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SOLA SCRIPTURA SCRIPTA

금주 주일예배 설교

2023년 3월 26일

금주 주일예배 주보

2023년 3월 26일

매일 묵상

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진정한 맹세는 성경에서 '서원'이라고 합니다. 서원은 이미 미래의 일을 하나님이 신실하게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이루셨음을 믿고 지금 감사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시고 이루심에 대한 맹세입니다. 우리가 안수 받고 직분을 받는 것이 서원입니다. 내가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인 치시고 마지막까지 이끌어가시는 견인에 대한 신앙고백이 서원이고, 맹세입니다.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안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맹세는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적 맹세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맹세하지 말라고 한 것은 헛된 맹세와 무능하고 인간적인 맹세를 의미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 23:21-23). 자원한 예물은 입으로 정한 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 우리가 삽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약속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것을 우리가 헤아립니다.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갔는데 비슷한 돌만 주워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바로 서고 현존 가운데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심을 믿고 그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지경이 넓어지고 우리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애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달란트 선물을 주신 분이 이루실 것을 믿고 애써야 합니다. 나는 못한다 하면서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고르반' 하고, 여기까지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의 무능과 연약함을 내어 놓고, 오직 은혜, 코람데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과 현존 가운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이 말하는 맹세입니다. 

     이 전체가 맹세입니다. 어느 한 마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 모든 것이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성입니다. 그리고 내 머리로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우리가 희고 검게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머리카락 붙들고 건물 보고 하늘과 땅 보고 맹세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닌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 6:13). 

     예수님의 맹세하지 말라는 명령과 모순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금지한 맹세는 심리적인 맹세입니다. 복음적인 맹세, 십자가를 붙드는 맹세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들고 사용하시면 종이 하겠나이다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맹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히 6:13-16). 하나님이 맹세의 최후 확정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것을 찾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민수기의 축복기도처럼 이 기도를 우리가 해야 합니다. 만물의 여호와의 얼굴빛이 비취는 것을 우리가 기다리고 기대해야 합니다. 그 빛에 비추어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해야 합니다. 나머지는 일순간 좋아보여도 곧 썩어 버립니다. 곧 악취가 납니다. 일순간 좋아보여도 그 끝이 나를 짓누릅니다. 다이아몬드라고 갖다 놨는데 그것이 내 머리에 떨어지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면전에서 '옳다' 혹은 '아니라'를 정확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우리의 '예'의 영역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아멘' 할 수 있고, '옳다'라고 할 수 있고, '그리 되었나이다', '다 이루었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옳은 것', '완전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이 '옳다', '예'의 영역에 들어가려면 예수를 부여잡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거늘 누가 우리를 꾀더냐'(갈 3:1), 세상에서는 무력해 보이나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여호와의 현존, 코람데오 가운데 서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지기교회
Cross Bearers Church

010-2960-9572  
서울시 서초구 성촌1길 20 형촌프라자 지하 1층 (삼성R&D 앞)

Copyright(c) 2018 Cross Bearers Church Co., Ltd. 

금주 주일낮예배 설교
2023.03.26.  |  사복음서 병행 강해 36  |  아버지의 온전하심으로 온전함  |  마 5:33-48; 눅 6:27-36  |  문병호 목사
2023년 3월 26일 
주일새벽예배 설교 | 야고보서 강해 27


겸손히 주께 가까이
야고보서 4:7-10

문병호 목사
2022년 3월 26일
주일오후예배 설교

하나님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주신 편지
에베소서 1:1-2

한우찬 목사
매일 묵상

2023.03.29. 수요일

3.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

     본문이 깁니다. 이것을 어떻게 묶을까 하다가 '여호와의 면전에서'로 보았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하는 말이 구약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것을 '동해보복'이라고 법에서 칭하기도 합니다. 같은 해를 가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짐승을 죽인 자는 짐승을 죽이거나 값을 주거나, 생명은 생명으로 갚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눈은 눈, 이는 이로 갚으라고 성경에서 봤는데, 어찌 주님이 39절 이하에 그러지 말라고 하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구약이 틀린 것이 아니라, 구약의 형벌, 동해보복법은 '형법', '재판'의 이야기입니다. 구약적인 공정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용서나 하나님의 이웃을 사랑하는 명령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고대는 작은 일로도 전쟁이 나고 죽음이 일어나고 하는 무한 보복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아직 그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귀한 말씀을 놓쳐 버린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8);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 24:29). 우리 성도들도 '두고 보자', '최소한 나도 그만큼은 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우리가 죽여야 합니다. 악순환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행한 것 같이 나도 행한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적인 형벌은 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칼을 든 자라고 했습니다. 죄에 대해 보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저주하고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하라는 말씀하십니다. 

     우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집에 온 강도를 그대로 두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 우리 주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부탁하셨다는 것입니다. 욕을 당하되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되 위협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갚으면 상급이 없습니다. 꾹 참아야 합니다. 용서에는 끝이 없습니다. 용서를 아무리 해도 우리가 받은 용서만큼 안됩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면 물을 먹이고, 주리면 먹이라고 했습니다. 진정 원수를 벌하기 원한다면 그를 먹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수라고 합니다. 내가 갚지 않아야 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원수가 오면 참아야 합니다. 아무리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그렇게 바보같이 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끝까지 당해야 합니다. 끝까지 당해야 합니다. 왜요? '코람데오',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보응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면 상급이 없습니다.

금주 주보


제13권 13호  |  2023.03.26. 주일
공지사항

십자가지기교회

십자가지기

설교집

십자가지기교회

Cross Bearers Church


010-2960-9572  
서울시 서초구 성촌1길 20 형촌프라자 지하 1층 (삼성R&D 앞)


Copyright(c) 2018 Cross Bearers Church Co., Ltd.