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6 | 주일낮예배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77 |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심 | 마 26:47-56; 막 14:43-52; 눅 22:47-53; 요 18:1-11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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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26일 주일낮예배 설교  |  사복음서 병행 강해 177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심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마 26:47-56; 막 14:43-52; 눅 22:47-53; 요 18:1-11

(마태복음 26:47-56)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가복음 14:43-52)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누가복음 22:47-53)   [47]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49]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50]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요한복음 18:1-11)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녹취록

 

 
1.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잡히시는 장면을 통해, 십자가의 길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구원의 때였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비극처럼 보였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시간, 곧 구원의 때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순간을 가리켜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어둠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죄와 악이 하나님의 아들을 사로잡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속의 역사가 가장 깊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어둠의 권세가 허락된 그 시간마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받아들이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넘겨주었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서기관들과 로마 군대는 함께 움직여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은 단순히 사람의 손이 아니었습니다. 죄의 손이며 어둠의 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손들까지도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모습을 함께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정죄한 사람들은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빌라도와 헤롯, 안나와 가야바, 그리고 가룟 유다를 바라보며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의 죄를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대신 징계를 받으셨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는 뜻입니다.
가룟 유다는 마지막에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고백했지만, 그는 사람에게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깨달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만 참된 용서와 회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또한 겟세마네라는 장소의 의미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도 제자들과 자주 그곳에 계셨고, 유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둠은 주님께서 계시는 곳을 알고 찾아왔지만, 주님은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그 자리에 서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비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구원의 길입니다. 어둠이 가장 짙었던 그 밤이 바로 구원의 새벽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한 주 우리는 세상의 어둠보다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눈앞의 상황은 절망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시간까지도 구원의 역사 가운데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손보다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2. 랍비가 아니라 그리스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늘 제자들과 함께하시던 겟세마네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군대와 성전 경비병들을 이끌고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등과 횃불, 검과 몽둥이를 든 큰 무리가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은 세상이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실제 역사 가운데 일어난 사건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권력이 함께 움직여 예수님을 체포하는 장면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속사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알아보는 표시로 입맞춤을 선택합니다. 원래 입맞춤은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지만, 이제는 배반의 표시가 되었습니다. 사랑을 나타내야 할 입맞춤이 가장 깊은 배신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룟 유다가 끝까지 예수님을 “라비”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훌륭한 스승으로는 인정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는 믿지 않았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훌륭한 교사로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는 고백 위에 서야 합니다. 이 신앙고백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배반하는 유다를 향하여 마지막까지 “친구여.“라고 부르십니다. 그 호칭 속에는 마지막까지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긍휼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사람에게 해결책을 구했습니다.
성경은 가까운 사람의 배반을 여러 차례 증언합니다. 시편에서도 가장 가까운 친구가 발꿈치를 들었다고 말씀하며,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겉모습만 제자인 신앙입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여전히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주 동안 우리의 신앙고백을 다시 돌아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내게 단순한 스승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날마다 고백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3. 내로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에게 먼저 물으십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그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짧은 한마디는 단순히 “내가 그 사람이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말씀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와 연결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계속해서 “나는”이라는 선언으로 증거합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포도나무다.”
그리고 오늘 붙잡히시는 순간에도 주님은 동일하게 “내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연약하게 붙잡히는 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자신께서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원하셨다면 열두 군단도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붙잡히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가운데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려 한다.“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보호하십니다. 자신은 체포되시면서도 제자들은 끝까지 지키시는 선한 목자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 역시 인생의 여러 상황 속에서 두려움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어오실 때도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의 “내니” 역시 “나는 나다.“라는 동일한 표현입니다.
환경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절대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안은 상황이 아니라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안에 있습니다.
 
 
4. 찔러서가 아니라 찔려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지키려는 열심으로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베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즉시 베드로를 막으시며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은 칼로 승리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십니다.
설교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전합니다.
주의 일은 찔러서 하는 것이 아니라 찔려서 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지만 죄인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모든 모욕과 수치와 채찍과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자신을 구하셨다면 우리의 대속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끝까지 순종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베드로는 훗날 이 사건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베드로는 칼보다 십자가를 배우게 되었고, 힘보다 순종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자신의 힘과 열심만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고난 가운데 순종하는 길을 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의 길은 세상의 승리와 다르며,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을 이루시는 길입니다.
 
 
5.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
 
설교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셨습니다. 그러나 그 손들 뒤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의 삶을 통해 같은 원리를 보여 줍니다.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구덩이에 던지고 노예로 팔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거짓으로 고발하였고,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과정을 사용하셔서 많은 백성을 살리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동일합니다.
사람들은 악한 뜻으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가장 위대한 구원의 역사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손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악인의 행동만 바라보면 원망과 두려움만 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면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고 계심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십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고난도, 억울한 일도, 실패처럼 보이는 시간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번 한 주도 사람의 손보다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선한 뜻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붙들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