어 사랑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단순한 인간의 감정이나 호의가 아닙니다.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시는 사랑이며, 그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또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셨으므로”라고 말씀하시며, 마지막에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옵시며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마무리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마지막은 결국 사랑으로 끝맺어집니다.
이 사랑은 창세 전부터 있었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있기 전부터 아들을 사랑하셨고,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행위 때문에 시작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주어진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속한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먼저 베푸신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하였으며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십니다. 세상에도 사랑이라는 말은 많이 있지만, 참된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에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만이 참된 사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말씀으로만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설교에서는 이 사랑을 존재의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조금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자녀를 삼으시고 생명을 주셨으며, 상속자의 신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존재를 세워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신분을 바꾸고 우리의 삶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변하기 쉽습니다. 형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감정에 따라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 전부터 시작된 불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로 작정하셨고 끝까지 그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시고 우리보다 더 잘 아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을 단순히 밖에서 베푸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옵시며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고, 주님 자신도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미 기쁨의 임마누엘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사랑의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멀리서 사랑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만들어 내는 삶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을 누리는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향한 사랑을 기도하십니다.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 안에 끝까지 거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사랑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은 바로 그 사랑 안에서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기 위함입니다.
5.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시는 생명의 지식
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참된 지식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씀하는 지식은 단순히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를 많이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은혜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지식입니다.
주님께서는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이 사람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라고 기도를 마치십니다. 주님께서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아버지를 아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은 생명의 지식이며 인격적인 지식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안에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삼으셨음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가장 귀한 지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누리며 살아갑니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며 감사하는 것은 자녀에게만 허락된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길을 걸을 때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만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며, 생명의 지식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나타내셨습니다. 독생하신 아들이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고, 우리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시대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혜입니다.
오늘 말씀을 돌아보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네 가지를 기도하십니다. 하나됨입니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존재의 은혜 안에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거하며 아버지께서 맡기신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끝까지 품으시고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며, 날마다 그 은혜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생명의 지식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존재를 받았고, 영광을 받았으며,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받았습니다. 성도의 삶은 이것을 만들어 내는 삶이 아니라 날마다 누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존재를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을 아는 생명의 지식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동일한 기도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끝까지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생명의 지식 가운데 자라가게 하시기를 쉬지 않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은혜 안에서 날마다 살아가는 것이 신약시대 성도의 복이며, 요한복음 17장이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